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오란 가아루
나는 알러지가 없다. 검사를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생활반경 내에서는 안전하다.
종종 있는 꽃가루 알러지도 없어서 봄이 되면 조심하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공기 중에 가루가 날리는구나 싶었다. 기관지나 눈 같은 곳이 예민한 편도 아니라서 꽃가루나 송진가루가 많고 적다는 말에 그런가보다 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학교 근처는 주거지역이라서 나무가 많았다. 특히 내가 다니던 길에는 소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는데 덕분에 겨울에도 푸릇푸릇한 이파리들을 볼 수 있어서 일부러 그 길로 다녔었다. 나는 여름의 푸르름을 좋아하는데 소나무의 푸르름을 보면 겨울이 생각난다. 진초록색의 얇은 이파리와 고동색의 나무, 따뜻하게 생긴 솔방울까지. 모두가 겨울을 떠올리게 한다. 더 어렸을 때는 송편 찔 때 넣을 솔잎을 뜯으러 소나무를 찾았었다. 온통 빨갛고 노란 나무들 사이에 소나무 혼자서만 푸른 초록색이었다. 그래서 난 시든 솔잎을 보면 마음이 아팠다.
길을 걸을 때면 항상 생각을 한다. 실이 있건 없건 주변을 둘러보며 느적느적 걷는다. 그래야 생각을 하기가 수월하다. 이건 어린시절부터 있던 오래된 버릇이기 때문에, 그 날도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었다. 소나무는 사시사철 있는데 왜 봄만 되면 송진가루를 조심하라고 할까. 송진가루는 어떻게 생겼을까. 내가 본 송진은 바이올린 켜던 때 활에 칠하던 노랗고 투명한 것 뿐이었는데 그건 가루를 뭉쳐서 만든걸까?
송진가루를 만져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밀가루로 촉감놀이를 하듯이 나도 송진가루를 만져보고 싶었다. 한참을 송진가루 생각을 하다가 타코야끼 트럭이 보여서 트럭에 갔다. 안면이 있는 아저씨와 인사를 하고 신메뉴가 생겼다며 자랑하시기에 시식도 했다. 믿고 먹는 타코야끼 트럭의 신메뉴는 역시나 맛있었다. 너무 맛있다며 호들갑을 떨곤 오리지널 타코야끼 8구짜리 한 박스를 손에 들고갔다. 가쓰오부시가 춤을 추는걸 보니까 나도 신이 났다. 여기서부터 걸어가며 먹으면 집 앞 엘리베이터에서 마지막 한 알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런 성취감이 좋았다.
타코야끼를 손에 들고 먹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날이 살짝 흐렸기 때문에 바람이 불었다. 가쓰오부시 몇 장이 날아갔고 한 알을 얼른 입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계속 바람이 불면 안되는데 어떡하지? 입에 넣은 타코야끼를 우물우물 씹으며 걷고 있었다. 큰 바람이 다시 한 번 불었고 눈을 살짝 감으며 앞을 봤다. 소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노란 가루가 파스스스 날아가고 있었다. 저게 송진가루인가?
난 송진가루는 미세먼지 같은 건줄 알았다. 쉽게 날아다니고 공기 중에 퍼져있지만 잘 인식하지 못하는게 그래서라고. 송진가루가 심한 날, 날이 노래지는 것도 황사나 미세먼지 심한 날 하늘이 노래지는 것과 비슷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슨 붓을 밀가루 봉지에 넣었다가 탁 터는 것처럼 가루가 우수수 떨어져 흩어지는 것이다. 처음엔 저게 송진가루라고? 하고 놀랐고 다음엔 타코야끼 뚜껑을 닫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뚜껑을 열어놨으면 타코야끼가 치즈가루를 뿌린 것마냥 노래졌을 것이다. 한동안 그 나무 앞에 서있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나무가 붓마냥 탁 털어지는 것도, 거대한 노란색 가루들이 우수수수 떨어지는 것도 너무 신기했다.
바람이 잦아들어 다시 타코야끼 뚜껑을 열고 하나를 집었다. 방금 그 장면을 평생 못잊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직도 선명하다. 흐린 회청색의 하늘 앞에서 진한 초록색의 소나무가 탁 털어지는 장면이, 그리고 거짓말 같은 샛노란 가루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