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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공작소 Sep 20. 2017

"내 눈에서 벗어나지마!"

아이를 통제하던 불안

한 때는  위험이나 어려움에 나의 아이들이 노출 될까 염려하는 마음에  위험 통로를 차단하거나  손 닿는 나의 경계 안에 두고자 노력하였다.


그러자니 나는 아주 예민했다.

(세상은 빨리 변화했고 아이가 위험에 노출 될지 모를 매체들이 밀려 들어 오는 세상이라니!)

그 당시에는 내가 예민하여 긴장상태에 있는 줄도 몰랐다.

긴장과 예민함은 아이들이 경계에 접근 할 때 마다 짜증과 신경질로 튀어 나왔고, 버거운 아이들이 되어 나를 자책하게 만들었다.




누군가 그랬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얼까 하고 나에게 집중하는 것은 이기적인 삶이 아니냐고.

  

그런데 의외였다.


내가 어떤 기분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지 나를 이해하려고 하면 할 수록,  또, 나를 가장 좋은 상태에 두려 노력하며, 내 감정을 소모시키는 타인의 무의식적 요구를 나를 위해 거절하며 나의 공간을 확보하려고 하면 할 수록.


너는 어떤 시각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너를 배려하며 이해하려고 내 기분을 잠시 눌러 놓지 않아도 저절로 바라보아졌다.

그렇게 너와 내가 보여지고 '우리'가 어떻게 관계하는지 알게되니  세상은 살만하고 상호 의지하기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를 좋은 상태에 두려고 할 수록 타인과 함께 하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불안하고 위험하고 의심많던 세상이, 살만한 곳이란 생각이 드니, 아이들을 위험에서 통제하려 애를 쓰던 마음이 서서히 물러났다.


물론 세상에는 위험한 일들도 있고, 견디기 힘든 아픔을 주는 일들도 있다. 아이들이 그런 일들를 만나게 될지 아니면 그냥 지나칠지 모를 일이다.

만일 아이들이 어렵고 힘든일을 겪게 된다면 나는 많이 슬프고 속상하고 또  미리 막아주지는 못 했을까 나 스스로 자책하게 될 것이다.

아이를 혼 낼지도 모르고 으름장을 놓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럴 거라 추측한다.  


그렇지만,

세상은 내가 예비하고 계획 한 대로  즉, 내 중심적으로 움직여 지지 않는다는 진리.  
그래도 살만하고 누리며 즐길만 한 곳이라는 경험.


그 두 가지로 인해 아이가 사는 세상, 혹은  내 주변의 사랑하는 누군가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들에게도 꽤 가치있는 곳이고 의미있는 곳 일거라는  신념이 있다.


아픔이나 닥친 어려움 조차 살만한 삶의 일부이고 그들 자신이 느낄 삶에 대한 자유를  내 염려와 걱정으로 통제를 할 수 있을거란 생각이 어쩌면 '자연의 흐름'앞에서는 오만일 수도 있겠단 생각도 했던 듯도 하다.


그들이 경험하며 느낄 여러 감정들이 - 그것이 긍정적 감정이던 혹은 부정적인 색깔이던- 그들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길 바란다.


때로 나의 그런 태도 때문에 대상에게 '존중'받는 다는 피드백을 받기도 하고, 혹은 '방치'한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누가 어떤 말을 내게 건네던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그들은 그들 스스로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스스로에 대한 평가이며,  어느 누구든지 자신의 감정은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받기 원한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문제에 닥쳤을 때 감정에 송두리째 삼켜지곤 하는 인간임을 잘 알고 있기에  나의 아이와  가족에게, 그리고 불완전한 나를 위해 '하나님의 은혜'가 늘 함께 하길 기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노력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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