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함께한 8년의 국내여행과 여행책들 그리고 장교생활
나와 한 살 차이 나는 동생은 둘 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어머니의 지원과 응원 아래 아버지와 매 여름마다 국내 여행을 다녔다. 기본적으로 7~9일을 다녔고 숙박은 무조건 텐트였다. 이동은 기차나 버스 등 대중교통이었으며 아버지께서는 가장 크고 무거운 가방을 들으셨고 우리에게도 작은 배낭들이 있었다.
호의주의보로 텐트에 물이 차서 헐레벌떡 일어나 철수를 하였고, 태풍으로 바닷가에서 자다가 바람에 나뒹굴기도 했다. 지리산을 산행하다가 갑자기 어두워지는 날에는 그냥 산 중간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자기도 했다. 화장실 물을 사용해서 라면을 끓여먹으며 놀다가 버스를 놓치기도 하고 어린 입맛에 맞지 않았던 갓김치에 초고추장 비빔밥을 못 먹다가 아버지와 티격태격하기도 했다.
수년간의 반복된 여행과 편하지만은 않았던 추억들은 나와 동생으로 하여금 여행에 대한 익숙함과 동시에 흥미로움을 가지게 했고 자연스레 시선은 해외로까지 뻗어나갔다.
"우리 크면 꼭 세계여행을 나가자" 이 말은 중학생이 되고서 나와 동생이 이따금 나누던 이야기였다.
기록을 중시하셨던 아버지는 우리에게 일기를 쓰는 것과 여행기를 읽도록 권유하셨다. 당시에 스타였던 한비야 씨의 책은 모조리 읽었다. 책 자체에 많은 흥미를 갖지 않았던 어린 시절임에도 여행기를 읽으면 흥분되고 그 장소에 내가 들어가 있는 것처럼 생생한 기분을 느꼈다. 더욱 우리의 생각은 확고해지고 있었다.
대학을 들어가고 남들 다 가는 군에 대해서 고민을 하는 시기에 발견한 ROTC가 있었다. 멋진 선배의 권유와 장교로서 할 수 있는 조금 더 적극적인 경험들을 생각하고, 일을 하고 난 뒤에는 여행경비까지 마련할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동생은 일반적인 군에 복무를 하는 것 대신 승선근무예비역이라는 이름으로 6년간 배에서 엔지니어로 일을 했다. 하늘이 도왔는지 나와 동생은 우연하게 같은 해에 국방의 의무를 마칠 수 있었다.
2017년 6월 31일부 육군 중위로 전역을 한 나는 한 달간의 휴식을 가졌고 동생과 간단한 준비를 마친 후 바로 여행길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 여행기는 성격이 180도 다른 두 형제의 여행기이며 아무것도 모르는 완전한 바닥의 여행자가 조금씩 성장해가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