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명절, 나는 논두렁에서 작가가 되었다.>

쭈글쭈글해진 손마디에 새겨진, 어느 맏며느리의 첫 기록

by 아련나래

경상도 여자였던 내가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릴 때만 해도 몰랐다.

낯선 이정표를 따라 도착한 충남 당진의 시댁이, 내게 '나'라는 이름 대신 '며느리'라는

서슬 퍼런 굴레를 처음 씌워줄 곳이 될 줄은.


2남 3녀 집안의 장남과 결혼한다는 것, 그건 낭만적인 서약 뒤에 가려진 '맏며느리'라는

거대한 의무와의 대면이었다. 명절 전날부터 시작된 시부모님의 성화에 새벽 5시부터

도로를 가로질렀다. 6시간의 운전에 지친 남편이 방으로 들어가 눈을 붙이는 사이, 나는

낯선 부엌으로 밀려 들어갔다.

그것이 내 첫 명절의 시작이었다.


결혼 전까지 부엌일이라곤 서툴기만 했던 내게 시어머니의 날카로운 재촉은 채찍질 같았다.

국, 탕, 처음 해 보는 반찬들... 차가운 물에 수천 번 손을 담그며 끝이 보이지 않는 음식준비에

내 손 끝은 서서히 감각을 잃어갔다. 문득 내려다본 내 손은 목욕탕 안에서 실컷 놀다 나온

아이의 손처럼 퉁퉁 붓고 쭈글쭈글해져 있었다.

난방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차가운 부엌에서 어깨는 자꾸만 움츠러들었고, 가부장적인 공기 속에서

남편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8시간의 사투 끝에 차려낸 20인분의 저녁상, 모두가 수저를 들고 나서야 비로소 내 몫의 밥그릇 앞에

앉았다. 하지만, 첫 숟가락을 뜨려는 순간, 뜨거운 눈물이 툭하고 밥 위로 떨어졌다.


'나는 왜 이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을 위해 나를 지워가며 이러고 있어야 하나?'


억울함과 비참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당황한 기색을 숨기려 무작정 뛰쳐나간 집 밖, 감나무 옆 논두렁에서 나는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조금 뒤에 뒤따라 나오신 시아버지와, 그 뒤에서 나를 무섭게 흘겨보시던 시어머니의 따가운 눈초리.

그 차가운 시선 끝에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시집살이'의 민낯임을.


그날 밤, 나는 일기장을 펴듯 마음을 다잡았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과 오기가 교차했다. 하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적어도 '친정 부모님이 딸자식 잘 못 키웠다'는 소리는 듣지 않겠다는 다짐. 그리고 나를

밀어내는 시어머니께 먼저 살갑게 다가갈 용기를 내어보겠다는 결심이었다.


비록 시작은 서러운 눈물이었지만, " 그날 논두렁에서 쏟아낸 눈물은 서러움의 끝이 아니라,

비로소 내 삶을 나의 언어로 기록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첫 명절, 그 차가운 논두렁 위에서 진짜 나를 기록하는 '작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