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공작소 Jul 24. 2016

게을러 지고 싶은 날

역할과 책임감.

가끔 역할을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퍼지고 늘어지고 싶을 때가 있다.

딱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일요일인데다가 날씨가 무척 더워 움직이고 싶지도 않은...


"엄마, 그럼 중국음식 시켜먹자~"

"너가 몰라서 하는 이야기야~ 집에서 배달음식 시켜먹으면 뒷일 하는 것도 일이라니까. 엄마 오늘은 오줌싸러 화장실가는 것도 귀찮아."

오늘은 배달음식 뒷 치닥거리 하기조차 싫은 날이었나보다.


다행히 아이들 아빠의 도움으로 두끼를 편하게 해결하고 편하게 에어컨 바람에 늘어진 하루를 보냈다.


큰 아이 어릴 때 같으면 어려운 일이었다.

누가 눈치를 주는 것이 아님에도 스스로 '엄마, 아내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 같지않아 억지로 몸을 사용하곤 했다.

그러고 나서는 꼭 아이들이나 남편에게 툴툴거리기 일쑤였다.

엄마가 힘든 것을 몰라주는 아이들에게 '너넨 참 편하게 산다'라는 생각이..., 그리고 내 마음은 모른 채 쩝쩝 우걱우걱 밥을 먹곤 늘어지게 앉아 티비를 보는 남편에겐 '일을 부려 먹으려고 결혼을 한건지...'라며 서운함을 넘어서 내편이 아니란 생각이 들곤 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꾸그려 넣어 버린 마음은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없어지지 않고 불편하게 자리잡고 앉아 툭툭 튀어나오곤 했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가족이 서운하다 못해 내 편이 아니란 생각이 들며 나는 이방인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며칠전 시댁에 제사가 있어 들렀다.

어머님 아버님께서 다투고 계셨는데, 언제나 그렇 듯이  매번 같은 일로 입씨름을 하고 계신 중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들은 듯 안 들은 듯 모른 척 지나갔겠지만, 그 날은 두 분 다툼에 끼어 들었다.


"어머님, 두 분 싸우실때 마다 느끼는데, 어머님께서 아버님을 초등학생 다루 듯이 통제를 너무 많이 하시는 것 같아 보여요. 제눈엔... 아버님도 잘 알고 계실 텐데, 자꾸 말씀하시니 기분이 언짢으실 것 같아요."

"얘, 맞다 맞어. 네 아버님은 초등학생이라니까...."란 이야길 시작으로 어머님과 깊은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머님 마음 깊은 곳엔 이런 마음이 깔려 있었다.


"당신은 당신하고 싶은대로 충분히 하고 살잖아요. 나는 아이키우느라 당신 봉양하랴,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느라 나 하고 싶은 것 아무것도 못하는 묶인 몸이잖아요. 자유롭고 싶다고요."


어머님께서도 마음에 그런 마음이 있는지 모르셨던 듯하다.

"지금이라도 하시고 싶은 일 하셔요.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어떤 것이세요?"


"이제와서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니.

다른친구들과 비교해보면, 나는 그래도 행복한 것 이지.

내가 배가 불러 그런단 생각이 들더라. 젊었을 때 보다 할 일이 없어져서 한가하고 배가 불러 내가 투정인게야.

내가 지금 어딜 나가겠니. 네 시아버지 제시간에 딱딱 밥 챙겨 드리지 않으면 난리나.난리."


"어머님은 평생 배려 받거나 사랑받지 못한단 생각을 받으며 사셨을거 같아요. 어머님께서 해야할 일들을 충분히 하시고, 또 ,희생하셨는데도 말이에요. "


결혼 후 처음으로 어머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한 것을 보았다.


마음이 많이 아렸다.

며칠전 종방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나문희씨 역할의 '정아'모습이 겹쳤다.

차를 운전해서 어디론가 벗어나고 싶어하는, 그리고 새가 되어 훨훨 날아가고 싶은 정아.


그런 정아의 모습이 나의 시어머님뿐 아니라, 내 주변에서도 종종 보여진다.

유기농으로 차려진 건강식을 해서 가족에게 먹여야 한다는 생각, 이미 훌쩍 커버린 아이들을 맞으러 하던 일을 마무리 짓지도 못하고 귀가하는 모습, 내가 하고싶은 일에 돈을 쓰는 것은 왠지 부당한 것 같다는 생각, 가족을 두고 6시 이후의 외출은  좋은 아내나 엄마가 아닌 것 같다는 신념...

 

만일 이같은 일들이 가족들에게 부탁이나 도움으로는 절대 해결이 되지 않고 내가 해야만 마음이 편하고 꼭 해야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힘들거나, 저런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는 다른 주부들에게 화가 나고 질투가 난다면,'역할로서 의 나'가 진정한 나의 모습으로 착각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나의 욕구들은 꾸그려져서 눌려져 있으면서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너의 가족들은 너를 배려하고 있지 않는 구나. 너는 그저 밥하고 빨래하는 존재일 뿐이야. 너가 최선을 다해 하고 있는 일들은 그저 당연한 것 뿐이고, 네 가족들은 너를 사랑하지 않아."



매거진의 이전글 너에 대한 맥락을 읽을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