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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다희 Dec 19. 2020

직장을 모두 퇴사했습니다.

모든 일은 마무리가 중요하다.

귀국을 결심한 후에 해야 할 일은 바로 귀국 날짜와 퇴사 날짜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귀국 날짜는 9월 초로 결정을 했는데, 이는 마침 9월에 큰 집안 행사가 있었고, 다시 들어간 스타벅스 가게에서 8월까지 근무해서 1년 근속을 채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귀국 날짜를 9월 초로 정했으니 퇴사 날짜는 자연스럽게 8월에 맞춰졌다. 직장이 두 곳이었으니 당연히 퇴사 통보도 스타벅스와 신한은행 두 곳에 모두 해야 했다. 퇴사 예정일은 8월 중순으로 잡았는데 퇴사 후 마지막 월급을 8월 말과 9월 초 출국 직전이 돼서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직장을 퇴사한다는 경험을 처음 해보는 것이기에 많이 긴장하기도 했지만 난 언제나 알고 있었다.



인간관계에서 마무리 끝 인상도 중요하다는 것을








"첫 직장 너무 감사히 잘 다녔습니다!"


캐나다 신한은행은 나에게는 인생 첫 직장이었다. 정식으로 양복을 입고 은행에서 행원으로 근무하며 처음 토론토에 도착했을 때 세웠던 커리어 발전의 목표를 실현시켜준 직장이기도 했다. 직장 동료들도 항상 나의 영주권 문제나 이직, 승진에 관련해서도 전폭적으로 믿고 도와줬고, 인생 선배로서 직장 생활이나 삶의 조언을 통해서도 많은 도움이 때문에 항상 감사하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그만두기가 어려웠다. 



퇴사 예정일은 지점장님과 상의한 후 8월 중순이 조금 지나서 하기로 했는데 딱 한 달 전에 퇴사 통보를 한 셈이다. 마침 지점에 사람이 한 명 더 채용되어서 인력 부족으로 인한 부담은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이 남은 한 달 동안은 인수인계 자료와 업무 매뉴얼을 작성하는데 거의 모든 근무 시간을 투자한 것 같다. 내가 퇴사를 하니 공석이 되는 내 자리를 채우기 위해 누군가 채용을 해야 하긴 하는데, 그게 내가 있을 때 채용될 것 같지는 않았다. 퇴사 전에 채용이 된다면 OJT(On the Job Training)를 통해서 인수인계가 가능한데, 그게 어려우니 내가 없어도 내 업무를 이해하기 쉽게 매뉴얼 자료를 만들기로 했다.



기본적인 전산 조작이나 공통 업무는 다른 동료분들도 이미 알고 있으니 내가 전담으로 해왔던 업무들 위주로만 매뉴얼을 작성했다. 마지막으로 남겨놓는 나의 유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딱딱한 문어체보다는 정말 내가 말하듯이 밝고, 기운 나는 구어체 표현으로 작성했다. 귀여운 캐릭터 스티커까지 붙여가면서. 



퇴사를 하게 되면 이렇게 업무 매뉴얼을 하나 정도는 작성하는 것이 남은 직원분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나중에 새로 들어올 직원에게 매뉴얼을 참고하면서 교육을 시킬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매뉴얼을 다 작성하고 나서 과장님께 드렸을 때, 많이 고마워해 주셨던 것 같다. 퇴사일에는 다 같이 지점에 모여서 간단하게 회식을 했다. 코로나 때문에 나갈 수는 없으니 음식은 모두 포장해와서 먹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롤링 페이퍼 카드와 소정의 용돈을 선물로 받았는데, 이제 나가는 내가 참 뭐라고 이렇게까지 잘해주나 싶어서 감동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그걸 보면서 내가 회사생활은 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잘해도 밉상이거나 인간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는데, 이런 면에서는 그것도 첫 직장에서 난 정말 복 받은 사람이 맞는 것 같다.



첫 직장 잘 다니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Good Bye, Starbucks"


스타벅스 역시 퇴사 예정일 한 달 전에 퇴사 통보를 했다. 처음에 매니저에게 퇴사 얘기를 했을 때 엄청 놀라는 모습이었다. 그것도 그런 게 내가 퇴사할 기색이 전혀 없다가 갑자기 퇴사한다는 말을 했으니 당연하겠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했던 가게의 부매니저는 나와 다른 가게에서 같이 일하다가 이 가게에서 다시 뭉친 사이라 더욱 아쉬워했었다. 일을 정말 열심히 하던 사람이라 나도 옆에서 많이 자극을 받기도 했다.



내가 퇴사한다는 소식이 가게에 퍼지자 많은 바리스타 동료들이 아쉬워했었다. 장난식으로 가지 말라고 말해주던 친구들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도 씁쓸히 웃으면서 가야 한다고 말하던 게 못내 마음 아프기도 했다. 구두로 통보한 후, 정식으로 사직서를 만들어서 제출을 했는데 그 사직서를 제출한 순간 오만가지 마음이 교차했었다. 토론토에 와서 처음으로 일을 시작한 곳도 스타벅스고 귀국할 때까지 마지막으로 일을 한 곳이 스타벅스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스타벅스에서 있었던 수많은 좋은 일들과 힘들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런저런 레시피로 음료를 만들어먹었던 기억, 해피아워를 무사히 버텨냈던 기억, 컴플레인에 기죽었던 기억, 몇몇 진상 손님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 등등 1년 8개월 간의 기억들이 영화 필름처럼 머릿속을 지나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일들이 생각나는 거 보면 내가 적어도 헛으로, 어영부영 일하지는 않았다는 생각과 열심히 살아왔다는 만족감이 들었다.



마지막 날에는 평소처럼 일을 시작했다. 출근 체크를 하고 체온을 재고, 캐셔도 하고, 음료도 만들고, 매장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그리고 마지막 퇴근 체크를 하는 순간, 



스타벅스 바리스타로서의 라이프도 끝났다.


그리고 가게에 있던 모든 동료들이 모여서 축하해줬고, 다 같이 사진을 찍으며 그 날을 마무리했다. 그것이 캐나다 스타벅스에서의 내 두 번째 퇴사였다. 이제 진짜 안녕...


Good Bye, Starbucks




"퇴사를 하고 나서는..."


퇴사를 한 다음 날에는 정말 원 없이 잠을 잤다. 평소에 5시간, 6시간만 자면서 투잡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잠을 많이 자는 날이 너무 달콤하고 소중했었다. 아마 퇴사 직후 며칠 동안은 아침에 원 없이 많이 잤던 것 같다. 그리고 퇴사를 하고 나니 시간이 갑자기 많이 생기게 됐는데, 이 시간 동안에는 귀국 국제 택배와 항공편 알아보기, 귀국 선물, 지인들과 마지막 인사 등으로 가득 찬던 것 같다.



제일 기억에 남았던 것은 주변 사진을 많이 찍었던 건데 어디를 가든 가는 곳마다 도로나 하늘, 표지판 등등 사진을 최대한 많이 찍었었다. 다행히 날씨도 여름이라 매우 맑았던지라 사진 찍기에도 최상의 조건이었다. 사진을 많이 찍었던 이유는 별로 특별하지 않다.



그 날의 내가 있던 기록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핸드폰을 들고 걸어 다니면서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사진을 찍고 지금도 가끔 보면서 캐나다 생각이 많이 나곤 한다. 특이한 것은 사진을 보면서 그때의 내 모습도 생각난다는 것이다. 사진을 찍던 나의 모습, 나의 나이, 그때 가지고 있던 나만의 가치관들도 추억으로 생각나기 시작했다. 아마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지 않을까 싶다.



사진을 찍던 그때의 나를 추억하고 싶어서


그렇게 어느덧 캐나다에서의 마지막과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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