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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공작소 Aug 21. 2020

나의 첫번째 아기는 군인 아저씨

주제 없는 끄적임

나의 첫 번째 아기는 이제 어른이다.
그것도 엊그제 군대를 전역(비슷하게) 한 진정한(!) 어른.

어릴 때부터 생각이 남다르고 느리고 곰 같아서, 그래서 나에겐 걱정 거리였던.
지금 생각해 보면 무엇이 그리 걱정이었을까 싶긴 하지만 참 잘 컸다.

나한텐 그 아이에게 해 줄 딱 하나의 과제만 남아 있다.
여드름 흉터 치료.
어릴 적 이 아이는 말 잘 듣는 아이였다.
말을 진짜 잘 들어 모범적이고 착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포함한 어른들 이야기에 토를 달지 않는다.
"네." "알겠어." 응"
둘째 아이와 비교하면 정말 어른들 보기엔 말 잘 듣는 훌륭한 아이였다.

그런데 짜 짠~
말은 잘 듣는데 어른들 말대로 그대로 따르거나 행동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둘째는 징징거리고 딴죽 걸고 삐딱한 얼굴로 반항적이게 보이지만 결국은 어른 뜻에 맞추어 행동했다.
이 아이는 실제로는 말 그대로, 말 만 잘듣는 아이였다.

한창 사춘기 때 어찌나 여드름이 많이 생겼던지,
예쁜 피부 그대로 간직해 주고 싶은 게 엄마의 소망이었는데, 이 녀석은 피부과에 가는 것을 무지 싫어했다.
병원을 예약하고 아이 시간표에 맞춰 데리고 다니는 것이 얼마나 내겐 스트레스였는지 이 아이는 알까.
병원에 가는 날이 라고 하면 알았다고 하고 늦게 오고,
그 스트레스는 화로 변해 아이에게 벼락같이 쏟아내고 후회하기를 몇 번이었는지 모른다.

"엄마, 나는 여드름 있어도 되는데 꼭 병원을 가야 해?"
"여드름 흉터 생기면 못생겨 진단 말이야! 괜찮겠어?"
"응. 꼭 마음에 안 들면 거울 보는 숫자를 줄이면 되지."

그 말이 어처구니없었지만, 중요한 건 내 마음 건강이다 싶어 그냥 기도만 하기로 했다.
"쟤가 20살 될 때 즈음이면 여드름 흉터 치료 기술이 날로 발전하여 흉터가 감쪽같이 없어지기를. 내가 스트레스 받아 일찍 죽어 아이들 마음 아프게 하는 것보다는 여드름 흉터가 나을 수도 있어."라는 극단적인 위로를 내게 하곤 했다.
그리고 작게나마 적금을 부었다. 아들 여드름 흉터 치료용.
꼬꼬마 당시 보이지도 않는 미래를 아이에게 설득하느니 마음의 평안을 선택하기로 했었다.
그래도 아이 피부를 위한 내 소망도 있으니, 그것만 해결해 놓으면 아이에게 해 주고 싶었던 내 기쥰의 과제는 완료가 된다.

우리 아파트 앞에 마을버스 종점이 있는데 그 버스는  신세계 백화점 앞을 기점으로 돌아 다시 우리 집 앞으로 온다.
어느 날, 학원을 가기로 한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여기서 내려야 하나 정류장 숫자를 세다가 뭔가 놓쳤는데, 지금 보니까 다시 우리 집 앞이야."
"뭐어? 한 바퀴 돌다 온 거야?"
"응"
"학원 늦어 버렸네. 참 나."
"어떻게 해?"
"뭘 어떻게 해? 당장 집으로 와. 널 어쩌면 좋니. 정신 좀 차리고 살아라."

며칠 전 아이와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었다.
"너 참, 길 눈이 어두워 그치?"
"엄마, 시간이 지나서 하는 말인데... 사실 그때 학원 가기 싫어서 거짓말한 거야.  벤치에 앉아 있다가 시간 맞춰 전화를 했던 거거든."
"어이구야~  감쪽같이 속였네. 네가 곰 같아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이다, 야.  곰은 아니구나. "
나는 무얼 걱정했던 걸까.

한 달 전 즈음에 전역을 했다.
정확히 말하면 전역이 아니라 긴 말년 휴가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휴가를 나오지 못해 전역 일부터 역으로 꼽아 남은 휴가일을 전역일까지 쓰게 되었다.
어차피 군에 들어가면 자가격리 14일을 해야 해서 다시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아직은 군인 신분이라 자기 위치 및 상황에 대해 종종 보고를 하곤 한다.
사는 지역을 벗어나거나 사고가 났을 때는 군에 알려야 한다니 완전 민간인도 아니다.

엊그제 폭우로 인해 군에서 메시지가 왔단다.
"지난 이틀 동안의 폭우로 인해  집에 피해 있습니까?"
나의 첫째 아들이 보낸 대답에 진짜 육성으로 터졌다.


네. 그렇습니다.
안전하게 집에 피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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