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서 주어진 시간,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것들을 활용하여 열심히 배우고 즐기며 살아가지만 결과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통제 할 수 없다.
내가 통제 할 수 있을 것이란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직면하는 순간 허탈감과 우울이 밀려 왔다.
아이러니 하게도 우울이 밀려나가기 시작한 것은 내가 통제 할 수 있는 것 들로 가치감과 의미를 찾기 시작 했을 때 부터다.
내 몸을 움직일 수 있고, 숨을 쉴 수 있고...
공원에 가서 걷기 부터 시작했고, 집 청소 부터 시작했다.
다이어트로 멋진 몸을 만들겠다거나 집안을 이쁘게 꾸며 누군가에게 보여야 겠다는 기대나 목적 같은 것은 없었다.
그냥 걸을 뿐이고, 그냥 청소 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얻은 것은,
내가 통제 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지금, 여기에서 만날 수 있는 것들 뿐이고. 결과(미래의 것)는 나의 영역이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책에 쓰여져 있는 이 같은 구절은 나의 경험이 아니었고, 깨달음을 통해 얻은 진리는 나를 굉장히 자유롭게 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경험이 아닌 것은 진정으로 자기 것이 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겪는 아픔들이 아름다운 과정들로 바라보아지게 되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하는 여러 가지 행위들은 지금 여기 에서만 의미가 있고, 만일 그것이 어떤 훌륭한 결과로 맺어진다면 그것은 참 고마운 일이고 감사한 일이다.
만일 지금의 노력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아도 어쩔 수 없으리. 그것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므로.
그렇지만 지금 여기에서 노력하고 즐겁게 누렸던 감정들은 그 누구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임으로 그 또한 의미가 있지 않을 까.
고3 엄마가 너무 태평하고 관심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까르르 웃고 이런 이야기들은 삼켰다.
나의 아이도 나같은 삶이 주는 가르침을 차차 알게 되겠지.
그러면 삶도 풍요롭고 여유롭게 살 수 있겠지.
나도 그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