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모험기의 마지막 이야기
9월 초로 귀국 날짜를 정한 후에는, 주변을 정리하고 옷가지와 물품들을 국제 택배로 붙이느라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물론 중간중간에 할 수 있는 만큼 토론토 일상과 주변 사진을 많이 찍어뒀다. 국제 택배를 붙이는 일은 생각보다 많이 번거로웠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4년 동안 캐나다에서 살면서 필요해서 산 물건들도 있었고, 집에서 국제 택배로 받은 물건들도 꽤 있었던지라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보다 훨씬 짐이 많아져 있었다. 다행히 한국으로 귀국 국제 택배를 부쳐주는 한인 물류 업체가 있어서 그 업체를 통해 한국으로 대부분의 옷가지와 물건들을 택배로 부칠 수 있었다. 이것들을 다 정리하는데만 2주의 시간이 걸렸고, 무려 4번에 걸쳐서 택배를 보내야만 했다. 택배를 부치고 짐을 다 싸고 모든 준비를 끝마쳤을 때는 약 1주일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마지막 1주일은 그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작별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장 먼저 스타벅스에서 만난 한국인 누나와 그 남편 분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마지막 가는 길이라고 집으로 초대해서 스시랑 피자랑 치킨 등등 맛있는걸 많이 사 먹여줬다. 내가 첫 가게로 일하던 스타벅스 가게에서 슈퍼바이저로 일하는 분인데 같이 일하면서 통하는 부분이 많아서 그 누나의 남편 분과도 서로 소개하고 가까이 지냈었다. 퇴근하고 나면 항상 모여서 그 날 힘들었던 일들이나 인생 얘기 수다를 떨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했었는데, 그 누나와는 그 일상이 제일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아마 첫 가게에서 이 누나가 없었다면 정말 일하는 게 재미없었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직장 동기와도 마지막 인사를 했다. 캐나다에는 공채라는 개념이 없이 수시 채용만 있는터라 진짜 동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와 입사 시기가 2개월 차이밖에 안 났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동기처럼 대해줬다. 다른 지점이었지만 일하면서 서로 힘들 때 밥 한 끼 같이 먹으면서 회포를 풀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많은 위안이 됐었다. 또 그 동기 역시 스타벅스에서 일했었기 때문에 우리는 마지막 만나는 날까지도 우리는 카페에 앉아서 3시간 동안 지난날 입사부터 나의 퇴사까지 있었던 일들에 대해 얘기했다. 그리고 너무 고맙게도 귀국 선물이라고 남성용 스킨로션 세트를 선물 받았다. 귀한 선물이라 당분간은 함부로 쓰기 어려울 것 같다.
귀국길 여정은 생각보다 다사다난했다. 나름 유럽 여행도 가고, 대학생 해외 프로젝트를 위해 비행기를 나름 많이 타봤지만 이륙 지연 외에는 크게 트러블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귀국할 때는 예상보다 많은 이벤트가 발생했다. 먼저 내가 예약한 비행기 시간은 에어 캐나다 항공편 오후 시간이었는데, 이것을 항공사에서 임의로 아침 오전 8시 시간대로 조정해버렸다. 게다가 직항이었던 항공편이 밴쿠버 경유로 바뀌어 있었다. 아마 이번에 코로나 사태로 항공사 사업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항공편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영하고자 조정한 것 같아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아예 취소된 항공편도 있었기 때문에 시간 조정 정도는 감지덕지라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아침 비행기에 맞추기 위해 새벽 5시부터 준비를 했다. 마지막 밤이라는 생각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아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마지막으로 정리된 방을 보면서 후련하기도 하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 작은 방에서 많은 성장을 해왔다. 투잡도 시작하고, 저축을 해서 조금이나마 목돈을 마련하고, 그리고 소원이었던 나만의 컴퓨터도 장만했다. 1년여 동안 좋은 기억이 많은 집이라 떠나기가 못내 아쉬웠다.
내가 들고 갈 수하물들은 총 5개였다. 위탁 수하물로 부칠 큰 짐 3개와 기내 수하물 2개였다. 에어 캐나다는 위탁 수하물이 2개까지 밖에 안되지만 추가 금액을 결제하면 위탁 수하물을 추가할 수 있다. 다만 걱정이 됐던 것은 바로 수하물의 무게였는데, 집에 저울이 없던지라 따로 무게를 재보지는 못했다. 확실한 것은 직접 들어보기만 해 봐도 무게가 허용치를 초과한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무거웠다는 점이었다. 특히 데스크톱 컴퓨터와 모니터까지 모두 위탁 수하물에 넣었기 때문에 그 무게가 상당했다. 그래도 추가 금액을 낼 것을 이미 각오했기 때문에, 수하물로 부칠 수 있기만을 기도했다.
캐나다 토론토 피어슨 국제공항까지 가는 길은 룸메들이 도와줬다. 차를 가지고 있는 친구 덕분에 짐이 많았음에도 매우 편안하게 공항까지 올 수 있었다. 새벽 시간대라 30분 만에 공항에 도착했고 현재 토론토 공항 내에는 탑승객과 직원만이 출입 가능하기 때문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짐 내리는 것까지 친구들이 도와줬는데, 마지막 안녕이라는 인사하기가 제일 아쉬웠던 친구들이다. 이 룸메 친구들 덕분에 내가 캐나다에서 정신적으로 많이 성장할 수 있었는데, 이 친구들만큼은 앞으로도 평생 같이 갈 수 있는 인연이라 생각했다.
너무 고마웠고, 나중에 꼭 한 번 한국에 오면 좋겠다.
위탁 수하물은 예상했던 대로 무게가 상당히 초과된 상태였다. 그래도 항공사 직원이 그럭저럭 사정을 봐줘서 각 수하물 당 32kg까지는 위탁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물론 추가 금액은 다 지불했다. 그리고 32kg을 맞추기 위해 수하물을 열어서 상대적으로 덜 필요한 옷가지나 노트들을 모두 버려야 했다. 발권을 하고 나서 게이트를 지나 비행기를 타러 가기까지 발열 체크 외에 별다른 검역이나 문의사항은 없었다.
비행기를 타려는 사람들은 아예 없지는 않았다. 국제선 승객과 캐나다 국내선 승객들이 모두 섞여있었던 것 같다. 그에 반해 토론토 공항 면세점은 대부분이 닫혀있는 상태였다. 공항 이용 승객이 대폭 줄어든 만큼 운영에 제한이 많이 생긴 것 같다. 마침내 탑승 시간이 되어서 비행기에 올라탔는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겼다.
비행기 내에 기체 이상이 생긴 것이다.
방송을 통해서 비행기 기체 내 이상이 생겼으니 직원들이 조사해보고 비행기 동력을 꺼놓은 채로 대기한다는 내용을 승객들에게 알려줬다. 처음에는 별일 아니겠거니 생각했지만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한 마음이 커지기 시작했다. '정말 이 비행기 괜찮은 건가?', '이러다 갑자기 취소되는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들이 들면서 어느새 이륙 시간마저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다시 기내 방송을 통해 기장이 승객들에게 안내 방송을 했다.
바로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라는 안내였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사태로 인해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일단 비행기 밖으로 나와야 했다. 항공사 직원들도 당황해서 유선으로 새 항공편을 잡아주기에 바빴고, 내 속은 불안한 마음에 더욱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정말 마지막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바로 새 항공편이 잡혔고, 모든 승객들이 새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이동했다. 두 항공편의 승객들이 한 비행기 내에 모인 터라 빈 좌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일단 떠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아예 취소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잠시 후 이륙할 거라는 안내방송이 나왔고,
나는 토론토와 작별 인사를 했다.
정확히 3시간 후 밴쿠버 공항에 도착했지만 나에게는 환승 시간이 30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원래 항공편 일정대로라면 환승까지 최소한 1시간 반 정도 여유 시간이 있었지만, 출발이 지연되면서 이 시간이 대폭 줄어들어버린 것이다. 공항에서 환승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1시간도 환승하기에는 매우 빠듯하다. 그런데 30분 밖에 없으니 마음이 매우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다음 게이트까지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밴쿠버 공항 면세점은 꽤 많이 열려있었지만 면세점을 구경할 틈 따위 없었다. 다행히 30분 만에 환승 게이트에 도착을 했고, 승무원들이 미리 연락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승객들이 전부 타기까지 기다릴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밴쿠버-인천 비행기에 탑승했고,
캐나다와도 작별 인사를 했다.
밴쿠버에서 인천 공항까지 약 10시간 동안의 비행 일정이었지만 그렇게 힘들거나 불편하지는 않았다. 사실 이번 비행이 여태껏 겪어온 비행기 경험 중에서는 최고로 편했다. 이코노미석 창가 쪽이었지만 내 옆자리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팔걸이를 다 올리고 그 공간들을 다 쓰면서 너무나도 편하게 쉬면서 올 수 있었다. 내 인생에 또다시 이코노미석을 이렇게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더 있을까 싶다. 10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갔고,
그렇게 나는 대한민국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 내리자마자 나를 맞이한 것은 바로 자가격리 앱을 설치하라는 안내문이었다. 입국 심사 때 이 자가격리 앱이 꼭 설치되어야 하며 공항 직원들과 검역 지원단이 이를 철저히 확인했다. 대기줄은 항공편마다 다른데 내가 도착한 시간에는 여러 항공편들이 같은 시간대에 착륙한 것 같았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검역 단계만 통과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입국심사는 모두 유신 입국 심사로 처리됐다. 내 여권도 무인 입국 심사 서비스와 연동되어 있지만, 무인 입국심사 기계를 사용할 수 없게 막아놔서 유인 입국 심사대로 가야 했다. 검역 단계를 모두 통과하면 입국 심사 자체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입국 심사를 끝내고 수하물을 모두 챙겨 출국장으로 나오니 어느새 2시간이 지나버렸다.
공항에서 집까지 가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공항에 주차된 본인의 자차를 이용하는 방법. 이것은 가족이나 지인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두 번째는 가족, 지인이 자차로 마중을 나오는 방법. 마중을 나올 수 있는 대신 가족과 지인은 방역 수칙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고 한다. 세 번째는 각 시에서 운영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나는 부모님이 모두 직장인이기 때문에 혹시나 있을 피해를 예방하고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보건소로 가서 바로 검사를 받을 수 있는데, 다행히 나는 보건소 마감 시간 전에 도착을 해서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위 사진에 티켓에 나온 대로 선학 체육관으로 이동을 한 후에, 보건소 전용 차량이 직접 선학 체육관에서 나를 픽업하기로 일정을 조율했다.
버스 안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마치 내가 버스 하나를 전세 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나 하나를 위해 이렇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너무 고마웠다. 버스 안에서 창문 밖을 바라볼 때 기분이 매우 오묘했다. 한글로 된 간판이 보이고 아파트가 빽빽하게 보이는 풍경을 보니 정말 내가 한국에 도착했다는 걸 실감하게 해 줬다.
내가 진짜 한국에 귀국했구나.
너무나도 빠르게 변해버린 한국에 적응하는 게 쉬울 것 같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건소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니 어느새 저녁 8시였다. 공항 도착한 게 3시쯤이었는데 집에 오기까지 무려 5시간이 지나버린 것이다. 부모님은 2주 동안 자가격리를 해야 할 날 위해서 잠시 다른 곳에 방을 구해 지내기로 하셨다. 4년 만에 돌아온 집은 여전히 변한 게 없었다. 아마 가장 많이 변한 건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나는 캐나다 생활을 마감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이제 캐나다 모험기 에세이도 끝내야 할 때다.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을 하고 무사히 귀국을 했으니 스스로도 만족할만한 모험이었다. 이렇게나마 글로 남겨두고, 진짜 이 모험의 마침표를 찍는다.
<캐나다 모험기 에세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