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계약서 내용 이전에 신뢰와 감정이다.
어제는 의뢰인 분께서 17년째 운영하시는 사업체의 자산을 해당 분야에서는 규모가 상당한 기업에 양도하는 계약을 최종적으로 체결했습니다.
저는 의뢰인 쪽에서 영업양수도 계약이 원활히 체결되도록 돕는 역할을 했는데요.
계약서 검토뿐만 아니라 상대방과 그 계약 내용으로 지난한 협상을 이어가는 과정을 겪다 보니, 저도 배우고 느낀 점이 참 많아서 이를 정리하고 여러분들과 함께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사업하시는 분들, 계약 체결을 함에 있어서 미리 읽어보시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당장 체결할 수 없는 중요한 계약은 보통 몇 차례의 협상을 통하여 계약이 당사자에게 유리하도록 수정하고 추가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각 당사자 입장에서는 해당 계약을 성사시킬 의사를 가지고 협상에 임하는 것인데요.
다시 말해서, 두 당사자가 계약 체결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함께 입장 차를 좁혀 나가는 과정인 것이죠.
그런데 협상 과정에서 이건 빼달라 저건 넣어달라 하면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상대방으로서는 그런 태도 자체로 상대방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상대방이 정말 이 계약을 체결할 의사는 있는 것인지 의심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행동이 결국 계약을 무산시키는 작은 틈의 시작이 될 수도 있죠.
따라서 계약 체결에 앞서서 큰 틀에서 계약 내용에 들어갈 수 있는 내용을 모두 정리한 후 계약서상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 대하여 변호사 등과 상의를 통하여 양보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과 나머지 부분을 미리 구분해 두고 차분히 일관된 태도로 협상에 임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 1번 내용과 연결되는 것인데요.
계약 체결에 있어서 양보할 수 없는 중요한 내용이 있는데 그것이 우리에게는 유리하지만 상대방에게는 불리한 규정이라서 상대방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받아낼 것만큼 양보할 부분까지 제안해야 합니다.
변호사 입장에서 의뢰인에게 가장 유리한 계약서를 작성해 줄 수는 있지만, 실제 계약은 당사자 간 서로 얻는 것은 최소화하고, 잃는 것을 최대화하면서 진행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계약 내용대로 계약서에 도장 찍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도 있는 법. 그것은 계약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요.
내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내용이 있다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내용을 양보하면서 얻을 수 있는 만큼의 무언가는 반드시 내줘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내용만 고집한다면, 그건 상대방에게 '난 계약 체결할 의사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비밀유지의무를 규정한 조항에서 비밀유지의무 위반 시 손해배상 청구뿐만 아니라 상당한 금액의 위약벌 규정까지 넣는 경우를 생각해 볼게요.
사실 비밀유지가 중요한 당사자에게 있어서는 상대방이 비밀유지의무를 위반하더라도 손해 발생 사실, 비밀유지의무 위반과 손해 발생 사실 간의 인과관계, 손해배상액에 대한 입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손해배상을 받기는 어렵습니다. 때문에 비밀유지의무 위반만으로 위약금 지급 의무가 발생하는 위약금 규정까지 함께 넣는 것이 훨씬 유리합니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는 상대방으로서는 '손해배상 규정까지 넣었는데 위약금 지급의무까지 넣는다는 것은 우리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거 아냐? 이럴 거면 왜 우리랑 계약한다는 거지?'라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상당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민감한 규정을 꼭 넣고 싶다면, 앞서 2번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다른 부분을 양보함과 동시에 그 규정을 꼭 넣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좋은데요.
"위약금 뺀다는 건, 그런 행위 할 수도 있다는 겁니까? 그런 일 안 하면 되잖아요"라고 말하는 경우는 정말 최악이고요(실제로 의뢰인께서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셔서 수습하느라 진땀 뺐습니다^^;)
그 이유를 상대방으로 돌리는 내용(예를 들어, "생판 처음 보는 당신네 회사를 어떻게 믿습니까? 당신 회사 직원이라도 몰래 빼돌리면 어떡합니까?")이 아니라, 우리 쪽으로 돌리는 내용(예를 들어, "제가 그동안 여러 거래를 해 오면서 몇 번 비밀 침해를 당해서 사실 그 부분이 많이 불안한 상태입니다. 상대 회사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제가 이 계약을 체결하는데 좀 더 안정된 맘으로 임하고 싶어서 그러니 양해 부탁드립니다"라는 식)이 좋습니다.
그래야 상대방 감정 건드리는 일 없이 해당 규정을 지킬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의뢰인분들 중에는 계약 체결에 앞서서 상대방을 마치 경계해야 할 '적'으로 생각하고, 상대방의 협상 과정에서의 제안이 무슨 꿍꿍이가 있다고 추측하거나, 자신들에게 유리하게만 끌고 가려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러한 생각은 자연스레 상대방을 대면함에 있어서의 표정이나 말투, 태도 등에서 묻어 나옵니다.
상대방도 이를 느낄 수밖에 없고요.
그럴 경우 협상 분위기는 안 좋게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왕 계약을 체결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상대방을 '계약을 당사자 모두에게 이롭게 체결하는 목표'에 함께 도달하기 위한 동반자 내지 협력자라고 생각하고, 불필요한 의심 등 경계의 마음은 걷어내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상대방이 부당한 것을 요구한다면 일단은 이에 대해서 좀 더 고민해 보겠다는 선에서 드라이하게 마무리하고, 변호사 등과 상의 후 대응하면 됩니다.
협상 분위기가 좋아야 상대방도 우리의 요구를 좀 더 잘 들어 줄 확률이 높아집니다.
어느 정도 규모가 큰 회사와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상대방 회사의 법무팀 또는 경영지원팀 등 담당자와 계약 체결 협상을 하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회사의 담당자는 당연히 자신에게 월급을 주는 회사에 이익되는 방향으로만 생각할 수밖에 없고, 그 밖에 자신의 선에서 결정권을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계약 체결에 있어서 회사의 담당자 선에서 막혔다고 하여 그대로 포기할 것이 아니라, 계약 체결의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결정권자와 협상이 가능하다면 이를 시도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큰 틀에서 이렇게 계약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우리는 이 정도 배려해 드리니 저희의 이 정도 요청은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겠다'라는 식으로 먼저 계약 체결 과정이 두 당사자의 취지대로 원활하게 잘 이루어지고 있고, 우리가 이를 위해서 상대방을 배려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우리의 요청을 정중히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상대방의 결정권자의 결정으로 우리 쪽이 원하는 계약 내용을 관철한 예도 있습니다.
변호사로서, 의뢰인께 계약서를 유리하게 써 드리는 것과 실제로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은 정말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앞으로 계약 체결하심에 있어서 제가 배우거나 느꼈던 점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