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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공작소 Jul 31. 2016

너에 대한 맥락을 읽을게

너에 대한 존중과 공감

'W'

요즈음 즐겨보는 드라마다.

예쁘게 생긴 주인공들의 연기를 보는 것도 즐겁고, 작가의 상상력에도 놀라와 하며 초집중 시청을 한다.


현실세계에서 살고 있는 초보의사 '연주'가 그녀의 아버지가 그리고 있는 만화 속으로 끌려 들어가게 되어 만화 속 주인공 '강철'과 벌어지는 이야기다.


연주 아버지는 언젠가부터 본인의 의지와 다르게 만화가 스스로 그려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주인공 '강철'을 죽이고 연재를 끝내려고 하고, 한편 만화속 강철은 누구인지 모를 괴한에게 몇차례 습격을 당해 목숨의 위협을 받는다. 그 과정에 만화 속으로 끌려온 연주와 만나게 되고, 강철은 연주가 자신과는 다른 세계의 미지의 사람이란 것을 감지하고 그녀가 자신의 인생에 중요한 '열쇠'라고 생각한다.


만화속에서는 신원이 있을 수 없는 연주와 신원을 밝히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쫒고 쫒기는 과정 중에 연주를 보호하고 있던 강철의 측근인 여비서가 연주를 경찰에 알린다.


강철은 경찰에 넘긴 비서와의 대화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런식으로 매도되서 인생 쫑 날 뻔 했던게 바로 나야. 잊었어? 내가 그렇게 당했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된다고, 왜 그 시간에 축구를 안 보고 학교를 갔냐고, 할 말이 없어서 머뭇거린 거라고. 그렇게 떠밀려서 피해자가 살인범이 됐지, 순식간에.


오연주도 이제 그렇게 되겠지 아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니까.

다들 맥락은 안 보고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봐.

그리고 그게 상식 인 줄 알지.

 너는 니가 상식적으로 행동했는데, 그게 아니라 오연주라는 인간의 맥락을 전혀 못 읽은거지.

그 여자는 나한테 피해 안 줄려고 잡히기 직전에 핸드폰을 던져 버렸어.  신원이 중요한게 아니야.

그런 행동의 본질을 알면 어떻게 그 여자를 용의자라고 할 수가 있어.


나는 나처럼 상식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도우려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너는 내 옆에서 또 희생자를 만들었어. 그러니까 너는 내 비서 자격이 없어. 넌 그냥 내 친구로 남아. 넌 해고야"


최근에 관계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런 이야기를 한다.


"온전히 내 편이 되어 주었으면 내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거에요.

내 남편이, 우리 엄마가, 내 동료가, 내 상사가 나를 안다면 그런 행동을 할 수 없잖아요.

나를 모른다는 거에요. 그동안 내가 한게 다 부질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순간이죠.

그 상황이 중요하단 것이 아니에요. 그저 내가 원한건 힘들었겠다. 너의 노력들이 물거품 되는 순간이었을거 같아. 그 때 너 마음은 어땠니? 내가 이해해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한마디에요."


그 사람의 맥락을 읽는다는 것이 '존중'이다.
그 사람의 '맥락'을 알게되면 '공감'이 일어난다.


사람들의 대화를 자세히 들어보면 이야기 하고 있는 상대에게 '너에 대.해.서.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적극적으로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상대의 맥락을 들으려 경청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내 맥락을 가지고 상대의 이야기를 판단해서 듣고 그것을 다시 돌려 준다.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듣지 않아"

"내 말은 그게 아니야"

"당신은 당신마음 대로 생각해."

"왜 내 말을 못 알아 들어" 란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면 내가 어떤 방식으로 경청을 하는지 한번 점검해 보아야 한다.


상대가 어떤 맥락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지 알려면, 그 사람에 대한 수집이 필요하다.

관심을 가지고 오랜동안 바라보아야 하며, 그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들어야 한다.


특히 가족간에 '존중'받지 못 한다고 생각하면 행복한 가정이 오래 지속되기 힘든 것 같아 보인다.

부모에게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 아내나 남편에게 존중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자신 그대로 살기 힘들어지며, 상대가 평가하는 상대의 맥락에 맞춰 살기 시작한다.


자신을 꼭꼭 눌러 놓아 찌그러지기 시작하면, 그 자신 또한 상처받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하고 꽁꽁 싸매느라, 에너지를 한껏 사용하느라, 타인의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어진다.


본인이 상처를 받고 본인이 아픔을 겪었을 때 보통은 타인에 대해 복수심, 억울함, 배신감을 가지게 마련이다.

복수심, 억울함, 배신감은  세상을 왜곡해서 바라보게 만들기  좋은 재료다.

세상이 왜곡되어 보인다는 것은, 세상은 위험하고, 사람은 친밀한 대상이 아니라 나를 평가하는 대상으로 바라봐 지며,  그런 그들을 건강하게 바라봐 지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는 것 같은 이런 관계에 '맥락을 읽어주는 누군가'가 끼어든다면

변화가 서서히 생기기 시작한다고 확신한다.


변화가 생기려면 두가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누군가 내 맥락을 읽어주고 이해해 줄 때 까지 나의 왜곡된 세계안에서 기다리던 가, 내가 상대의 맥락이 무엇인지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는 것을 선택할 것 인가.


어디선가는  물꼬가 터져야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다음은 변상규교수님이 쓴 '자궁퇴행본능'에 대한 글이다.  

               자궁 퇴행본능 (변상규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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