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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공작소 Oct 17. 2021

문제를 해결해 주려다가 생기는 일

메시아 신드롬


가깝고 의미 있는 사람일수록 문제가 생겼거나 힘들어하면 걱정이 앞선다.

마음에 상처가 남을까, 그 일로 인해 관계가 틀어지거나 일을 그르칠까 봐 염려가 된다.

게다가 자초지종을 들어보면 상대나 상황 탓만이 아닌 경우도 많다. 그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면 일을 도와주고 해결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이 때문에 속 상해하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다가 보면 어느 순간부터 나는 시시비비를 가르는 사람이 된다.

"잘 봐. 그 상황에서는 아이가 그 마음이 아니었던 거야. 사실 자기가 마음이 걸리는 게 있으니까 너에게 솔직하게 말하기 어렵지. 진심은 그게 아니라니까?"

아이와 사이가 더욱 나빠질까 봐 염려되어서 빨리 해결을 도와주고 싶어서 하는 말이었는데, 그녀의 얼굴을 보니 이상하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하고 말하던 입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멈춘다. 내가 화를 더욱 돋운 것이 분명하다.

아까보다 더 화가 났다. 오해다.


"아니, 나는 네가 염려되어서..."

"그만해. 내가 그런 이야기 한두 번 들은 것도 아니고, 다 내 잘 못이지. 내가 사람들한테 매번 당하고도 이런다."

"무슨 말이야. 난 그게 아니라..."

"네가 날 그렇게 잘 알아?"

억울했다. 그때는 도대체 뭐가 문제가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말을 멈췄다.

내 입장을 말해 보았자 상황만 더 악화될 뿐이고, 상대의 마음에 불을 더 오르게 하는 화력이 된다는 것 즈음은 이미 수차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내가 너무 화가 나는 일이 있었다.

남편에게 이러니 저러니 이야기를 하자 너무나 평온한 얼굴로 내가 너무 과하다는 말을 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더욱 화가 올랐다.

너무 화가 나 시간이 늦은 것도 잊고 그 당시 친하게 지내던 바로 앞 집 언니에게 달려갔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창피한 일이었지만, 놀라서 일어난 아이들하고 남편분까지 걱정된 눈으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앞집 언니가 "아니, 뭐 그런 미친놈이 있어! 물어보고나 말을 할 것이지!!!"라며 내 편을 들어주었다.

그 이야기 한 마디에 턱 밑까지 차 있었던 억울한 마음이 뻥 뚫린 것처럼 내려갔다.

마음이 뻥 뚫리자 온 가족을 깨운 부끄러움이 따라왔다.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그저 위로를 받고 싶었다.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너무 속상하다고 상처 받았다고 아프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 때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다. 

누군가 화가 나고 속상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해 달라거나 답을 구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친구는 내게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그녀 대신 해결을 해주려고 했다.  거기다가 나는 그런 비슷한 일을 어떻게 해결을 했었는지 얹어서 전달했다.

감정에 가득 차 있는 그녀에게는 나의 의도와 다르게 이렇게 전달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일을 멋지게 해결하는 데, 너는 이런 상황을 참 미숙하게 처리하는구나.'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이지만, 도움을 주기는커녕 마음만 서로 상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려는 것은 '메시아 신드롬'이라고 하던데.

내가 구원자가 되려고 했다는 사실이 떠올려지면 아직도 정신이 아득하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대신 짊어질 수 없다. 이건 자녀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친구가 되었던 자녀가 되었던 그 사람의 문제는 그 사람이 스스로 찾아가며 해결해 나가는 것이 '삶'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외롭지 않도록,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혼자임이 아님을 느끼게 해 주는 것.

다른 사람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최선이다.


간단한 것 같지만, 정말 어렵다는 것을 최근 또 경험했다.

아이가 불안으로 고통스러워할 때, 어찌나 걱정이 되고 염려가 되던지 그 고통을 내가 대신 짊어지고 싶고 해결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자꾸자꾸 앞섰다.

이렇게 저렇게 해결책을 알게 해주려고 하면 할수록 그가 내게서 듣는 메시지는 하나였을 것이다.


'지금 네가 경험하고 있는 것은 정말 이상한 것이니 거기서 빨리 빠져나와.'


정말 어렵다.

상대가 힘들고 고통스러워할 때 그냥 인정해 주며 들어 주는 것.


'지금 네가 느끼는 감정은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야. 그런 기분 느낀다고 이상하거나 나쁜 것은 아니야.'라고 그 자체를 인정해 준다는 것.

결국 그것이 존중이다.

진정한 존중을 경험했을 때, 그 사람은 쏟아지고 엄습해있는 감정에서 길을 찾게 된다.


알아도 자꾸 같은 둔덕에서 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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