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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공작소 May 09. 2016

어린시절의 낙담과 마주하다

- 나에게 위로를

"엄마, 엄마 내일 상담이지?" 고3된 큰 아이.
"어~, 3시까지 가기루 했는데 담임샘께서 7시에 오라고 하시더라."

귀를 손으로 막고 몸을 동그랗게 모아 부르르 떨며,
"아~~~ 떨려. 엄마 무슨 이야길 듣던 엄마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대답을 들을거야. 충격받지 않게 마음 단단히 먹고가"
"나 충격받을까봐 쉴드 치심?"
"어. 완전 걱정돼"
"뭐가 그리 걱정되는데?"
"엄마가 나 포기할까봐."
"포기 할까봐 걱정돼? 푸하하. 너를 포기한다는게 무슨의미야?"

" '난 모르겠으니까 앞으로 너 알아서 해'라고 하는거."
"지금까지도 너 알아서 하라고 했는데?"
"그러게..그런데 두개가 뭔가 좀 다른데...."

" '노력해봤자 어차피 안 될 사람이
바로 너야!'라고 엄마가 너를 평가할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거? 너에 대한 실망으로 관심에서 밀어낼 거 같은? 그래서 낙담할까봐?"
"응..."

"알겠어. 마음 단디 묵고갈게. 너 포기 안할라믄 완죤 쎄게 먹고갈게. 아들인데 포기하믄 안되지. 심호흡 삼십번 즈음 하고 드갈게."

그리고 마음속으로 뒷말을 삼켰다.
'너는 모를테지만, 나는 너에 대한 평가를 들으러 가는게 아니야. 내가 넘지 못 한 과제를 대면하러 가는거지. 내가 모르는 다른쪽 네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에 대한 기대는 가지고 다녀올게'



방금 전 담임선생님과 입시 상담을 하고 나왔다.
교무실 문을 나서는데 마음이 좋았다.
선생님은 나보다 한참 어리셨고 미소가 예쁘셨다.

그녀는 나에게 아이의 성적과 진학에 대해 이야기 하셨지만, 난 들리지 않았고 그녀 이야기 아래에서 흐르고 있는 마음에 관심이 가 있었다.

'아, 다행이다.'란 생각이 가득찼고,

지금껏 아이를 키우며 낙담하게 하게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 분노를 하며 살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이 낙담할까봐 두려웠었다. 아이들이 좌절하여 작은산 하나도 넘지 못할까봐 걱정 했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에게 닥친 과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기쁨을 알게해주고 싶단 생각에 아주 과도하게 꽂혀 있어, 노력하지 않고 변화하려 하지않고 안주하며, 자기논리를 견고하게 하기위해 아이들 탓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화가 나 있었다.

미움받을 용기의 주인공 '아들러'는 이야기 한다.
인간의 기본 성격이 유아기 이전에 형성된다고 주장하는 학설은,
교육자들이 신념을 가지고 자기 과제를 수행하는 것을 방해하게 만들며,
학생들의 오류를 선천적인 탓으로 돌리는 그들에게 면죄부와 책임회피를 주는 태도를 주는 것이라고.

교무실을 나서며 어린시절 상처입은 나를 토닥였다.
'어린 네게 낙담을 맛보게 하던 어른들은 잘못 되었던 거야. 네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격려하지 못했던 무지한 어른들에게 화가 났었던 네가 오히려 옳았던 거야.'라고


"어머님, 아이가 너무 예뻐요. 덩치는 큰데 귀엽고 남자다운 매력까지 갖췄어요. 아이들에게 항상 도움을 주는 oo이가 저희반이어서 참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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