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의 비트코인 모으기 운동
테라는 계속해서 이더리움 생태계로의 진출을 시도했었다. 실제로 미러 프로토콜을 이더리움에도 런칭했었고, 2021년 8월에는 앵커 프로토콜에서 ETH2.0의 ETH를 유동화시킬 목적으로 bETH(bonded ETH)를 출시해서 런칭 첫날 1000억 원이 넘는 ETH를 예치받기도 했다. 참고로 이더리움에서 가장 큰 ETH2.0 유동화 프로젝트가 Lido인데, Lido는 ETH를 예치하면 stETH(staked ETH)를 준다. 이런 식의 스테이킹된 자산의 유동화 메커니즘, 즉 리퀴드 스테이킹(liquid staking)의 개념은 앵커가 가장 먼저 제안했다고 볼 수 있다.
루나는 오스모시스를 통해 코스모스 생태계에 진출했고, bETH를 통해 이더리움에 진출했다. 그리고 UST를 코스모스와 이더리움 등 여러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널리 쓰이는 스테이블 코인으로 만들고자 하는 비전이 있었다. UST의 수요 증가는 루나의 공급량 감소 및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 비전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루나의 미래는 아주 밝아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플랫폼에서 UST가 스테이블 코인으로 쓰인다면 테라에 위기가 왔을 때 UST가 급격한 매도 압력을 받게 된다. 왜냐 하면, 위험 자산인 UST를 다른 자산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매도 압력이 발생했을 때를 방어하기 위해 테라는 비트코인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테라는 왜 비트코인을 사 모았을까? 필자는 테라는 왜 망했을까? (1)에서 루나를 국채에 비유했었다. 이처럼 각 블록체인들을 국가에 비유한다면, 블록체인에서 사용되는 네이티브 코인은 그 나라의 화폐에 비유할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지 블록체인의 용처가 많지 않아서 대부분의 코인들이 비트코인의 가격 움직임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지만, 각 프로젝트의 흥망성쇠에 따라서 네이티브 코인 간의 교환비, 즉 환율은 변동하기도 한다. 실제로 루나는 다른 블록체인들과는 다른 독보적인 생태계 확장 전략으로 가격이 크게 상승했었다. 반대로 테라의 생태계 확장 속도가 느려지거나 역성장을 하게 되면 루나의 가격이 크게 떨어져 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다.
테라는 유동화를 통한 파생 상품들을 만들면서 성장했기 때문에 외환 위기에 매우 취약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1998년에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던 외환 위기를 간단히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1996년까지 저금리, 저유가, 저달러로 인한 3저 호황 덕분에 엄청난 성장을 거듭했다. 특히, 커다란 해외 자본들이 국내로 들어와서 기업들에게 투자와 대출을 제공해주었기 때문에 경기가 확장되고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분별한 확장 때문에 1996년에 경상수지 적자를 맞게 되었고 1997년에는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며 해외 자본이 국외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업들은 달러를 사서 대출금을 갚아야 했고, 이로 인해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게 되었다(달러 가치 상승 & 원화 가치 하락).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 달러를 빌린 기업들이 갚아야 하는 대출금(원화)이 증가하는 데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인해 경기가 둔화되어 수출도 감소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이중고를 겪게 된다. 게다가 그 당시 한국 정부의 외환 보유고는 300억 달러였지만 기업들이 갚아야 하는 금액은 3배가 넘는 1,530억 달러였기 때문에 수많은 기업들이 달러를 구하지 못해 부도가 나게 된다. 우리나라는 결국 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하고 IMF를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로부터 550억 달러를 빌려서 기업 부채를 상환한 뒤 강력한 구조 조정과 범국민적인 노력을 통해 IMF에 채무를 갚고 외환 위기를 극복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외환 위기를 극복한 방식에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전 국민들이 금 모으기 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이를 통해 전국적으로 351만여 명이 참여하여 약 227톤의 금을 모았었다. 정확히 말하면 국가가 국민들에게 원화를 지불하고 금을 사들인 것이다. 이렇게 모은 금의 가치는 약 22억 달러였고, 해외에 달러를 받고 금을 매도한 뒤 IMF에게 달러로 채무를 갚았다. 원화의 가치는 떨어져도 금의 가치는 유지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테라가 비트코인을 사 모은 이유도 금 모으기 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 비트코인은 흔히 블록체인에서 금에 비유되기 때문에 루나/UST의 가치가 폭락하더라도 비트코인의 가치는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루나에서의 외환 위기는 UST의 가치가 달러에 고정되지 못하고 페깅이 깨질 때 발생하기 때문에, 테라 재단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비트코인 보유고를 늘려서 UST의 안정성을 높이려고 했다.
테라 재단은 꾸준히 비트코인을 모았고, 테라에 위기가 찾아오기 전인 5월 7일에는 80,394 BTC (약 2.9조 원)를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UST의 시가 총액은 약 22조 원, 루나의 시가총액은 약 34조 원, 그리고 테라 생태계 위에 만들어진 자산들의 가치(TVL)는 25조 원에 달했다. 참고로 그 당시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은 약 823조 원, 이더리움의 시가총액은 약 382조 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