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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공작소 Aug 21. 2016

어떤 모양의 성취감 일까.

안도감과 행복감

얼마전 책 한권을 손으로 옮겨 썼다.


양은 많지 않았고, 내용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빽빽히 적혀 있는 노트 한권의 결과물이 그렇게 뿌듯 할 수 없었다.


글자 간격이 일정하지도 않았고, 쓰다보니 볼펜이 닳아 집에서 굴러다니는 펜으로 쓰다보니 보라색, 파란색 규칙도 없어 보였다.

중간엔 과자부스러기에 눌려 글자가 번져지기도 하고, 멍 때리며 베끼기만 하다가 같은 부분을 반복해서 쓴 부분도 있었다.


그럼에도 완성하였을 땐 스스로가 알차게 느껴지고 대단한 성취감이 밀려왔다.

그 경험은 다른 경험으로의 물꼬를 트게 했던 놀라운 사건이기도 할 정도로 나에게 중요한 사건이었다

 

나는 궁금했다.


별 것도 아닌 일이 나에게 어째서 방향전환의 기점이 되었던 것일까.


예전의 나는 훨씬 더 이룬 것들이 많았고, 그것들에 대한 성취도 있었는데, 그것들과 이번 사건은 어떤 차이가 있었던 걸까.


내가  필사했던 책은 '아들러 심리학'이었다. 아들러는 요즈음 서점에서 인기리에 팔리고 있는 '미움받을 용기'의  중심이론을 펼친 학자이다.


그는 사람들의 행동에는 숨겨진 '목표'가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 목표는 아주 사소하고 보잘 것 없고 부끄럽게 생각 할 일이라 타인 뿐 아니라 내 스스로도 알아보지 못하도록  깊이 숨겨두고 훨씬 멋진 모양으로 포장하고 있다고 한다.


아주 간단한 이론이어서 그럴까, 그 이후로 세상이  단순해 보이고, 인생의 굴곡이 재미있게 여겨지기도 했다.


그렇게 삶이 읽히기 시작하니 내 궁금증의 실마리가 조금 풀린 듯하다.


내가 어떤 일을 이룬다는 것은,

'나도 그들과 같아. 그렇기때문에 그들과 함께 할  수 있고, 비난 받지 않을거야.'란 것만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남들처럼 자전거를 타야 했고, 나는 남들처럼 글을 읽을 줄 알아야 했으며, 나는 남들이 무언가 이룬다는시기에 발맞춰 이루었어야만 했다.

그렇게 이룬 것들은 나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그 안도감은 나에게 사람들에게 소외되지 않을 '안전함'을 제공해 주었다.


남들의 기대에 맞추어 이루어낸 성과에 대한 선물은 '성취감'에 대한 행복이 아니라, 비난 받지 않을 '안도감'이란 것은 질적 차이가 있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안도감'에 있다는 것은 이루어 낼 때까지 비교해야 하고, 타인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끊임없이 살피며 튀지 않으려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 긴장의 연속에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원해 선택하고 집중하여 이루어 낸 것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결과는 다르다.


필사를 하며 만난 아들러는 나에게 끊임없는 이야기를 해 주었고, 삐뚫거리며 쓴 글자 하나하나에 그 순간순간 나의 고됨과 애씀이 녹아들어 있으며,  혹 타인이 쓴 것과 비교가 되는 상황일지라도 나의 스토리가 녹아 있어 '의미'와 '가치'가 다를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내게 준 것은

 '뿌듯함을 장착한 성취감'이고,

 '나의 고됨이 녹아든 성취감'이며,

 '내 의지로 문을 열고 접촉하여 관계를 이루어 낸 성취감'...이었다.

'성취감'이란 단어 하나에  구그려 넣기엔 너무 여러색깔의 성취감이었고, 그 색깔들은  '행복한 나'의 한 부분이 되었다.

 

그 행복함은 남들 것과 조금 달라도 비난과 지적에 무너질 만큼 성기지 않다.


'안도감'을 위해 움직인 '자전거 타기'의 결과는 남들도 타는 자전거일 뿐이지만, '행복감'을 위해 움직인 결과는 내가 즐길 자전거이다.

또,

뒤집어 놓고 이루지 못하여 실패 했을 경우

전자는 '불안함,(남들보다 못하다는)열등감'을 불러오고, 후자의 경우는 '실망감, 슬픔, (도전을 불러 일으키는) 열등감'일 것 이다.

어느 방향으로 향해 있는지에 따라 내게 밀려오는 감정이 다르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번 올림픽을 지켜 보면서도 메달을 건, 혹은 아쉽게 놓친 선수들의 인터뷰를 보면서도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그들이 어떤 동기로 움직였는지 틈새로 엿 볼 수 있었다.


은메달도 잘했다 생각했는데...


그들은 지더라도 지금까지 해 낸 나 자신도 잘했다고 여겼으며, 닥친 상황을 긴장되고 예민해지긴 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문제에 닥쳤을 때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려는지 자세히 관찰해 보면 내가  어떤 목적으로 향해 있는지 발견할 가능성이 있다.


가장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놓고 준비를 하는지, 닥쳐올 해결 과제를 '지금 여기'에서 내가 가진 것을 활용해 설레는 마음으로 해결해 나가는지  나를 관찰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이 글을 다른 곳에 올렸는데, 답글이 하나 달렸다.  인지심리학에서 이야기 하는 글인데 같은 맥락이라 링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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