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회 기념 영상 제작 팀에 들어가다
11월이 지나 어느새 12월 연말이 다가왔고 은행 지점과 스타벅스에도 크리스마스 느낌이 물씬 풍기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왔고, 트리도 장식하고, 스타벅스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하여 시즌 음료들을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은행에서는 12월에 한 해의 업적 평가 기념식 및 송년회 개최가 계획되어 있었는데, 그게 12월 중순쯤으로 스케줄이 잡혀있었다. 이 시기쯤 송년회 얘기가 나오더니 동료 직원분들이 나에게 이야기를 하나 해줬는데,
원래 막내 신입들은 송년회 때 앞에서 노래 부르거나 춤추거나 한단다!
(호호호호)
이 말을 듣고 겉으로는 태연한 척, 당당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온갖 생각이 샘솟기 시작했다.
아 나 춤 진짜 못 추는데... 노래 부르라고 시키면 뭐 해야 하지...?
누구 앞에서 그런 걸 해본 적이 없는데?
그런데 마침 또 다른 소식이 들려왔는데 올 해는 노래나 춤 같은 장기자랑보다는 좀 더 특별하게 송년회를 보낼 것 같다는 것이었다. 속으로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 모른다. 그런데 어떤 이벤트를 하게 될지는 따로 공지가 없었는데, 며칠 후 본부 운영 부서에서 연락이 왔다.
송년회 기념 영상 제작하는데 참여해주실 수 있으시죠~?! ^^
프로젝트의 목표는 간단했다. 회사가 내세우는 가치와 비전을 주제로 하는 영상을 만들 것. 그리고 그 영상들을 송년회 때 전 임직원들 앞에서 보여줄 거라 했다. 노래나 춤보다는 훨씬 마음이 편하지만 뭔가 스케일이 더 커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시 나는 별다른 영상 편집 경험이 없었고,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윈도우 무비 메이커가 전부였다. 운영 부서에서 주제에 맞게 미리 찍어둔 영상들이 있었고, 나 말고도 본부와 타 지점에 신입으로 들어온 분들을 더하여 6명 규모의 팀이 꾸려졌다. 그리고 미리 찍어둔 영상 몇 개를 살펴봤는데,
이 영상들을 어떻게 살려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영상이 해당 주제들을 표현하기에 애매하기도 했고, 그 주제와 맞게 영상을 찍은 것인지도 의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운영 부서의 가이드라인은 모든 영상을 무조건 '재미있게', '웃기게'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든 주제를 재밌게 만드는 것은 너무 무리였다. 특히 고객중심이라는 주제로 만드는 영상은 고객 인터뷰가 90%인데 이미 촬영된 고객 인터뷰를 보면 밝은 분위기 VJ 특공대처럼 편집을 해야 제대로 효과가 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다른 동기부여나 발전에 관련한 주제들은 감동이나 에너지 넘치는 분위기로 편집해야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팀원들을 모아서 프로젝트 회의를 하던 날, 이러한 나의 의견을 전달했고 팀원들과 운영 부서 모두 그 제안에 동의하여 과감하게 작업 방향에 반영되었다. 그리고 각 주제별로 인원을 나누어 영상 편집을 배분하였고, 내게 배정된 파트는 직원들의 회사 생활과 애환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편집해야 하는 일이었다.
다시 말해, 내 파트는 정말 재미있게 편집해야 했다.
영상 편집 작업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내가 은행원이 아니라 프리랜서가 된 기분이었다. 근무를 할 때도 어떻게 편집할지, 어떤 에피소드로 만들어낼지, 어떤 효과음과 장면 컷은 어떻게 해야 할지 등등 머릿속에 그저 편집 작업만 가득 찼었다. 3개의 영상을 5분짜리 영상으로 편집했어야 했는데, 이때 기한이 일주일 정도밖에 없었다. 운영 부서에서도 처음 연락을 할 때 꽤나 다급하게 연락을 한 것 같았다. 주어진 기한이 짧다 보니 마음도 많이 조급했었다.
그래도 나는 정말 기본적인 툴이지만 윈도우 무비 메이커로 꾸역꾸역 편집했었고, 나름 유튜브에서 스트리머들이나 인터넷 방송인들의 영상을 많이 봐왔던지라 어떤 부분에 포인트를 줘야 하는지 다소 감각은 있었다. 그런데 몇몇 직원분들의 경우에는 컴퓨터와 그렇게 친하지 않으신 분들이 있어서 편집 작업 자체를 시작하지도 못한 분도 있었다. 나는 뭔가 일을 한 번 맡아서 하기 시작하면 대충하고 끝내는 성격이 되지 못하기에 결코 지나칠 수 없었고, 그 분과 온/오프라인으로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편집 방향 코칭을 해주고, 필요한 음원이나 효과음이 있으면 즉석에서 찾아내서 보충해주곤 했다.
특히 본부 운영 부서 과장님과는 거의 매일같이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그때를 생각해보면 내가 그렇게 자기 의사를 잘 표현할 수 있었는지 신기하다. 자칫 잘못하면 건방져 보일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다행히도 운영 부서 사람들이 내가 프로젝트에 엄청 열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고 생각해줘서 참 고마웠다. 나는 그저 내 할 일을 다 했을 뿐인데 말이다.
그렇게 일주일의 기한이 모두 흘렀고, 우리 팀은 여차 저차 해서 마지막 날에 맞춰서 작업을 완료하고 검수를 받은 후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마감했지만 나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영상을 봐줄 임직원들의 반응이었다. 아무리 내가 재밌게 만들었다고 해도 봐주는 사람들의 반응이 별로라면 그것은 작업 성과를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내 영상은 유머 코드가 가득한 에피소드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적잖은 부담감도 있었고, 프로젝트는 끝났지만 송년회 당일까지 내 마음은 조마조마했었다.
특히나 유머 포인트를 위해 유튜브와 인터넷 방송에서 자주 쓰이는 자료들, 일명 짤들을 가져와서 사용했는데, 이게 과연 임직원들에게도 먹혀들지가 관건이었다. 당시 내가 썼던 자료들은 텔레토비, 차인표 짤, 카페베네 등등 그 종류가 다양했었다.
실제로 편집이 끝난 영상들을 운영 부서와 함께 검수할 때는 반응이 매우 좋았다. 별다른 문제없이 오히려 잘 만들었다고 평가해줬고 말이다. 송년회 날이 다가왔고 그 날은 출근하면서부터 머릿속에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잘 되겠지? 웃기겠지? 잘 될 거야!!
이렇게 머릿속으로 계속 잘 될 거라 주문을 외우면서 얼른 송년회 영상 프로젝트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면서도 영상을 공개한다는 생각에 왠지 모를 부끄러움과 기대감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차례가 되어 내가 만든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고 심장이 뛰는 게 느껴질 정도로 긴장을 하기 시작했는데,
결과는 나의 기대 이상이었다!
내가 만들어놓은 포인트마다 사람들의 웃음이 터지기 시작했고, 특히 인터넷에서 긁어모아 첨부해놓은 웃긴 짤들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이 매우 뜨거웠다. 반응을 확인하고 난 후부터 그제야 안도감과 만족감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만들어낸 프로젝트와 작업의 결과 이렇게 좋으니 나 스스로가 정말 대견하고 큰 성취감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만든 영상뿐만 아니라 다른 팀원들의 영상에도 임직원들이 많은 환호를 보내줬고 나중에 전체적으로 구성이 잘 되어있어서 재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내가 낸 제안이 좋은 평가를 받아 기분이 매우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서 큰 마찰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촬영을 해준 고객들과 직원들 모두 진지하게 임해주었기 때문에 제시간에 편집을 마칠 수 있었고, 내 제안을 거리낌 없이 받아준 운영 부서와 팀원들이 모두 협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날 모든 직원들은 소정의 상품과 와인을 선물 받았고, 나는 영상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마치고 나서
경품으로 1일 유급 휴가권에 당첨되었다.
그렇게 신입사원 막내의 송년회는 커다란 만족감, 성취감과 함께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