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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주영 Feb 16. 2023

소격동 絆


사람에게 느껴지는 기품.

그건 단시간 내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번쩍이는 명품이나 호화로운 생활도, 사람의 기품을 대신할 수 없다. 


사람의 가치관, 철학이 왜 중요한 것인가, 잠깐의 대화에서도 느낄 수 있어 감사했던 시간.     




남편과 낮에 소격동에 있는 일식당에 갔습니다. 

저는 좀처럼 동네 밖으로 나가지 않기에, 멀리 갈 일이 있으면 남편이 동행을 해 주는 편입니다. 소격동의 일식집은 작은 한옥이었어요. 어릴 때 한옥에서 살던 저는 햇살이 비추는 작은 마당도, 처마에 매달린 곶감도 모두 반가웠습니다. 실내의 분위기는 차분하고, 단정했어요.


요리를 책임지는 선생님 역시 그런 느낌을 주었습니다. 마르고 꼿꼿한 등으로 엿보아 단단해 보이는 체구에 조용하면서도 힘이 실린 목소리. 요리 하나하나도 조미료의 과함보다는 원재료의 맛을 잘 살린 깔끔한 맛으로 짐작하건대, 절제의 미학을 아시는 분이라 느꼈습니다.

     

이날 식사는 무척 즐거웠어요. 정갈한 음식은 물론, 식사하며 요리하는 선생님과 짧은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출입문에 들어가지 않을 크기의 커다란 원목을 호텔 안에 들이기까지 고군분투했던 이야기라든가, 좋은 히노키 식탁의 기준이라든가, 맛있는 고구마의 구분법 등 흥미로운 이야기도 즐거웠지만, 일급호텔과 청담동을 떠나 사람들이 찾기 힘든 소격동을 선택하게 된 이유와 앞으로의 바람을 짧게나마 들었을 때, 저는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향해 흔들리지 않고, 한 발자국씩 노력하는 사람. 

저는 그런 사람이 멋지다고 생각하거든요. (아, 선생님의 눈가에 편하게 자리 잡은 웃는 모양의 주름도 멋있었고요.) 


    

저도 그렇게 나이 들고 싶다고 생각한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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