아이는 부모의 표정을 먹고산다.
아이가 탈진 증상이 있어서 응급실에 가게 되었다.
제법 컸는지 부모가 주고받는 말을 주워듣고 금세 겁에 질려 '응급실 가기 싫어' '수액 맞기 싫어' 그런다. 이래저래 달래서 차에 태웠지만 이미 겁에 질린 아이는 가는 내내 낯빛이 흙빛이다.
어차피 겪을 일, 미리 공포심을 가질 필요는 없건만 급한 마음에 아이가 듣는데서 부모가 너무 심오한 의논을 한 탓이다. 아이는 부모의 분위기를 먹고 산다. 안 심각한 상황에도 심각한 부모의 표정만으로 아이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반대는 어떤가? 심각해도 아무렇지 않은 듯, 별거 아닌듯한 부모의 얼굴에 아이는 설사 곧 심각한 일을 마주할지라도, 미리 공포심으로 달궈진 채 더 큰 고통 가운데 진실을 마주하진 않을 것이다.
어쩌겠나 미리 알게 된 거, 인생에 단맛 쓴맛 많을 텐데 쓴맛 볼 때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다 필요한 양분이라 여기고 지나가는 거다. 다만 다음엔 뭐가 더 좋을까 생각해 보는 거다. 미리 사실을 알려줄 것인가? 어느 정도 알려 줄 것인가? 직전에 알려 줄 것인가? 그냥 알려주지 않고 겪게 할 것인가?
응급실 도착 전 이런저런 얘기하다 또 알게 된 건 아이가 수액 맞는 것을 언젠가 유심히 봤는지 수액을 맞는 것은 한 번 찌른 후 몸이 수액을 다 받아 낼 때까지 찌를 때의 고통이 계속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아이고 그러니 얼마나 두려움의 깊이가 컸을꼬!
잘못된 사실?을 바로 잡아 주었더니 아이의 표정이 맑게 갠다. 그정도가 아닌데 그 이상의 공포로 고통받는 일은 안타까운 일이다. 아이를 통해 나를 본다. 생각보다 큰일이 아닌데 지레 겁을 먹고 괴로워하고 있을지도 모를 나, 괜한 겁을 먹고 무언가 미루고 있진 않는지. 누군가 나에게 무심한 표정으로 "야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말해주면 좋겠다. 때론 따듯한 미소로 "그거 생각보다 하나도 안 아프고 엄청 빨리 끝나"라고 말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