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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공작소 Jan 28. 2020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소중해진 것들

우울증이 남기고 있는 흔적들

하찮은 일들이, 아니 일부는 매우 귀찮았던 일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남편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것. 혹여 춥지 않을까 방 온도를 잘 맞추는 것.

가족을 위해 옷을 깨끗히 세탁을 하고 잘 마르도록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널어두는 것.

설날, 시골 할머니집에서 개인 운동을 하다가 냇가 두렁에 빠져 허벅지 까지 진흙 투성이로 돌아온 아들을 보고 서로 깔깔대고 웃었던 것.

같이 공부하는 선생님들과 일주일에 한번 모여서 자기 생각을 나누는 시간들.

휴가 나온 군인 아들 복귀하며 돌아갈 때 조금 더 오랫동안 뒷 모습을 보기위해 주책 맞은 행동을 한 나의 모습을 아들과 남편이 놀리던 것.

사춘기 아들래미가 엄마말을 안 들어 속상하다고 이야기 하는 동생과의 전화 통화.

자기 몸만 쏘옥 빠져나와 동그란 모양으로 또아리를 지어 허물 벗듯 벗어 논 둘째녀석의 바지를 보며 웃었던 것.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예전엔 힘들고 지쳐 피하고 싶었던 일들인데... 작고 하찮은 순간순간 일상들이 귀해졌다.

이 모든 것이 갱년기를 보내며 우울증이 함께 오고나서 얻은 새로운 변화다.


가치감.
아이들이 크고나서 가장 먼저 잃어 버린 것이 가치감이었다.
나는 그렇지 않을 줄 알았다.
그동안 내가 어떤 것에 집중을 하며 살았는지 돌아볼 시간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갱년기라 함은 생리적인 변화도 있지만  자신이 무언가에서 얻던 가치감과 의미가 서서히 이동하는 시점인 것이 확실하다.
그동안 아이를 키우고 돌보는 것에 시간을 내고 할애를 하면서 힘들기도 하지만 어린 생명을 성인으로 키워내는 아름다운 일을 해냈다.
지나고 보니 그 일들이 힘들고 고되었지만 참 행복했다.
그 시절 알았다면 좀 덜 힘들었을까? ㅎ

의미 있던 일들이 의미가 상실되자 우울증이 왔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가치감을 찾는 일이었다.
생각보다 그것은 멀리 있지는 않는 것 같다.
내가 했었던 것이고, 내가 시간을 들였던 것이고...
그것에 대한 의미가 이렇게 다를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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