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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윤 변호사 Feb 06. 2022

상대방에 계약서 제시할 때 사소한 팁

사소하지만 꽤나 효과적인.

이런저런 계약서를 쓸 일이 많은데, 계약 과정에 직접 참여하거나 내가 계약 당사자가 되어 계약을 체결해 보니 변호사로서 계약서를 의뢰인에 유리하게 써주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님을 깨닫게 된다.

계약도 사람 간의 일이라, 최종적으로 도장을 찍을지 여부는 대부분 감정이 좌우하더라는.


일단 계약서를 제시한 쪽에서는 당연히 자신들에게 유리한 계약서를 작성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받아보는 상대방으로서는 불쾌할 수 있다.

어떠한 관계이든 자신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불쾌한 게 당연지사.

‘이거 계약 체결하면 앞으로 피곤해지는 거 아냐?’

‘계속 자기 유리하게만 끌고 가려는 거 아냐?’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부터 들게 되는 것이다. 

계약 체결 과정에서 좋게 작용할 리가 없다.


특히 위약금(좀 더 나가면 위약벌) 규정에 예민하다. 까딱하다 실수하면 몇천~몇억 물어야 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계약서 초안을 제시할 때는 정말 디테일에 신경을 써야 한다. 꼭 성사시키고 싶은 계약일수록 더더욱.


이때, 앞서 본 부정적인 생각을 줄일 수 있는 별 것 아닌 방법이 있다.

“저희 자문 변호사가 초안을 작성해 봤는데 검토 부탁드립니다.”라며 공손하게 변호사 핑계(?)를 살짝 대는 것.

‘내 생각이기보다는 우리 변호사가 이렇게 쓰래요. 그러니 보시고 의견 주세요.’ 이런 의미다. 상대방 입장에서도 당사자가 쓴 것이 아니라 변호사가 썼다니 불쾌감이 덜하고 좀 더 편하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경험상 대뜸 “계약서 확인해주세요.”라고 하는 것과 분위기 차이가 꽤나 크다.


여기에 더해서 그 계약서를 작성한 변호사가 “혹시 의문 가는 부분이 있으면 편히 물어보시라”라고 하며 각 조문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상대방 앞에서 조곤조곤 설명까지 해 준다면 금상첨화. 상대방이 계약서를 혼자서 검토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오해를 방지할 수 있다. 대부분의 분쟁이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되기에, 그리고 오해는 사람이 편향된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고약한 성질이 있어 위험하기에, 불필요한 오해를 막는 것은 수고스럽더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것. 


계약 체결 과정에서 상대방이 나에 대해  '어라, 이 사람 진짜 이기적이네. 1원의 손해도 안 보려고 하는구먼!'이라고 느꼈다고 생각해보자. 그렇게 되면 계약 성사 가능성이 낮아질 뿐만 아니라 설령 계약을 체결했더라도 계약에 따른 내용 진행 과정에서 내가 하는 행동들을 위와 같이 느낀 틀 안에서 편견을 갖고 재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처음 가진 생각이 중요한 것이다.




한편, 계약서 검토를 요청했는데, 상대방이 위약금(또는 위약벌) 규정은 부담스러우니 빼 달라고 하고 그 밖에 여러 규정에 대해 수정을 요청했다 치자.

이를 대비해서는 미리 계약서에서 내가 꼭 사수해야 하는 규정과 중요성이 떨어지는 규정을 미리 선별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나에게 100% 유리한 계약서로 계약을 하는 것은 욕심이다. 이해관계가 다른 당사자들 간 줄다리기를 하며 어느 정도 균형점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계약이 체결되기 때문이다. 

만약 위약금 규정보다 사수해야 할 더 중요한 다른 규정이 있다면 그 규정을 받아내고, 위약금 규정을 내줘야 할 수 있다. 반대로 위약금 규정이 가장 중요하다면, 그 필요성을 진정성 있게 설명하면서 상대방의 다른 요구사항을 모두 수용하는 등 서로 주거니 받거니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상대방이 ‘그래도 우리 입장을 존중하면서 최대한 받아들이려고 하는군.’이라고 느끼도록 하는 표정과 말투, 제스처도 중요함은 물론이다.




‘나는 계약할 때 쉽게 했는데? 이렇게 복잡하게 할 필요가 있나?’


이 글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 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내가 계약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은 아닌지, 그동안 간과해왔던 것은 없는지 돌이켜보자(물론 간단한 내용이거나 표준계약서에 따라 진행되는 경우라면 계약과정이 쉬울 수 있다). 사실 슬프게도, 내가 계약을 잘못해온 것은 문제가 터지기 전까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수많은 사업 선배들이 계약서를 잘 써야 한다고 말하는 데는 그 이유가 있다. 


쓰다 보니 말이 너무 길어졌다.

계약 과정에서 서로 감정 낭비, 시간 낭비하는 경우를 많이 보다 보니...


아무튼 ‘핑계’로 성공한 사람은 김건모밖에 없다고 하는데, 아니다.

변호사 핑계 대도 성공한다.(무리하게 갖다 붙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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