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이 아름답다.
무엇을 향해 있는가!
작년에 분석심리학자 '융'의 이론 강의를 들은 적 있다.
몇 번 듣기도 하고 책으로도 만났던 이론인데, 그 당시 그의 이론은 뒷통수를 강타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완벽하지 못한 나의 모습을 채우기 위해 급급한 태도에 대해 부질없음을 알게했고, 자연(신, 온전)의 구속을 통한 자유로움을 엿보게 되었던 경이로움을 접한 순간이 었다.
신의 구속이 자유롭다는 아이러니가 뒷통수를 때렸고, 나한테 놓여 있던 문제들이 한 순간 부질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일 년간 내안에서의 변화가 시각과 태도의 변화를 가져다 주었고, 친구들의 입을 통해 ' 너 다시 예전의 너로 돌아왔어. 무슨일이 있었니?'라는 질문도 받게 되었다.
더불어서 나에 대한 궁금함이, 외부에 대한 호기심(!)으로 방향이 틀어졌고, 그들과 같이 움직이고 싶어졌다.
세상이 궁금해졌다.
그들은 신의 통제 안에서 어떤 경이로움을 만나고 있는지, 또 , 통제만 느낀다면 어떤 눈으로 통제를 만나는지 진정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나니, 뒷통수 맞는 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부모에게서 받지 못한 존중을 아이가 지속적으로 주고 있었단 것을 알게되고,
선생님께 받지 못한 격려를 티비 속 개그맨이 주고 있었고,
동네마트에서 받은 사은품에 대한 감사함이 백화점 가는 횟수를 줄여 돈 좀 아껴보자는 허벅지를 찌르며 노력하던 애씀이 저절로 뒤로 물러가져 있었다.
세상은 충분히 주고 있는데, '나는 부족하고 모자르다'는 생각때문에 겹겹히 두꺼운 외투를 두르고, 당하지 않으려 똑바로 보려고 돗수높은 고급안경을 끼고 있었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내는 동안 잠깐 잠깐 혼란스러움이 끼어들었다. 그 혼란스러움은 잠시 갈 곳을 서성이고 멈칫거리게 했던 듯 하다.
유기체는 앞으로 전진하려고 하는데, 지적인(내 경험과 학습에 의한)습관이 나를 잡았던 것이다.
그 사이의 혼란에 대해 엊그제 만난 '로저스'가 나에게 지적시각 마저 돌리게 해 주었다.
'너의 지금의 모습은 과거의 어떤 경험이 만들어 주어 현재의 너를 힘들게 하고 있니?'가 아니라,
'너는 어떻게,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니? 그런데 어떤 감정이 너를 못 움직이게 하는 것이니?'
나에게 향하는 질문이 달라졌다!
과거가 의미 없지는 않지만, 과거가 '현재의 나'를 잡을 순 없다. 과거의 감정이 지금의 나를 조정하긴 했지만, 알아채는 순간 더이상 그 감정은 허상이고 새로운 감정을 창조할 힘은 오로지 현재의 내게 있다.
유기체는 전진하려고 하지만,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들이 어기적하고 걸리게 했던, 그러나 의미있는 시간들이었다.
태도가 온전히 방향을 틀게 되려면 전체적이고 통합적으로 움직여져야 하고, 그것은 그 순간을 지나야만 안다.
그리고, 한가지 아름다운 사실은 우리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온전함을 향해 움직이고 있기에, 실수하고 아픈 오늘 마저 소중하다. 과정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