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살 빚쟁이 지방청년의 수도권 자가마련 이야기

1편, 집을 사기 전,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by 작가 재영

얼마전 집을 샀다. 지금은 잔금을 치르고 인테리어 공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 글은 집을 잘 산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20대 때 우여곡절을 겪고 딛고 일어나며 마련한 돈으로 대출을 끼고 집을 사는 과정을 현실적인 조건하에 맞으며 배운 한 사람의 기록이다. 우리는 보통 세입자로 살면서 부동산을 처음 접하고, 계약서에 적힌 용어들과 대출 조건을 그때그때 마주하며 몸으로 배운다. 나 역시 월세를 오가며 살았고, 집을 소유한다는 개념은 늘 막연한 미래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막상 집을 사는 상황에 놓이니, 그동안 대충 알고 넘어갔던 개념들이 하나씩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왔다. 대출은 어떻게 계산되는지, 내 자금 상태는 어떤지, 이 선택이 몇 년 뒤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같은 질문들이 동시에 쌓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글은 성공담이 아니라, 집을 사기까지 내가 실제로 거쳐온 생각과 판단의 흐름을 그대로 남겨두려는 시도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느낀 건, 집을 사는 방법 자체보다 집을 사기 위해 어떤 상식을 알고 있어야 하는지가 훨씬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용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선택이 흐려지고, 숫자를 대충 넘기면 책임은 결국 온전히 나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현실적인 정보와 경제 개념들을 한 번 정리해보려 했다. 전체 글은 총 세 편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편에서는 집을 사기까지의 자금 준비 과정과 대출, 기준을 다루고, 두 번째 편에서는 실제로 집을 매수하는 과정과 후속적인 이야기. 마지막 세 번째 편에서는 집을 산 이후에 마주하게 되는 세금, 보유 비용, 그리고 이후 매매를 고려할 때 알아야 할 현실적인 내용들을 정리할 예정이다. 어디까지나 정답을 제시하려는 글은 아니지만, 사회초년생의 눈으로 한 번쯤 정리해두면 좋을 이야기들을 담았다. 이 기록이 언젠가 집을 사게 될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chapter 1. 주식으로 3천만원을 잃고 방황한 나의 27살


26살에 수도권으로 올라왔다. 직업적인 특성 때문이었다. 창업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일이 모이는 곳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는 구조였다. 선택이라기보다는 당시 내 삶의 조건에 가까운 이동이었다. 그전까지는 세종시에 있었다. 세종시는 말 그대로 공무원의 도시였다. 일을 따내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고, 간혹 일이 들어와도 대부분 인천이나 서울, 경기권이었다. 이동이 잦아질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서울 근교를 오가다 결국 서울에 정착해 2년 정도 월세 생활을 하게 됐다. 지방은 월세가 싸고 생활이 비교적 평화롭다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 그래서 늘 마음 한편에는 언젠가는 다시 내려가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있었다. 다만 그 ‘언젠가’는 늘 지금은 아니었다.


27살, 서울에 살던 시기였다. 마침 토스로 해외주식이 유행처럼 번지던 때였고, 나 역시 그 흐름에 올라탔다. 결과적으로는 잘못된 투자였다. 물타기가 답이라고 믿었고, 평균 단가를 낮추면 언젠가는 올라올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잡은 건 나스닥의 중소기업주였다. 물을 타면 탈수록 내려가는, 지금 돌이켜보면 꽤 악질에 가까운 종목이었다. 결국 빚까지 내서 물을 탔고, 수익률은 -99%에 가까워졌다. 남은 건 3천만 원의 빚이었다. 그때는 너무 쪽팔려서 주변에 말도 하지 못했다. 주식으로 크게 날렸다는 이야기를 꺼낼 용기가 없었다. 대신 생각은 단순했다. 지금보다 두 배로 벌어서 갚으면 되지 않겠냐는, 지금 보면 무모한 계산이었다. 문제는 그 시점에 대학원까지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학비라는 새로운 리스크를 안은 채 월세와 생활비, 사업자금, 각종 대출이 동시에 빠져나갔고, 한 달 고정비만 6~700만 원이 기본이던 시기가 이어졌다. 누군가는 사업자인데 그 정도면 감당할 만하지 않겠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놀랍게도 1인 사업자였다. 사대보험 부담도 크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20대 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꼽자면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포기하기에는 벌려놓은 게 너무 많았다. 그래서 부딪히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대학 창업센터 지원을 통해 기숙사 입주를 알아볼 만큼 생활을 극단적으로 줄이려는 준비까지 했을 정도로 각박한 시기였다. 상황이 남들보다 2-3배 어려워졌다면, 나는 4-5배는 벌어야 이걸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외주라는 외주는 가리지 않고 받기 시작했고, 1인 사업자로는 감당이 안 될 만큼 일을 끌어안았다. 월천이라는 실현불가능한 일들이 잦게 일어나기 시작했고, 몸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자본적 위로 하나로 버티며 살아가게 되었다. 사실 원래 성격은 하나하나 차근차근, 완성도를 기준으로 일하는 방식을 선호했지만 그때는 그런 여유가 없었다. 온갖 종류의 일을 동시에 떠안은 채, 버티듯 하루하루를 넘기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멀티플레이어가 되어갔다.


창업은 말 그대로 취업과 다르다. 월급이 정해져 있지 않고, 한 만큼 번다는 단순한 구조다. 나는 그 차이를 비교적 빨리 체감한 편이었다. 취업을 했을 때도 월급이 늘어나는 속도가 답답했고, 그래서 일을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투잡을 병행했다. 같은 시간을 써도 손에 쥐는 돈이 달라지는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니, 돈에 대한 욕심은 점점 더 분명해졌다.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을 숨기지 않았고, 그걸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았다. 그래서 창업이라는 선택지는 내게 도전이라기보다, 오히려 구조적으로 더 솔직한 판처럼 느껴졌다.


이 시기를 지나오면서 하나 분명해진 생각이 있었다. 돈을 모을 때 목표를 ‘1천만 원’, ‘1억 원’ 같은 금액으로 잡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사고방식이 굉장히 빠르게 막힌다는 점이었다. 그 숫자들은 분명 구체적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상한선이 있는 목표이기도 했다. 얼마를 더 벌어야 하는지보다, 언제까지 버텨야 하는지에 생각이 고정되기 쉽다. 그래서 나는 중간부터 접근 방식을 바꿨다. 돈을 얼마 모으겠다는 목표 대신, 내 노동과 판단의 단가를 얼마까지 끌어올릴 수 있느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한 건당 100만 원을 벌고 있다면, 그걸 모아서 200으로 쌓아서 채워야겠다가 아니라 500을 한번에 벌수있게 스스로에게 자기투자를 하는것이다. 그런 배경속에 일을 더 많이 하면서도, 같은 시간에 더 큰 결정을 맡고, 더 높은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단가가 바뀌면 이상하게도 ‘얼마를 모아야 한다’는 감각 자체가 달라진다. 1천만 원은 더 이상 큰 목표가 아니게 되고, 1억도 시간의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돈을 모으는 행위가 인내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이 방식의 좋은 점은, 억지로 절약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었다. 물론 불필요한 지출은 줄였지만, 삶을 극단적으로 쥐어짜며 돈을 모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대신 내 몸값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했다. 단가를 올릴 수 없는 일은 과감히 줄였고, 단가를 올릴 여지가 있는 일에 체력과 공부요소를 몰아넣었다. 그렇게 스케일이 바뀌자, 매달 빠져나가던 150만 원의 대출 상환도 더 이상 ‘버거운 비용’이 아니라 하나의 고정된 시스템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기는 돈을 모은 시기라기보다, 돈을 다루는 기준 자체를 다시 세운 시간에 가까웠던 것 같다.


구매했던 차량


chapter 2. 아파트를 위해 포기한 것.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대출까지 받아 투자했던 주식이 -98%까지 갔다가, 말 그대로 운 좋게 원금 가까이 회복됐다. 흔히 말하는 밈 주식이었기에 가능했던 결과였다. 그 돈이 돌아왔고, 정말 철이 없던 나는 늘 좋은 차를 끌고 싶다는 욕심을 다시 꺼냈다. 회복한 원금으로 제네시스 GV70을 뽑았다. 차량가액만 5천만 원이 넘는 차였다. 그전에도 셀토스나 트렉스 같은 신차를 타고 다녔지만, 왜 그렇게 차에 대한 욕심이 많았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 이 정도는 누려도 되지 않나라는 생각을 쉽게 했다. 다행이라면, 그 주식은 손실을 확정하지 않고 오래 들고 있다가 회복된 경우라 세금 문제에서는 자유로웠다는 점이다. 주식은 떨어졌다고 해서 세금을 내는 게 아니라, 팔아서 수익이 확정되는 순간에만 과세가 된다. 나는 거의 본전 수준에서 정리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낼 세금이 없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만약 그때 손실을 견디지 못하고 팔았다가 다시 들어가 수익이 났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해외 주식의 경우, 매도해서 이익이 나면 그 금액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연간 수익에서 기본 공제를 제외한 금액에 대해 22%가 과세된다. 세율이 유독 높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세금이 단순히 이익에만 붙는 게 아니라 국가 입장에서는 해외 자본 이동에 대한 일종의 관리 비용처럼 작동하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에는 다행히도 손실을 본 금액을 일정 부분 이익에서 차감해주는 제도가 있어서, 이전에 잃은 돈이 있다면 전부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지는 않는다. 그래도 결론은 같다. 팔고 다시 사서 수익이 나면, 그 순간부터는 세금이 따라온다.


그리고 차를 출고한 후, 1년쯤 지나서야 현실을 마주했다. 달마다 버거운 유지비가 체감되기 시작했다. 차량가의 절반에 가까운 약 3천만 원을 할부 대출로 끼고 있었고, 연비도 좋은 차는 아니었다. 사업자용 차량으로 구매하면서 보험은 나 혼자만 들어야 했고, 부모님을 함께 올려 보험료를 낮추는 선택지도 쓸 수 없었다. 그 결과 1년에 보험료만 200만 원 가까이 나갔고, 기름값이며 각종 유지비가 많이 나가는 달에는 100만 원에 육박했다. 배기량이 높다 보니 자동차세도 40만 원이 넘었다. 가만히 있어도 돈이 줄줄 새는 구조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선택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이후의 모든 선택을 좁혀버리는 꽤 치명적인 악재였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좋은 차는 살 수 있느냐보다, 유지할 수 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는 걸.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었다. 일이 많아지고 사업이 커질수록, 차는 점점 방치되고 나는 일만 하고 있었다. 서울과 경기도에서는 주차가 너무 어려워서 좋은 차를 길바닥에 세워두는 일이 잦았고, 가까운 거리는 차보다 지하철이 훨씬 빨라 자연스럽게 차를 덜 쓰게 됐다. 그렇게 차를 동경하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는 안정적인 집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막연하고 머나먼 목표라고 생각했던 자가 마련이, 주변에 괜찮은 매물들을 보다 보니 1억 조금 넘는 돈만 준비하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파트를 살 때 차량 대출이 있으면 불리하다는 사실, 특히 LTV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다. 그렇게 목표는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1년 안에 차를 정리하고, 집을 사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chapter 3. 집을 알아보다


집을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마주한 벽이 대출이었다. 그전까지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집값의 몇 퍼센트까지 빌려주는지 정도로만 알았고, 그 기준이 내 상황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 처음 알게 된 게 LTV라는 개념이었다. LTV는 쉽게 말해 집값 대비 얼마까지 돈을 빌려줄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이다. 5억짜리 집에 LTV 70%가 적용되면 최대 3억 5천만 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는 식이다. 문제는 이 계산이 내가 실제로 집을 얼마에 샀는지가 아니라, 은행과 국가가 이 집을 얼마짜리로 평가하느냐를 기준으로 한다는 점이었다. 거래가가 아무리 높아도 기준 가격이 낮으면, 대출 한도는 그 선에서 잘렸다. 집을 살 수 있느냐 없느냐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이 숫자 하나로 정리됐다.


그다음에 헷갈렸던 게 왜 자동차 대출이나 신용대출이 있으면 주택 대출이 줄어드느냐는 부분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대출을 각각의 문제로 생각하고 있었다. 차는 차고, 집은 집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은행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은행이 보는 건 ‘이 사람이 한 달에 갚아야 할 돈의 총합’이었다. 이미 자동차 할부나 신용대출이 있다면, 그만큼 매달 고정으로 빠져나가는 돈이 존재한다는 뜻이고, 그 상태에서 집 대출까지 얹으면 상환 능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하는 구조였다. 그래서 주택 대출을 받을 때는 기존 대출이 그대로 제한으로 작용했다. 특히 신용대출은 담보가 없는 돈이기 때문에 더 보수적으로 계산됐다. 결국 집을 사기 전의 내 모든 대출 기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신용 상태표가 됐다.


이 과정을 지나면서 대출은 단순히 돈을 빌리는 문제가 아니라, 생활 전체를 평가받는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됐다. 얼마를 벌고 있는지, 매달 얼마를 쓰고 있는지, 이미 어떤 선택들을 해왔는지가 전부 숫자로 환산돼 있었다. 그래서 자동차를 유지하고 있느냐, 이미 다른 빚을 안고 있느냐 같은 선택들이 집을 살 수 있는지 없는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때서야 이해했다. 왜 다들 집을 사기 전에 차부터 정리하라는 말을 하는지, 왜 대출을 줄이는 게 단순히 부담을 덜기 위한 게 아니라 선택지를 넓히는 일인지. LTV라는 숫자는 집값의 비율을 말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사람의 현재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에 더 가까웠다.


여기에 하나 더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주택담보대출은 보통 은행 창구에서 바로 진행되기보다는, 부동산을 통해 연결된 대출 담당자를 먼저 만나게 된다. 흔히 모기지 파트너, 모기지 담당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모기지는 영어로 mortgage, 즉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대출을 뜻한다. 말 그대로 집을 은행에 맡기고, 그 집을 담보로 장기간 돈을 빌리는 구조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주택담보대출이 바로 이 모기지다. 모기지 파트너는 이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여러 은행 기준으로 비교해주고, 내 상황에 맞는 조건을 연결해주는 중개 역할을 한다.


이 사람들은 은행에 소속된 직원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비공식적인 존재도 아니다. 여러 은행과 제휴를 맺고, 대출이 실행되면 은행으로부터 일정 수수료를 받는 구조로 일한다. 내가 직접 돈을 지급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대출이 실제로 실행돼야 수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승인 가능성과 조건을 중심으로 조언을 하게 된다. 그래서 모기지 담당자를 만날 때는 은행 직원처럼 무조건 신뢰할 필요도 없고, 반대로 무시할 대상도 아니다. 좋은 담당자를 만나면 어떤 은행이 지금 내 조건에 유리한지, 감정평가와 대출 승인 과정이 어떻게 흘러가는지까지 미리 정리해줘서 실제로 손이 훨씬 덜 간다.


실제 대출을 진행하면서 가장 현실적으로 와닿았던 건, 서류의 양이었다. 부동산 매매 대출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종이에 서명을 요구한다. 나는 전자서명으로 진행했는데도 서류를 쓰는 데만 1시간 반 가까이 걸렸다. 한두 장이 아니었고, 계약서와 대출 약정서, 각종 동의서와 확인서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어디에 어떤 의미로 서명하는지도 중간중간 설명을 들어야 했다. 그제야 실감했다. 집을 산다는 건 단순히 돈을 준비하는 일이 아니라, 앞으로의 생활과 책임을 문서로 남기는 과정이라는 걸. 서명을 마치는 순간부터, 이 선택은 말이 아니라 기록으로 남기 시작했다.



chapter 4. 내가 사는 집엔 집주인이 아니라 세입자가 살고있다.


사업자인 나의 사무실은 인천 아라역에 있다. 어차피 오래 사업을 할 생각이었고, 모아둔 돈에 조금을 보태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작년에 상가 두 개를 매입해 등기를 치르고 사무실을 마련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사무실 바로 앞에 역이 들어왔다. 아라역이다. 검단신도시 출범과 함께 만들어진 역이라 주변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는 구조가 형성됐다. 흔히 말하는 항아리상권, 즉 주거지로 둘러싸여 외부로 빠져나가기보다는 내부에서 소비가 반복되는 형태의 상권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신도시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문제는 그만큼 공급도 많았고, 새로 지어진 아파트들의 가격대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었다.


신도시 상권 중심의 아파트들은 대부분 5억에서 9억 사이에 가격이 형성돼 있었다. 반면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구도심 쪽으로 눈을 돌리면, 같은 생활권 안에서도 3억에서 5억대의 아파트들이 보였다. 나는 32평형, 저층은 아니면서 앞에 시야가 트여 있는 집을 원했다. 이 조건을 동시에 만족하는 매물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매물은 늘 나와 있지만, 잘 팔릴 만한 매물은 늘 빠져 있었다. 저층을 피하고 전망을 보는 이유도 단순했다. 나중에 다시 팔아야 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층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지만 수요가 적고,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경우가 많아 거래가 느리다. 반대로 전망이 트인 집은 체감 가치가 높고, 시장이 식어도 상대적으로 덜 흔들린다. 집을 고르면서 동시에 출구까지 같이 보는 습관이 그때부터 생겼다.


그래서 방향을 바꿨다. 어느 정도 시드머니가 준비됐고, 이 지역에 대한 확신도 생긴 상태였기 때문에 부동산 소장님께 애매한 가능성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마음에 들면 바로 매매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간만 보지 않고 실제로 살 사람이라는 걸 먼저 알려야 더 좋은 조건으로 적극적으로 준비할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건을 전달했고, 주말마다 임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임장은 말 그대로 현장을 직접 밟아보는 일이다. 지도나 사진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동네 분위기, 시간대별 소음, 단지의 실제 관리 상태를 몸으로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하나씩 걸어 다니며, 내가 사는 집에 내가 살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다.


아파트 임장을 다니면서 가장 먼저 보게 된 건 단지의 전체 관리 상태였다. 겉으로 새 아파트처럼 보이는지보다, 실제로 얼마나 관리가 되고 있는지가 더 중요했다. 외벽에 오염이나 균열이 많은지, 공용부 마감이 오래 방치된 흔적은 없는지부터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수도권 아파트에서 특히 중요하게 본 건 주차였다. 단순히 지하주차장이 있는지가 아니라, 실제로 주차 자리가 남는지, 밤 시간에도 이중주차 없이 여유가 있는지를 확인했다. 주차 공간이 부족한 단지는 생활 스트레스가 누적되기 쉽고, 나중에 매매할 때도 체감 가치가 크게 떨어진다. 지하주차장의 밝기와 동선도 함께 봤다. 기둥 간격이 좁아 주차가 불편하지는 않은지, 비 오는 날에도 이동이 수월한 구조인지가 중요했다.


집 안으로 들어가면 채광과 전망을 먼저 확인했다. 같은 평형이라도 앞이 트여 있는지, 맞은편 동과의 거리 차이에 따라 공간감이 크게 달랐다. 바닥과 벽지는 단순히 더럽고 깨끗함의 문제가 아니라, 보수 범위를 가늠하는 기준이었다. 스크래치나 들뜸이 어느 정도인지, 전체 교체가 필요한지 부분 보수로 가능한지를 계산했다. 창호 상태도 꼭 체크했다. 이중창 여부, 창틀 마감, 결로 흔적은 향후 난방비와 직결된다. 소음 역시 중요했다. 창문을 닫았을 때와 열었을 때 각각 도로 소음, 단지 내 차량 소리, 외부 생활 소음이 어느 정도로 들어오는지를 짧게라도 확인했다. 결국 아파트 임장은 집 하나를 보는 일이 아니라, 이 건물이 얼마나 잘 관리되고 있고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구매하게된 집 매물

chapter 5. 사고싶은 집이 생겼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에 드는 아파트 단지를 찾았다. 그 단지 안에서만 열 개 정도의 매물을 봤다. 시기도 나쁘지 않았다. 2025년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경제적으로 다들 여유가 없던 때였고, 급하게 정리하려는 매물들이 시장에 꽤 나와 있었다. 덕분에 선택지는 넓었다. 아파트를 보다 보니 가격에도 여러 이름이 있다는 걸 다시 정리하게 됐다. 흔히 말하는 호가는 집주인이 부르고 싶은 가격이고, 실거래가는 실제로 계약이 성사된 가격이다. 여기에 하나 더 중요한 기준이 있는데, 바로 감정평가액이다. 이건 은행과 국가가 그 집을 얼마짜리로 보느냐에 대한 기준값이다. 나는 단지 안에서 여러 매물의 호가를 쭉 정리해놓고, 그 가격이 왜 그렇게 형성됐는지를 하나씩 뜯어보기 시작했다. 층수, 인테리어 여부, 전망, 방이 트여 있는 구조인지, 가격 절충 여지는 얼마나 되는지까지 전부 리스트로 만들어 체크했다. 사진으로만 보면 비슷해 보여도, 실제로 따져보면 같은 평형 안에서도 조건 차이는 꽤 컸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내 자금 구조를 다시 계산했다. 대출 가능 금액을 보수적으로 잡고, 현금에서 무리 없이 쓸 수 있는 범위를 따졌을 때 적정한 현금 투입액은 9천만 원에서 1억 원 정도라고 판단했다. 여기에 취득세와 각종 부대비용, 그리고 인테리어 비용으로 약 2천만 원, 가구 구입비로 1천만 원 정도는 따로 남기고 싶었다. 그렇게 총 1억 3천만 원 정도를 기준으로 준비했고, 이 자금 구조에서 현실적인 목표는 3억 1천만 원 선의 중층, 조건 좋은 매물이었다. 이때 확실히 알게 된 게 하나 있었다. 아파트 대출은 내가 얼마에 사고 싶으냐가 아니라, 감정평가액을 기준으로 LTV 비율을 적용해 산정된다는 점이다. 호가가 높아도 감정가가 낮으면 대출은 거기서 끊기고, 반대로 실거래가가 낮게 형성된 매물은 같은 조건에서도 자금 운용이 훨씬 수월해진다. 결국 대출 가능 여부와 금리는, 집의 ‘시장 가격’보다 ‘평가 가격’에 더 크게 좌우됐다.


알아보는 과정에서 세안고 매매도 무척 많았다. 세안고 매매는 말 그대로 집 안에 세입자가 거주한 상태로 매매가 이루어지는 경우다. 당장 내가 들어가 살 수는 없지만, 그만큼 가격 절충이 가능한 경우가 많았고 조건도 비교적 유연했다. 나 역시 그런 매물들을 함께 검토했다. 다만 고민 끝에 결론은 단순했다. 전세를 끼고 사는 선택지와, 당장 겨울에 이사하는 선택지 사이의 가격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그렇다면 굳이 구조를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나는 세입자를 안은 집이 아니라, 내가 들어가 살 집을 기준으로 방향을 정리했고, 선택지는 점점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느낀 건, 집을 사기 전 가장 먼저 정리해야 할 건 돈보다도 용어라는 사실이었다. 부동산 이야기를 조금만 시작하면 세대주, 세입자, 임차인, 임대인 같은 말들이 아무 설명 없이 오간다. 다들 아는 말처럼 쓰이지만, 막상 정확히 구분하라고 하면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랬다. 세대주는 한 집에 거주하는 세대의 대표로, 주민등록상 기준이 되는 사람을 말한다. 대출이나 청약, 세금 기준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이 세대주 여부에 따라 자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반면 세입자는 말 그대로 그 집에 돈을 내고 들어와 사는 사람을 통칭하는 표현이다. 일상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지만, 법적인 용어는 아니다.


법적인 관계로 들어가면 표현이 조금 달라진다. 임차인은 집을 빌려 쓰는 사람, 임대인은 집을 빌려주는 사람이다. 전세든 월세든 계약서에 적히는 주체는 항상 이 두 단어다. 내가 집을 사기 전에는 임차인이었고, 집을 사고 나면 누군가에게 전세를 주는 순간 임대인이 된다. 이 단어들이 중요한 이유는, 권리와 책임이 정확히 이 구분에서 갈리기 때문이다.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을 수 있는 주체도 임차인이고, 보증금을 돌려줘야 할 의무를 지는 쪽은 임대인이다. 세입자라는 말 하나로는 설명되지 않는 관계들이, 계약서 안에서는 이 단어들로 명확히 나뉜다.



chapter 6. 집을 사는 첫 관문, 흥정


공급과 수요에는 단순하지만 분명한 원칙이 있다. 매물이 많아질수록 매수인은 선택지가 늘어나고, 그만큼 가격과 조건에 대한 협상 여지도 커진다. 나 역시 그 흐름 위에 있었다. 대부분의 매도자들은 호가에서 최소 천만 원 정도는 조정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매물을 내놓는 경우가 많았고, 그걸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졌다. 나는 감정적으로 끌리는 집보다 조건과 수치를 먼저 봤고, 절충이 가능한 매물 위주로 접근했다. 결국 선택한 건 3억 3천에 나와 있던 집이었다. 방이 트여 있고, 기본적인 인테리어가 이미 되어 있었으며 다만 세입자가 거주 중인 상태였다. 나는 2천만 원 조정을 요청했고, 동시에 다른 집도 충분히 볼 수 있다는 여유를 보여줬다. 매도자 입장에서는 조금 급한 상황이었고, 조건은 맞춰졌다. 인테리어에 4천만 원 정도가 들어간 집이라는 설명을 들었고, 전체 조건을 놓고 봤을 때 충분히 납득할 만한 거래라고 판단했다. 인테리어가 되어 있는 집의 장점은 분명했다. 초기 비용 부담이 줄어들고, 최소한의 공사만으로도 바로 생활이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같은 단지 내 다른 매물들과 비교했을 때 체감 가치가 높다는 점이었다.


다만 걸리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세입자가 오래 거주했다는 점이었다. 세입자는 구조적으로 ‘내 집’이라는 감각을 가질 수 없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오래 거주할수록 사용 흔적이 쌓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벽지나 바닥, 문틀 같은 부분은 사진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로 보면 생활감이 확연하게 남아 있다. 이건 누군가를 탓할 문제라기보다는, 구조적인 차이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이 집을 선택하면서도, 추후 어느 정도의 정비 비용은 감안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싸게 사는 대신, 손을 조금 더 보겠다는 판단이었다.


여러 매물을 임장하면서 느낀 점도 하나 있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경험이고 확률의 문제지만, 집안 관리 상태에는 생활 패턴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주중에는 대부분 비어 있고, 주말에도 외부 일정이 많은 집들은 정리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부동산 담당자들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내가 본 열 개 매물 중 여섯 개 정도가 특정 종교를 가진 세입자가 거주 중인 집이었는데, 집 안 상태는 솔직히 충격적일 정도였다. 물론 이건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 리듬과 우선순위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고, 모든 경우를 일반화할 수는 없다. 다만 실제로 임장을 다니며 마주한 현실이었고, 그 경험 덕분에 나는 집을 볼 때 ‘사진보다 생활 흔적’을 더 주의 깊게 보게 됐다.


다음 글에서는 실제로 매매를 진행하며 겪었던 계약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집을 사기로 결정한 뒤 어떤 순서로 계약이 진행되는지, 선금과 잔금은 어떻게 나뉘어 움직이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세금들이 언제, 얼마나 나오는지를 하나씩 정리해볼 생각이다. 계약서에 적힌 문장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법무사는 어떤 역할을 하고, 등기와 대출은 어떤 흐름으로 이어지는지도 함께 다룰 예정이다. 집을 사는 과정은 흥정이 끝난 뒤부터 더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다음 글은 바로 그, 집을 사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지나가게 되는 실제 매매의 이야기다.




개념 정리|집을 사기 전에 꼭 짚고 가야 할 용어들


LTV (Loan To Value)

집값 대비 얼마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이다. 예를 들어 감정평가액이 5억이고 LTV가 70%라면, 최대 3억 5천만 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중요한 점은 이 기준이 호가나 희망 매매가가 아니라, 은행이 산정한 감정평가액을 기준으로 계산된다는 것이다.


DSR (Debt Service Ratio)

한 사람이 1년에 갚아야 할 모든 대출 원리금이 연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다.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자동차 할부, 신용대출까지 모두 포함된다. 그래서 차나 기존 대출이 있으면 집 대출 한도가 줄어드는 구조다.


호가

매도자가 부르고 싶은 가격이다. 협상을 전제로 한 경우가 많고, 실제 거래 가격과는 차이가 날 수 있다.


실거래가

실제로 계약이 성사된 가격이다. 국토부에 신고되며, 이후 같은 단지 매물의 기준점이 된다.


감정평가액

은행과 국가가 해당 주택을 객관적으로 평가한 가격이다. 주택담보대출 한도와 금리는 이 금액을 기준으로 산정된다. 집을 얼마에 사고 싶으냐보다, 이 금액이 얼마로 나오느냐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세대주

한 세대의 대표로 주민등록상 기준이 되는 사람이다. 대출, 청약, 세금 혜택 등에서 기준으로 작용한다.


세입자

집에 돈을 내고 거주하는 사람을 통칭하는 일상적 표현이다. 법적 용어는 아니다.


임차인

집을 빌려 쓰는 사람을 뜻하는 법적 용어다. 전입신고, 확정일자, 보증금 보호의 주체가 된다.


임대인

집을 빌려주는 사람, 즉 집주인이다. 보증금을 반환해야 할 법적 의무를 지는 주체다.


전입신고

실제로 해당 집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행정적으로 등록하는 절차다.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기본 조건 중 하나다.


확정일자

임대차 계약서에 날짜를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절차다. 보증금 반환 순위에 영향을 준다.


세안고 매매

집 안에 세입자가 거주한 상태로 이루어지는 매매다. 즉시 입주는 어렵지만, 가격 협상이 유리한 경우가 많다.


취득세

집을 새로 취득할 때 한 번 내는 세금이다. 매매가와 주택 수에 따라 세율이 달라진다.


양도소득세

집이나 주식을 팔아 차익이 발생했을 때 내는 세금이다. 보유 기간과 조건에 따라 비과세 또는 감면이 적용될 수 있다.


임장

‘현장에 간다’의 줄임말로, 실제 매물을 직접 보러 다니는 것을 뜻한다. 사진이나 지도만으로는 알 수 없는 동네 분위기와 생활감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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