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공작소 Aug 07. 2018

무더위는 추억을 부르고

 아무것도 아닌 시간은 없다

고등학생이 된 둘째 아들이 아직도 껴안고 자는 인형. 애착인형도 아니고.ㅎ

열어 둔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열기가 대단하다.

바람이 아니라  만두 찜통에서 쉬익쉬익 빠져나오는 증기 같다.

며칠이면 지나가겠지 했는데 대단한 기세가 쉬이 물러날 것 같지 않다.
더위를 피해 큰 녀석은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로 피서를 간지 며칠 되었고, 작은 녀석은 하계 훈련하느라

숙소에서 지내느라 간간이 집으로  온다.
평일 오후에는 혼자 있게 되는데 에어컨을 켜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혼자 있어 전기세가 아깝더라도 올해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나도 살아야 하니 침대 매트리스를 낑낑 대고 꺼내서 거실 마룻바닥, 에어컨 옆에 펼쳐 놓았다.
다른 건 다 참아도 밤에 자다가 목 주변으로 흐르는 땀 줄기를 참을 수 없었다.  
정리되지 않은 이불들이 널브러져 있어 정신없지만 어린 시절 추억도 떠오르고 기분이 묘하다.
나란히 나란히 좁은 방에서 누워자던 동생들과의 시간들도 기억나고, 교회 수련회에서 친구들과 함께 자던 퀴퀴한 이불 냄새도 떠오른다.  

나만 그런 건 아닌가 보다.
 "엄마, 이거 왠지 정감 있어 보이는데? 내 매트리스도 좀 꺼내줘."  지난 주말에 집을 찾은 둘째 녀석.
 이불과 매트리스가 거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득 찼다.
작은 아들, 나, 남편이  다리가 맞닿게 비좁게 누워 에어컨을 켜고 잠을 청한다.
자다가 얼굴을 돌리면 다 큰 아이 콧방울이 벌름벌름 움직이며 자고 있고, 이쪽으로 돌아누우면 반쯤 감겨진 눈 사이로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리는 것이 보인다.
이 사람, 꿈이라도 꾸나보다.
방에서 문 닫고 각자 잠을 잘 때와는 다른 기분들이 맞닿은 다리 거리만큼 친밀하게 들락거린다.

"꿀잠 잤어. 다음 주에 외박 나왔을 때도 이렇게 둬야 해. 아기 때 느낌이라 좋네."
"아기 때 느낌?"
"응, 어릴 때 엄마랑 아빠랑 다 같이 잤었잖아."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은 불안이 많아 혼자 재우기 힘들었던 아이였다.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도 밤에 한 번은 일어나 나를 찾아와서는 무섭다며 자기 침대로 끌고 가  좁은 공간에서 칼잠을 자게 만들었다.
아이가 자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다시 내 침대로 돌아오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피로가 잘 풀리지 않았다.
불안하고 걱정이 많은 녀석 덕에 낮도 모자라 밤에까지 내 품을 빌려주느라 고생 많았었다.
그러고 보니 같이 살 비비며 자던 일도 색 바랜 과거로 밀려났다.
 그때 기억이 소복하게 올라오는 것 같다.
이젠 집에 돌아오면 방문 걸어 잠그고 핸드폰과 콩닥콩닥 비밀연애를 하지만 거실에 자리를 깔고 누우니  몇 해전 그 아이를 보는 것 같이 반갑다.

지난날을 생각하니 이 녀석 임신했을 때까지 실타래 풀리 듯 술술 기억이 났다.
시집에서 시할머니, 시부모님들과 함께 살다가 분가를 했다.  
십 평대 작은 아파트에 둥지를 틀고 마음이 편했던지 네 살 터울로 불안감 많은 이 녀석을 임신을 했다.
진짜 신혼은 그때였던 것 같다.
어른들 눈치 보지 않고 참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올림픽 공원이 바로 집 앞이라 배불뚝이가 되어 큰 아이를 데리고 산책하던 기억,
남편은 인라인을 타고 나랑 아이는 아빠 잘한다며 손뼉을 치고 나무 그늘에 앉아 있던 시간들.  
2002년 월드컵 응원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길거리에 앉아 나는 안주를 퍼먹고 남편은 맥주를 마시던 이야기는 아직도 아이들과 나눈다.
2002년 6월이면 배가 커질 만큼 커져서 월드컵을 제대로 보지를 못했다.
임산부는 못 봤다.  아니 볼 수가 없었다
가슴이 콩닥콩닥 거리고 흥분이 되어서 현장감이 떨어지는 저녁 뉴스가 되어서야 시청을 할 수 있었다.
2002년 월드컵 경기를 보지도 않았는데, 이 녀석은 현재 고교 축구선수를 하고 있다는 것도 참 희한하다.

그 해 여름은 정말 더웠던 것 같다.
만삭이 되어 나만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진짜 그 해가 더웠던 건지 내 기억은 믿지 못하지만, 9월 초 출산 예정이던 나는 땀띠로 고생이 심했었다.
지금은  에어컨이 집집마다 두었지만 그때 우리는 돈 도 넉넉지 않아 에어컨은 꿈도 꾸지 못했다.
만삭의  8월 더위는 정말 살인적이었다.
단전부터 끓어오는 짜증과 무더위가 엉겨서 남편과 큰 아이에게 화살처럼 꽂혔다.

"나 너무 더워서 기절할 것 같아. 집도 좁아서 숨이 턱턱 막혀! 이 대로 있다가는 숨이 막혀서 내가 죽을 것 같아. 현석이 더울까봐 낮에는 시원한데  찾아 돌아다니느라 너무 힘들었고. 자긴 에어컨 빵빵 나오는 대서 근무하다가 이렇게 늦게 온 거야?"
남편이 퇴근할 때를 기다렸다가 어린아이같이 투정을 부리면 남편은 들어오려다가 땀에 전 큰 아이와 나를 데리고 드라이브를 하곤 했다.
그 당시 기아 프라이드.
운전석도 조수석도 창문을 돌돌돌 돌려서 열던 작은 차.
방금 전에 들어와서 냉기가 가시지 않은 좌석에 아이와 나를 앉히고  남한산성이며 자유로 며 잠이 올 때까지 드라이브를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하니 피로했던 몸이었을 텐데 남편도 아빠가 되기 위해 참 고생이 많았다 싶다.



"여보, 그거 기억나? 우리 미주 아파트 살 때. 나 현우 임신했을 때 말이야. 그때 내가 너무 더워해서 매일 밤 차 타고 드라이브했던 거."
"음... 기억나지."
"그때 기억이 나네. 에어컨 바람 냄새 맡으니까. 그때 차에서 나온 냉기 냄새가 생각나."
"냄새가 생각나?ㅎㅎ."
" 거실 바닥에 이불들이 깔려 있고 에어컨 켜놓고 앉아 있으니 그때 생각이 나면서 기분이 좋아져.  그때는 나만 고생하는 것 같고. 힘들기만 했던 것 같은데... 당신도 많이 고생하고 노력했었네."
"나는 고생했던 기억이 그리 있진 않네."  
눈이 동그래 장난기 많았던 청년이 오십이 되니 재미없게 무뚝뚝하게 지나치듯 이야기한다.
"그땐 우리가 작은 집을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도 하고, 또 작은 집이 답답하고 그랬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즐거운 추억 같아."

날이 더워서 에어컨 주변으로 이불을 끌고 나왔는데 복닥복닥한 분위기가 추억 한 뭉큼을 가져다주었다.
복닥거리면서 아웅다웅 살았던 시간들이 즐거운 추억으로 알알이 맺힌다.
미래가 불투명해 불안했던 시간들
 그 당시는 힘들고 풀리지 않을 딱딱한 문제들인 것 만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뒤돌아 보니 소소하고 깨알 같던 재미였던 것 같다.
아무것도 아닌 시간들은 없는 것 같다.  

에어컨 아래 거실바닥을 가득 덮은 매트리스와 이불
매거진의 이전글 어린시절의 낙담과 마주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