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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공작소 Oct 12. 2016

기다려 준다는 것.

레벨업!

요즈음 수시1차 합격을 했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한다.

내 아들과 마찬가지로 내 친구의 아이도 이번에 고3이다.

하지만, 두 군데 학교에서 불합격을 안겨 주었다고 하여 아이의  상심이 크다고 한다.

내 친구는 아이의 상심보다도 남편의 태도 때문에 속이 상한단다.

대학에 불합격 소식을 전해들은 남편의 실망이 너무도 커서 아이와 눈도 마주치려 하지도 않고 이야기도 나누지 않고 자리를 피하여 아이에게 두번째 상처를 주는 것 같아 불편하단 내용이다.


아침에 그 이야기를 듣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어릴 적 내 생각이 끼어들어서 그럴까. 잠시 그 생각에 머물러 본다.


부모는 아이들을 기다려 주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도대체 기다리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이의 모든 것을 수용해야 한다는 건지, 아니면 포기하고 방치를 하란 건지... 이만큼 살면서 부모가 배운  경험은 절대 아이에게 이야길 하지 말란 건지.


얼마전 상담 수련 과정 중에 만난 한 초등학교 남자 아이가 있었다.

부모에게 건네들은 이야기로 미루어 '아스퍼거 증후군'이 의심되어, 만나자 마자 검사는 미뤄 두고 아이가 하는 행동을 관찰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이는 검사하기로 한 장소에 들어서자 마자 그 공간엔 내가 없는 마냥 무시한 채 바로 컴퓨터로 달려들었다.

익숙하게 컴퓨터를 켜고 게임에 접속하여 게임을 시작하였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니 아이는 내게 대화를 시도하였고, 자신이 어떤 게임을 좋아하고 그 게임은 어떻게 공략해야 레벨을 올릴 수 있는지 침착하게 잘 설명을 해 주었고, 검사를 위해 나와 약속을 한 후 이행하려는 모습을 보고,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의심은 접어 두었다.


아이는 새로운 게임에 도전 중이 었는데, 여러가지 도구 선택을 이용해 벽을 께서 다음 맵으로 이동하는 나이에 맞는 간단한 게임이었다.


처음 몇 단계는 쉽게 넘어가다가 난이도가 생기자 아이가 전과는 다르게 접근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한 번에 하트가 5개 인데, 한 두번 해보다가 나머지 세 번은 쉽게 포기하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아이가 쉽게 포기 하려 하고 어려울 것 같으면 도전하려 하지 않아요."라고 했던 어머님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이의 표정을 살피니 짜증이 나거나 실망한 표정이 아니라 눈을 부릅뜨고 집중하는 표정이 '포기'와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물어보았다.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해서 실망한거니? 왜 세번의 하트는 그냥 포기 하는 거야?"

"포기가 아니고요, 한 판이 끝나야 전체 지도가 보여요. 그래야 다음에 내가 어떤 도구를 써야 되는지 알아요."

"아~ 그럼 이번 판은 실패가 아니로구나?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전체 지도를 확인하는 과정이란 거지?"

"이렇게 몇 번 죽어야 레벨이 올라가요."


내 머리를 땅~ 때렸다.

게임이긴 하지만 인간 성장의 원리와 같다 싶었다.


"이번 판에 성공 못하면서 무얼 알게 되었니?"

"처음에 망치를 쓰면 안되요. 하트 두번 버릴 때 까지는 드릴로 해야 어쩌고 저쩌고..."

"그걸 알아내다니 너 참 대단하다."

그 후로 아이는 신나서 종알 종알 떠들어 댔다.


사실 그 후로 검사를 할 필요도 없긴 했었다.

 아이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렇지만 부모님께 보고를 하기 위해 검사에 들어가면서 '평가'에 대한 대단한 두려움이 온 몸으로 표현 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아이가 실패나 실수를 할 때 평가가 아니라 '성장의 가능성'을 향해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면,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이 미묘하게 다르다.

 단어선택 조차 다르다.


"너가 그럴 줄 알았어, 그러니까 열심히 했어야지."

"너에게 정말 실망이다. 너 앞으로 어떻게 살을래"

"너 때문에 챙피해서 어떻게 밖에 얼굴을 들고 다니겠어."

이는 다음 판 레벨 업을 위해 준비과정이라는 것을 알아주지도 믿어주지도 않는 부모에게 입을 닫아 버린다.

다음 단계에 도전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하트 다섯 개를 사용하지 않고 그저 가지고 있는 게 낫겠다는 안전함을 추구하고 소극적인 경향을 보이며 쉽게 포기와 회피를 선택하며 컴퓨터가 구식이어 내가 그랬노라 남 탓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아이 지금은 이 과정이  다음 판을 위한 첫 번째 조각이란 걸 알게 되면, 실수하고 실패 한 이 순간이 삶의 체험현장이 된다.

아이 스스로 망치를 선택할지 드릴을 선택 할지 고민하게 된다.

다음판도 마찬가지다 드릴을 선택해서 에너지 고갈이 너무 심했다면 또 다시 다음 선택을 고민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안다면 건네지는 말과 행동이 달라진다.


"이번에 실수가 네게 어떤 의미가 있니?"

"이번 실패가 너에게 큰 밑거름이 되겠구나."

"좌절과 도전이 서로 짝궁이란 걸 알게되는 경험이 되길 바래"

"이번에 실망이 컷겠구나!"


사람에게는 다음 레벨을 준비하려는 방향성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믿는 것.


그것이 기다림이다.

아이가 이번 좌절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다음을 준비해 가는 지, 그것을 삶과 어떻게 엮어서 일구어가는지 그것을 지켜보고 격려하며 응원해 주는 것이 기다림이다.

부모가 먼저 실패와 실수를 '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 과정'으로 볼 수 있도록 관점 스위칭을 해야 한다.


잠시 나의 경험을 내려 놓고 아이가 앞으로 그려그 아이만의 그림의 세계를 기대감을 가지고 지켜보는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그렇게 본 경험이 없으니 '그렇게 되리라는 믿음'이 부족한게다.

내가 경험하여 내가 알고 있는 시각으로 지시한다면 , 아이도 딱 그 만큼 만 경험 할 수 밖에 없다는 진리를 떠 올려본다.

만일 그것이 두렵다면 지금 이 순간 부터 부모인 나 부터 용기를 가지고 다음 레벨을 준비 해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의 글이 쓰고 싶어지는 자극이 주어지길 바라며)


아이가 일구어낸 경험을 같이 수다스럽게 이야기 하고 깔깔대는 기쁨을 맛 볼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엄마, 아빠의 마음은 이랬노라 서로의 경험 이야기를 나눌수 있다는 것을 생각만해도 세포 하나 하나가 춤을 추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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