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는 쓸 수 없는 인문학"
맞는 방향인 것 같긴 한데,
과연 AI로는 쓸 수 없는 인문학을
인간이 앞으로 얼마나 쓸 수 있을지는
상당히 회의적이다.
길어야 1~2년?
ChatGPT의 지식과 창의력 향상 속도도
이미 인간을 저 멀리 추월했기 때문이다.
시, 소설, 희곡, 동화, 동시...
사실 ChatGPT의 최근 버전으로
영시·독일어 시 번역과
한국 시를 가지고 문학작품 비평 등을 시켜보니,
문학 비평은 이미 인간 최상위권과
사실상 구분 자체가 쉽지 않을 정도로
레벨이 높다.
9년전 알파고 vs 이세돌처럼
AI수준이 이미 인간 문학평론가를
뛰어넘고 있는 듯.
문예창작은 아직은
약간 작위적인 냄새가 풍기고,
뭔가 정형적 한계가 느껴지긴 하지만
역시 인간을 추월할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이미 신춘문예 응모작들 상당수가
AI와의 협업 결과라고
작년 신춘문예 주최 측 신문사가 밝힌 바 있다.
“응모작들 수준이 높아요. 매끄러운 시들이 많네요. ‘AI 스타일’이죠.”
심사를 맡은 한 시인은 신춘문예 붐을 챗GPT 덕(혹은 탓)으로 봤다.
대학교수인 그는 챗GPT 상용화가 본격화한 올해,‘기계 냄새’ 나는 과제물이 부쩍 늘었다고 했다.
하지만 창작자의 자백(?) 없이는 추정에 불과해, 결국 ‘사람 흉내’보다 뛰어난 작품을 고르는 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출처는 댓글)
AI로 쓸 수 없는 인문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PC가 아니라 연필로 쓰는 인문학’ 같은
아주 미세한 니치(niche) 마켓이 될 것이고,
결국 ‘AI와 함께 쓰는 인문학’으로 갈 수밖에 없어 보인다.
AI가 인간의 마지막 남은
인간만의 영역이라 믿었던
‘창의성(creative)’마저
인간을 뛰어넘고 있다는 것이
물론 전혀 감격스럽거나 설레지는 않고,
오히려 약간 슬프고 허탈하긴 하지만...
어쩌면 인문학이 앞으로도 계속 필요한 이유는
그러한 인간 존재와 인간 노력의 무상함과 허무함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이 무변광대한 우주에서
하루하루 잘 먹고, 잘 자고, 잘 사랑하고,
가을을, 또 겨울을, 봄을, 여름을
하루하루 감사히 즐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Gather roses while you can.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그래서 문득 떠오르는 전도서 말씀 ^^
(공동번역 1장 2~11절, 2장 11~13절)
헛되고 헛되다, 설교자는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사람이 하늘 아래서 아무리 수고한들
무슨 보람이 있으랴.
한 세대가 가면 또 한 세대가 오지만
이 땅은 영원히 그대로이다.
떴다 지는 해는 다시 떴던 곳으로 숨가쁘게 가고,
남쪽으로 불어갔다 북쪽으로 돌아오는 바람은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다.
모든 강이 바다로 흘러드는데
바다는 넘치는 일이 없구나.
강물은 떠났던 곳으로 돌아가서
다시 흘러내리는 것을.
세상만사 속절없어 무엇이라 말할 길 없구나.
아무리 보아도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수가 없고,
아무리 들어도 듣고 싶은 대로 듣는 수가 없다.
지금 있는 것은 언젠가 있었던 것이요,
지금 생긴 일은 언젠가 있었던 일이라.
하늘 아래 새 것이 있을 리 없다.
“보아라, 여기 새로운 것이 있구나!” 하더라도 믿지 마라.
그런 일은 우리가 나기 오래전에 이미 있었던 일이다.
지나간 나날이 기억에서 사라지듯,
오는 세월도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이 제때에 알맞게 맞아 들어가도록 만드셨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역사의 수수께끼를 풀고 싶은 마음을 주셨지만,
하느님께서 어떻게 일을 시작하여 어떻게 일을 끝내실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결국 좋은 것은 살아 있는 동안 잘 살며 즐기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사람은 모름지기 수고한 보람으로 먹고 마시며 즐겁게 지낼 일이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