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어떻게 하는거에요?" 한동안 엄마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시청하던 6살 지인의 귀여운 꼬마 아이가 내 핸드폰에 관심을 갖는다. " ㅇㅇ 아, 아줌마 것은 엄마 꺼랑 달라, 패턴이야. 그냥 둬. 만지지말고." 엄마가 아이를 말린다.
대화에 집중하다가 슬쩍 아이를 보니 내 핸드폰을 들고 나를 보며 싱긋 미소를 짓는다. 가만 보니, 패턴 잠금 장치를 풀었다! 아마도 좀 전 내가 메세지 확인을 할 때 눈여겨 보았던 듯 하다. "어머! 얘 좀 봐..패턴 잠금 이란 걸 본적도 없고 알려준 적도 없는데?" 엄마가 미안해 하며 한편으로는 놀란다.
아이가 무언가를(특히 도덕성, 도덕적 규범)배울 때 기다려주는 편인가? 아니면 그렇게 내버려 두는 것 같은 상황에 불편함을 느끼는가?
이런 질문에는 아동의 발달 과정에서 나타나는 미묘한 상호 작용에 대한 연구, 유전이나 개인발달의 경향성과 성숙 과정에 대한 연구, 그리고 아동의 환경적 촉진적 연구( 예를 들어 아동 욕구에 적절하게 반응해 주거나 혹은 반대로 적절하게 실패하게 하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런 연구에는 크게 두가지 관점이 존재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는, 아동의 발달과정에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을 형성하는 경향성을 가지고 타고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는 백지 상태의 아동에게 적절히 심어주어야 하며 나이가 들어 저항하기 전 알려주고 지도 해야만 한다.
다른 하나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해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고 판단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더 낫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에 대한 진정한 감각을 갖는 것이다.
두 의견에 '빨리 어떻게 서로 논쟁을 해서라도 하나의 결론을 내어라. 어디에 기준을 놓고 아이를 키워야할지 모르겠다.' 라고 할 필요도 없고 그리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아들 둘이 있다. 일년 전, 큰 아이가 군대에 가고 작은 아이만 (군대 보내 놓고 편하지 않았던 마음과는 별개로) 뒷바라지하고 신경 쓰면 됐다. 둘째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한 아이가 없어서 허전한 감은 있었으나 그리 힘들다거나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둘째 아이가 동계 훈련을 떠나고 큰 아이가 휴가를 얻어 집으로 돌아왔다. 반대로 이제는 큰 아이 하고만 지내면 되었다. 그런데, 큰 아이는 뭔지 모르게 쉬웠다.(란 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서로 의견이 갈라져서 서로 설득을 해야할 에너지가 필요하거나 의견을 맞춰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었다.
그때 알았다. 아! 나... 둘째녀석을 키우면서 에너지를 많이 쓰는구나. 그러고보니 둘째 아이와 대화를 하거나 의견을 모을 때 마다 전략적인(!) 대처가 필요하긴 하다. 서로 관계가 유연해 지기까지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긴 하지만 지금은 편안해 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어느 정도 아이도 커 가고 나도 그 아이의 관계 맺는 방식에 적응을 한 것 같다. 예전보다는 에너지를 덜 쓰지만 아주 힘을 들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나보다.
아이들은 다르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을 키울때의 나의 대처 방식도 달라진다. 일부러 계획을 가져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어 미묘하게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서로가 서로를 배워가는 것 같다.
23살,19살 정도 아이가 크고 보니 관찰이 되는 것이 있다. 생각보다 나의 역할이나 영향이 그렇~~~게 지대하지 않다는 것. 내가 이렇게 하면 아이가 이렇게 따라오고 저렇게 하면 저렇게 될 것이라는 환상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알게 된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조물주가 과연 그리 위험한(!) 권한을 주었을까.
아이를 이렇게 키워야 한다, 저렇게 교육해야 한다는 연구나 조언들을 무시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궁금증이나 배우는 자세로 아이들을 배워야 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기 위한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이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지금 현재 나의 인생과업에서 아이를 키우고 함께해가는 과정에 닥친 큰 과제이고 그 과제를 잘 통과하기 위해 아이에 대해 알고 부모역할에 대해 공부하는 노력.
사람(아이)은 환경(부모)와 상호작용(일방적인 한 방향이 아닌)하며 성장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어쩌면 부모의 그런 노력이(완벽한 가르침이 아닌) 아이에게 우리는 알지 못하는 어떤 영향을 줄 것이고 그것은 또 그 아이 안에서 (어쩌면 신의 영역일) 다른 영향들과 함께 미묘하고 오묘한 섭리를 거쳐 그 아이 다움으로 만들어지고 배워가고 성장하지 않을까.
나의 의도와는 점점 달라지는 모습으로 성장해 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부모가 부족한가 미숙한 것일까 자책하고 죄책감을 가져와 부모의 몫으로 가져오기 보다 아이의 인생은 아이의 몫(부모의 영역이 아닌)으로 봐 줄 수 있는 깡다구가 좀 필요하다.
부모도 배워가며 실수하고 알지 못하는 길을 함께 걸어간다.
성장에 따르는 도전과 고통은 불가피하고 성장하는데 꼭 필요하다. 부모로서 할일은 이런 인생의 도전들로 부터 아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도전을 잘 극복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