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의 하고많은 부위에서 안쪽 복사뼈를 다쳤다. 그것도 집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다치려면 어떤 방법으로도 다치게 되는 걸까. 이것도 계산된 운명일까.
집 베란다로 나가는 길에 옷에 걸려 무선청소기가 떨어졌다. 묵직한 배터리가 달린 무선청소기는 어찌 된 노릇인지 오른쪽 발목 안쪽, 정확히 안쪽 복사뼈에 떨어졌다. 찌릿한 통증은 발목에서 시작하여 무릎을 타고 골반까지 올라왔다. 나는 아무 소리도 못 내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저 발목을 부여잡으며 가시지 않는, 보이지 않는 고통을 상대로 시간이 흐르기만을 바랐다.
신음조차 내지 못하고 거실에 주저앉아 통증을 견디고 있자니, 하와이의 어느 해변에서 해파리에게 무릎을 쏘였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나는 비명을 지르지도,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하고 모래사장에 앉아서 고통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렸다. 바다에서 해파리에게 쏘일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 이건 의연함일까? 아니다. 나는 너무 아프면 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너무 놀라면, 너무 아프면 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구나. 내가 그런 사람이었구나. 인식하고 나자, 지난 일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애써 상처받지 않은 척, 태연하게 굴었던 내 모습이. 그렇게 의연하게 있으면 마치 없던 일이 될 것처럼.
몇 살인지도 모를 어린 날, 성추행을 당했다. 그게 성추행인지도 모를 아주 어린 날. 몇 살인지 지금도 모른다. 그리고 내게 그런 행동을 한 사람이 누군지도 모른다. 진짜 있었던 일인지도, 이제는 모르겠다. 다만 아무도 없던 집이었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누군가들이 내 음부를 살펴봤다. 의사 놀이었을까. 어린 나는 책상 아래에 누워 다리를 벌리고 있고, 타인이 내 음부를 살펴보는 행동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햇살이 들어오는 방이었고, 나는 책상 아래에 누워있을 뿐이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대부분 흐릿하다. 어린 날의 기억이 많지 않은 건 이런 기억이 있기 때문일까. 여전히 그 시절 기억의 조각이 머릿속을 스치면 기분은 이상하지만, 누구에게도 지난 어린 날의 기억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뒤바뀔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그저 어린 날의 내가 책상 아래 팬티를 벗고 다리를 벌린 채 누워있을 뿐, 이제 와서 변하는 건 없다.
조금 더 커서도 이상한 일들은 계속 일어났다. 사회에선, 회사에선 이상한 남자들이 많았다. 희롱인지, 추행인지 알 수 없는 행동들. 지위를 무기로 자행되는 갖가지 요상한 일들. 대놓고 술을 따라보라는 웃음 섞인 행동은 까짓 거 그래 술 한 번 따라준다고 농담으로 받아치곤 했지만, 상사가 호텔 방으로 불러들이는 행동은 내 태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그 방을 빠져나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나는 너무 어렸다. 나는 그 상사에 대해 회사에 이야기했다. 지금의 미투 같은 걸까. 회사는 들어주는 것 같았지만, 이야기를 꺼낸 이후 냉담해진 사람들의 표정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보다 오래 일했던, 나보다 힘이 있던 그 상사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지, 나는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전처럼 일했지만, 얼마 안 가 회사를 그만뒀다.
늘 괜찮다고 생각했다. 진짜 내 몸에 상처를 입힌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신체에 직접적인 고통을 준 건 안쪽 복사뼈에 떨어진 무선청소기와 하와이 어느 해변의 해파리다. 그리고 이런 고통은 시간이 흐르면 가라앉는다.
그런데 정말 나를 해치는 건 이런 순간의 고통일까.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아픔은 다른 곳에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부은 안쪽 복사뼈를 바라보며 나는 다시 입을 다문다. 시간이 흐르길 바라면서. 다시 고요해지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