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다희 Dec 15. 2020

투잡, 이사, 그리고 실패

인상 깊었던 9월과 11월의 일기

나에게 2019년은 참 여러모로 의미 있고 다사다난한 그야말로 다이내믹(Dynamic)한 해였다. 2019년에 내가 한국 나이로 29살이어서 그런지 아홉수가 쌍으로 겹쳐서 그런 거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취직에 여행에 온갖 새로운 도전들과 신선함으로 장식된 해였는데, 그중에서 9월과 11월 사이의 기간이 제일 인상 깊었다. 이 시기에 어떤 일들이 있었기에 나에게 아직도 이때가 기억에 남을까?








"원잡러에서 투잡러로 진화했다."


첫 번째로는 9월에 퇴사했던 캐나다 스타벅스로 돌아왔다. 물론 바리스타 직무로 돌아왔고, 신한은행을 그만두고 돌아온 것이 아니라 투잡을 하기 위해 스타벅스로 돌아온 것이다. 당시 나는 한 달 월급으로 약 200만 원 정도를 받고 있었는데, 돈을 모으고자 했던 나에게는 턱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생활비를 다 쓰고 나면 월급만으로는 한 달에 많아야 50만 원이나 적게는 30만 원 밖에 저축이 안됐었는데, 나의 목표 금액보다 턱없이 모자랐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투잡을 하는 것이었는데 스타벅스 바리스타가 나에게 아주 딱 맞는 조건을 가진 투잡 직업이었다.



스타벅스를 선택한 이유는 이전 바리스타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보다 수월하게 들어갈 수 있다는 것도 있었고, 다른 이유들도 있었다.




주 직장인 은행과는 완전 별개인 식음료 산업이라는 점

새로 들어간 가게가 집과 5분 거리라는 점

커피에 들어가는 소비 지출을 줄일 수 있다는 점




은행 인사부와 확인한 결과 스타벅스라면 퇴근 후 투잡이 가능하다는 확답을 받아내서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집과 5분 거리밖에 안되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 절약을 할 수 있었다는 점도 좋았고, 무엇보다도 커피로 인한 지출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당시 나는 퇴근하고 나면 항상 노트북을 들고 스타벅스를 갔었다. 집이 반지하 작은 방이라 퇴근 후에 하루 종일 방에 있는 게 너무 싫어서 카페를 자주 가곤 했다. 자연스럽게 커피나 다른 음료 주문 때문에 빠져나가는 지출이 상당했었는데 이게 한 달에 약 15만 원 정도였다. 



나중에 지출 정리를 해보니 이 돈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었다. 다행히 이 문제는 스타벅스에 다시 채용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었고, 덤으로 일하는 시간이 더 생기다 보니 돈 쓸 일도 더 줄어들었다. 이때부터 스타벅스에서 한 달에 최소 30만 원에서 정말 많게는 120만 원을 벌었는데, 지출이 줄어든 만큼 저축할 수 있는 금액도 그만큼 훨씬 많아지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내 하루는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전부 일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투잡을 하느라 일주일에 쉬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일에 매진했다. 평일에는 은행 퇴근하자마자 간단히 저녁 식사 후 다시 출근해서 새벽 1시가 돼서야 집에 돌아왔고, 주말에도 가게에 출근해야 했다. 어쩌다가 일주일 중 하루 아무 일도 없는 날에는 그냥 집에 틀어박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기만 했다. 그렇게 일만 하느라고 돈은 많이 모았지만 여행이나 놀러 갈 시간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이 선택이 정말 신의 한 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이사했어요!"


두 번째는 드디어 반지하 셋방 살이를 청산하고 콘도가 있는 지상으로 이사했다는 것이다. 당시 살던 방은 한 달에 500달러를 내면서 살았는데, 이사를 결심하게 된 것은 그 방에 입주한 지 1년이 됐을 때쯤이었다. 토론토 반지하와 사니아 반지하 생활 기간을 다 합치면 거의 2년이나 되는 기간을 반지하에서 살았다. 반지하 방이 지상에 있는 방보다는 훨씬 저렴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사하고자 하는 이유는 돈보다 중요한 것에 있었는데,



반지하에 살면 사람이 계속 음울해지는 것 같았다.


당시 내가 살던 반지하 방


이게 모든 사람들이 같은 생각인지 아니면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반지하에 살면서 기운이 처지거나 음침해지는 느낌이 계속 들었었다. 그게 1년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더욱 심해졌고, 햇빛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지상으로 이사해야겠다 결정하게 된 계기였다. 나와 같이 여행을 했던 친구들도 마침 집에서 나와 방을 구하려고 했기에 우리는 아예 콘도 유닛(Unit) 하나를 전체 렌트해서 같이 살기로 결정했다.



참고로 전체 렌트는 하우스나 아파트, 콘도 유닛(=아파트나 빌라의 호) 하나를 렌트해서 사는 것인데 공과금과 인터넷 요금을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반지하 룸 렌트보다 훨씬 월세가 비싸다. 투잡을 시작해서 콘도 룸 렌트 정도의 월세는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에 빠르게 콘도 유닛을 하나 구해서 이사를 하기로 했다.



매물은 키지지(Kijiji) 사이트에서 알아봤는데 파트타임이나 중고물품, 룸메이트나 부동산 계약 등 거의 캐나다의 모든 온라인 거래가 이 사이트를 통해 이뤄진다. 키지지 사이트에서 매물을 알아보던 중 눈에 띄는 유닛 하나가 있었다.



위치는 핀치역 5분 거리에 있는 콘도

은행과 스타벅스 중간쯤에 있는 위치

2 Bedroom과 1 Den(침실보다 작은 방이라 생각하면 된다)

한 달 월세 2,450 달러



믿기지 않는 조건이었다. 보통 역세권 쪽 콘도 매물은 1 Bedroom과 1 Den만 해도 월세가 2,300달러 정도가 보통이었는데, 이 유닛은 그것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나온 것이다. 혹시 다른 사람이 계약해버리면 안 되기 때문에 얼른 연락을 해서 방문 날짜부터 잡았다. 그리고 실물로 본 콘도 유닛은 만족 그 자체였다. 원래는 매물을 몇 개 더 알아보고 그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유닛을 고를 예정이었지만, 우리의 마음은 문을 열고 들어간 그 순간부터 정해졌다.



이 집이구나!!


방문 후 바로 보증금(Deposit)을 이체해서 계약 의사를 확실하게 했고, 집주인 측에서 우리의 소득증명과 추천인을 확인한 후 입주 계약을 할 것을 통보해왔다. 룸 렌트만 구했을 때는 구두계약 외에 계약서나 영수증을 따로 교환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정석적인 부동산 거래였기 때문에 주정부 공식 입주 계약서를 작성해야 했다. 그리고 1달 후 11월 1일,



새로운 집으로 이사했다.


콘도 유닛 거실
내가 살던 방. 저 창문이 참 좋았다.
대충 정리가 끝난 모습


집을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옮겼을 뿐인데 뭔가 출세한 것 같이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이래서 사람은 사는 집이 어디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하는가 보다.




"추천으로 이직 시도! 하지만 실패!"


스타벅스에서 일하면서 맺어진 인연들이 좀 있었다. 그중 한 명은 로컬 은행에서 Banking Advisor로 일하던 친구였는데 서로 일적으로 도움을 줬던 게 계기가 되어서 많이 친해졌었다. 한인 2세에다가 동갑이어서 더 동질감이 강하게 들었던 것 같다. 그 친구가 내게 자기가 도와줄 테니 자신의 지점에 이직을 해볼 것을 권해줬다. 그것도 지금과 같은 직급이 아니라 한 단계 높은 직급으로 도전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때 당시가 영주권을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만약 해당 직급에 이직을 성공해서 경력을 쌓으면 영주권 신청이 가능했었다. 물론 신청이 가능하다는 거지 영주권을 준다는 확신은 없다. 하지만 영주권은 둘째치고 캐나다 로컬 은행에서 업무 경력을 쌓을 수 있다는 점이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마침 지점장님과 과장님께서도 내가 영주권을 얻을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이직을 도와줄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기 때문에, 나는 캐나다 로컬 은행으로의 이직을 도전하게 되었다.



반년만에 영어 레쥬메와 커버 레터를 업데이트해서 정리했고, 친구의 주선을 통해 로컬 은행 지점장과 10분 정도 미팅을 할 기회를 마련했다. 지점장과의 미팅은 매우 순조로웠다. 지점장이 한인이기도 했고, 내가 신한은행에서 일하는 것을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해줬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지원하면 곧 인터뷰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미팅은 끝났고, 순조롭게 진행되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서류 탈락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무난하게 진행될 것이라 예상했었던지라 서류 탈락이라는 소식은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공격이 들어온 느낌이랄까. 아마 나 말고도 다른 경쟁자들도 있고, 로컬 은행 인사부에서 판단하기에 나보다 더 적합한 후보자들이었기에 내가 경쟁에서 밀린 것도 있을 것이다. 캐나다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IT 이공계를 제외하고는 취업 경쟁이 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내가 너무 방심했었던 것 같다. 모든 게 내 맘대로 다 되면 그게 어디 인생인가.



그렇게 이직 도전은 실패로 끝났고,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에 수긍하고 다음에 이직할 때 이때의 경험을 참고하자고 다독였다. 이렇게 2019년의 11월은 흘러갔고, 어느새 12월 연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