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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공작소 Jan 15. 2020

삶의 애잔함이여!

우울의 터널을 지나며

일 년 반 전  우울증이 찾아왔다.

재미없고 의미 없는 시간들이 발목을 감싸기 시작하더니  몸 전체를 축축한 바닥끝으로 무겁게 끌고 내려갔다.

주변은 흐름에 따라 규칙적으로 착착 진행되는데 나는 그 속도를 따르지 못하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바닥에 눌어붙은 껌처럼 아주 깊은 어딘가에 딱 달라붙은 나.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것이 '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찾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렇게 헤매고 다녔는데  우울증에 빠지자 모든 것이 멈춰지고 떡하니 무겁고 거대한 '나'가 공포스럽게 나타났다.

그랬다.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이상한 '나'를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한강대교 위를 운전하며 달리며,

껍데기 육체는 기어를 넣고 속도를 늦추거나 올리고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노래에 맞춰 입은 흥얼거리는데 무겁고 축축한 '또 하나의 나'는 바닥에 감정 없이 습하게 가라앉아 낯설고 이상하게 웅크리고 있었다.

'나, 우울증이구나'


"뭐가 그리 우울하니 그럴수록 몸을 움직이고 즐겁게 살려고 노력해야지."

"왜 그런 건데? 원인이 뭔데 그래? 네 어릴 적 딱딱한 사고가 널 이렇게 만든 거야?"

" 병원을 가. 약을 먹어야 해."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그 이야기들이 오히려 상처로 남았다.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위로 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냥 그게 전부였다.

이상했다.

분명히 위로를 내게 건네는데 건네어 받은 것은  상처였다.


어떤 말은 들으면 들을수록 허리까지 찬 늪의 수위를 더 높이는 것만 같았다.

그들은 늪에 빠진 나를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보며 이렇게 외치는 것만 같았다.

"어쩌다 빠졌어. 발을 잘 못 디딘 거야? 그러니까 내가 조심하라고 했잖아. 여긴 위험하니까 돌아가라고.

내 말을 들었어야지. 넌 여전히 바보구나. 아직도 그러고 있다니. 자, 이제 내 말을 들어. 그 자리에서 힘을 내라고. 열심히 팔을 젓고 다리를 움직이라고!"


나를 위한다는 그 말들은 내게 이렇게 전달되었다.


"아! 너는 나를 모르는구나. 많은 세월 동안 나는 너와 함께 무엇을 나누고 있었던 걸까.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니. 그동안 나는 무얼 하고 있었던 건가."  

그리고 깊은 외로움의 늪으로 밀려들어간 건지 걸어 들어간 건지 모르게 빨려갔다.


누군가에 대해 잘 안다고 이야기한다는 것.

그것이 어려워졌다.

우울증 터널을 겪는 시기가 준 고된 선물이랄까.


어두운 시간을 겪으면서 나에게 몇 가지 현상이 있었다.

작은 자극에도 자꾸 과거로 빨려 들어갔다.

후드티를 깊게 눌러쓴 고등학생과 어깨를 스치고 지날 땐 나의 학창 시절의 고단함이, 까르르 웃고 떠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나의 쓸쓸하고 고독했던 아동기의 시기들을 소환하곤 했다.


현실의 내가 우울해서인지 기쁘고 즐거운 추억보다는

맛없어 씹다 뱉은 껌 같이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던 시간들이 축축하게 튀어나왔다.

눌려 놓았던 기억들은 예고 없이 어 나와 도대체 나는 지금을 사는 건지 과거를 사는 건지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돌아보니 나의 삶들이 슬프고 애잔했다.

내 마음이 슬프고 애잔하니 현실을 사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들이 모두 슬프고 애잔했다. 함부로 그들을 이야기할 수가 없다.

내가 그렇듯 그들의 서사를 함부로 폄하하거나  이렇고 저렇다 이야기할 용기가 없었다.

누군가의 삶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이 이렇게 힘겹고 버거운 일이 었나 싶을 정도로 아팠다.

그것이 또 나를 우울하게 만들기도 했다.


뱅글뱅글 도는 우울의 터널,

이건 내가 미쳤거나 아니면 내가 경험하지 못해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후자이길 바라며 여기저기 쑤시며 기웃거렸지만 상태는 꽤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울의 통로가 지금은 끝이 났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단지 두렵거나 놀란 마음이 진정되었달까.


오늘 제주도 한 카페에 앉아 바닷가를 바라보는데 마음이 이상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제의 마음과는 좀 다르다.

햇 볕을 받아 반짝거리는 바다의 표면과  너무 멀어 보이지 않아 끝인 것처럼 보이는 바다 멀리를 보며 감동이 일었다.


아름답다!

바다도 아름답고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도 아름답다.

너도 나도 몇 겁의 시간과  자연의 (의미 없는) 순환 중에 만난 찰나의 이 순간.

울컥한다.

지금까지 겪어왔던 슬픔도 기쁨도, 좌절도 절망도 그리고 성취나 벅찬 환희의 순간들도 지금 느끼는 이 순간의 감동을 위한 조각들이었을까.


우울이 나에게 몇 가지를 던져준다.

아무것도 아닌 시간은 없다.

과거의 나와 그때 나와 함께 했던 누군가와의 그 시간들.

지금의 나와 아주 찰나의 순간을 함께하는 내 옆의 사람들.

기적 같은 이 시간이 갑자기 귀하고 소중해 졌다.


어쩌면 허무하고 의미없는 이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 점 한 점 찍어가며 그리는 점묘화 처럼  오늘부터 점 하나 찍 듯 의미를 하나 하나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생기를 돋운다.


그렇지만 아직도 내겐,

'산다는 것'은 참 프고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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