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잡한 지하철과 드문드문 오는 시외 버스와 시내버스를 번갈아 타며 3시간 가까이 하교하고 집에 혼자 오는 일은.
"올 수 있겠어? 이제 중3인데 해 봐야지?"
"그래야지. 그런데 엄마, 방금 전에 차 놓친거 같은데? 지하철역에서 너무 헤맸나봐. 시간표 보니 40분 이상 기다려야 해. 아, 짜증나!"
" 타이밍이 안 맞았구나! 이런."
"날씨 너무 춥고 힘든데, 아놔~"
운동하는 아이라 훈련에 항상 찌들어 있는모습이 애처롭고 안쓰러웠다. 게다가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오는데 편하게 뒷 바라지 해주고 싶은 마음도 한 몫한다.
그래서인지,
걱정과 불안감 투성이인 아이가 차가운 바람을 맞고 쓸쓸히 앉아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시간도 많았는데 괜한 고생을 시키는 것이 아닌가 후회가 잠깐 일었다.
그동안 관심도 없던 버스 위치 어플까지 깔아 놓고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 찾아 보기도 하고 아이 보다 내가 좌불안석이다.
"어쩌니, 사 오십분 기다려 할 거 같네."
"힘들고 추운데 나 어쩌라고..."
나의 책임감과 죄책감 자극 시키는 아이 말투가 길게 늘어진다.
내 머릿속이 싸운다.
'지금이라도 데릴러 간다 할까? 카페에서 기다리라면 되지 뭐, 아냐, 중3인데 언제까지 편하게만 살아. 힘든 것도 겪으며 살아야지.'
그리고는 약간의 타협을 할까 싶어 환승하는 마지막 버스 정류장에 나가 있어 볼까 싶어서 살짝 돌려서 말을 건네 보았다.
"혼자 집까지 올 수 있겠어?"
의외의 대답.
"해 봐야지!"
드디어 어렵게 시외버스를 탔다고 카톡이 온다. 대화에서 뿌듯함이 뭍어져 나온다.
다행이구나, 개입하지 않은것이...
아이가 어디즈음 오고 있는지 어플을 확인하고는 핸드폰을 내려 두었다.
나에겐 따뜻한 밥을 정성스럽게 지어 놓을 시간이 생겼다.
"엄마! 나, 왔어. 나 할 수 있을 거 같아. 지하철이 좀 복잡하고 어려워서 걱정인데 그것만 좀 어떻게해결하면 될거 같아. 형은 고등학교 3학년때 한건데 나는 중3인데 했어!"
마지막에 환승하는 버스정류장에 나가지 않은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무슨 권리로 저 아이가 누릴 성취감을 빼앗을 수 있겠어!
아이가 힘들까봐, 아이가 좌절할까봐, 아이가 주눅들까봐, 아이가 낙담할까봐 아이가 슬플까봐 염려하는 나의 불안감들로 인해 해결해주고자 하던 행동들이, 아이가 삶에서 만나는 과제들을 마주하며 경험 하게 될 수 많은 기회들을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내가 아이를 키우며 아이를 향한 욕심들을 억지로 밀려 내려놓을 때, 불안하게 지켜보고 참느라 억울하기까지 하던 그 순간들, 나와 너무 달라 힘들고 무기력 했던 시간들 또한, 내 가 살아가는 과정 중에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추억의 조각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니 의미 없는 순간이 한 순간도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