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울증에 시달렸다.
우울증은 무감정 상태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와 일상생활과 관계유지를 위해 힘을 내야하는 상태 사이의 간격이 낯설고 힘들었다.
자아가 두개로 분리 된 것 같은 이상한 느낌.
이름을 붙이자면 '갱년기 우울증'이랄지, '빈둥지 증후군'이랄지...
이름을 붙이면 좀 나을까 싶었지만 그렇다고 뭐가 나아지는 것 같진 않았다.
원인을 찾으려고 했지만 만나게 된 것은 결국 '살아가면서 만나는 문제를 어떤 태도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였다.
문제를 회피하는 것 보다는 직면하는 것이 가장 빨랐다.
"그래, 너.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 왔구나!"
사는 것은 문제의 연속이다.
예전엔 나도 행복이란 아무일도 일어 나지 않는 안정적인 상태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안정적이고 안전하기 위해 모든 태도가 맞춰졌었다.
문제를 만날까봐 전전긍긍 했고 회피하는데 에너지를 몰입했다.
문제가 생기면 발생하게 되는 실망감, 좌절감, 자책감, 두려움, 걱정, 고뇌가 불편했다.
온 몸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그 감정들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쉬운 선택들을 하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버렸다.
다른사람 이나 환경 탓으로 돌리고 나는 스스로를 불행하고 힘든 삶을 사는 사람으로 간주해 버렸다.
문제를 질질 끌거나 없어지길 바랬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밀려 회피하는 태도를 선택했었다는 것은 훗날 알게되었다.
당면한 과제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만나게 되는 생애 과업들을 해결하는 과정 속에 삶의 의미가 있다.
사실 행복한 삶이 라는 것은 정지된 어떤 한 장면이 아니라
과정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기쁨과 성취감에 대한 기대의 연속이 아닐까란 생각도 해본다.
문제에 부딫치려면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데 사실 그것을 얻으려면 문제에 부딫쳐야지만 얻을 수 있다.
경험을 통해 가능하단 이야기다.
문제를 만나고 직면한다는 것은 힘든일이다.
그 때문에 정신적인 고통을 받으며 마음의 어려움을 갖게 된다.
피하다 보면 문제에 대한 고통보다 피하려고 하다가 생긴 마음의 고통이 더 커지기도 한다.
나에게 가치있는 의미는 살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문제들을 통과하면서 조금씩 바뀌는 것 같다.
몇번의 굴곡을 지나면서 얻은 생각들이지만 문제를 만날 때 마다 두려움이 찾아 오곤 하는 듯하다.
이번엔 내게도 힘든 감정을 만나기 싫어 우울증이 찾아왔나보다.
개인적 삶의 의미가 바뀌는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하다.
우울증 자체가 병약하고 건강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상담사가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처음 느끼는 깊은 외로움 때문에 당신의 생활은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저는 사람들을 찾게 되었어요. 그 전에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했지만 그 때와는 다른 마음이에요."
"어떻게 다르지요?"
" 그 전에는 어떤 의무감 같은거요. 진정으로 그 사람을 만났다기 보다는 내가 무언가 해 주어야 하는... 그런데 지금은 함께 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어요."
이 질문은 내게 새로운 생각을 갖게 해 주었다.
그것은 내가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정으로 다른 세계
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게 말을 한 순간 그 간 나에게 외로움을 호소했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고 그들의 이야기에 내가 진정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껴지기도 했다.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독립적이지도 못하고 제대로 된 자유로움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판단이 내게 있었음을, 그런데 그것을 지금 내가 느끼고 있다는 비난 또한 숨겨 있었음을 안다는 것 또한 고통이다.
나의 우울증은 그동안 내게 의미 있었던 것들에 대한 상실이고, 새로운 의미를 찾기 전의 공황상태 였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참 힘든 일인가 보다.
그동안 잘 갖고 살았던 가치관이 낡아 버렸다.
이제 새로운 가치관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과정에 만난 이 힘든 시간이 훗날 돌이켜 보면 또 새로운 한 마디를 긋는 시간일 거란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