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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니제 Mar 06. 2022

필리핀 탈출기 (1)

이실장 모르게 필리핀을 탈출하라 

과연 이실장이 나를 놓아줄까? 머릿속이 복잡한채로 토요일 점심을 대충 먹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사에게 알리는게 순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떨리는 손을 움켜쥐고 윤팀장님이 계신 잉글리시돔의 방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고 나오시는 팀장님께 다짜고짜 음료를 건네드리며 소리를 질렀다.


팀장님 감사합니다!
도와주신 덕분에 최종합격했습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윤팀장님께 자초지종을 설명드리며, 공간을 내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감사하다는 사람에게 화를 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ㅎㅎㅎ 웃으면서 축하해 주셨고, 출국은 언제 해야하냐고 물어보셨다. 일단 급하게 한국에서 서류 진행을 해야하기 때문에 휴가를 쓰고 월요일에 출국했다가, 서류 업무를 마무리한 뒤 바로 필리핀에 돌아와서 인수인계를 하고싶다고 말씀드렸다.

굳이 다시 올 필요가 있겠는가
여기 걱정은 하지 말고 얼른 돌아가서 준비해


윤팀장님이 이렇게 따뜻한 말씀을 해주시니 너무나도 감사했다. 물론, 이실장이라는 난관이 있지만 일단 한국행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월요일 오후 3시 마닐라 출국.



그날 저녁, 함께 일하던 한국인 동료 Thorne과 Jack을 데리고 마닐라 시내에 위치한 쏘피텔에 방문했다. 스파이럴 뷔페는 예상대로 고오급이었다. 함께 고생하던 동료들을 악덕 이실장에게 남겨두고 홀로 떠나려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스파이럴 뷔페를 접한 동료들은 걱정하지 말라며 맛있게 먹고 즐겁게 떠나라는 조언을 해줬다.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동료들이고 친구들이지만 너무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렇게 주말 이틀동안 조촐한 페어웰 파티를 가졌다. 함께했던 친구들과 동료들 그리고 사감님과 가족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떠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실장에게 이야기하지 못한 나의 마지막 주말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찜찜한 마음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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