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을 믿진 않지만, 아이들 생일마다 꼭 하는 것이 있다. 어느덧 십 년을 맞이했으니 우리 집 전통이라고 봐도 될까.
평소 아이들 아침 식사는 빵이나 시리얼 등으로 간단하게 남편이 챙겨주는 편이고, 나는 아침을 거르는 사람이지만, 아이들 생일만큼은 아침이 분주하다.
새벽에 일어나 눈을 비비며 미역국을 끓이고 잡곡밥 대신 새하얀 쌀밥을 앉히고 방앗간에 가서 며칠 전에 미리 주문한 떡을 찾아온다. 뽀얗고 토실한 흰 백설기와 알록달록 달콤한 꿀떡과 귀신들이 무서워한다는 붉은 기운 담뿍 뭍은 수수팥떡!
생일날의 아침상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백설기를 꺼내 그릇에 담아 케이크처럼 쌓아두고, 양옆에 꿀떡과 수수팥떡을 차린다. 그리고 쌀밥을 고봉밥처럼 수북하게 한 그릇 퍼담고, 미역국과 함께 놓는다. 생일상이 차려지면 백설기 케이크에 초를 꽂아 가족이 모두 모여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생일을 맞이한 자가 윤기가 흐르는 쌀밥을 한 숟가락 야무지게 먹는 것으로 아침 생일 의식은 마무리된다.
난리법석 아침 생일상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 시작한 것은 아니었고,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니 기분 좋게 하루를 보냈으면 하는 마음에서 전통의 새싹은 움텄다. 그리고 다음 해 생일까지 건강하게 자랐으면, 잘 지냈으면 하는 소망이 있었고. 어쩐지 새하얀 쌀밥과 뽀얀 백설기를 먹으면 좋은 기운이 몸에 깃들 것 같았고, 붉은 수수팥이 귀신이나 악귀를 물리쳐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엄마 마음이란 그렇지 않은가. 내 손이, 내 눈길이 닿지 않는 순간에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은 부모라면 다들 알 것이다. 떡 3종 세트와 함께 하는 아침 생일상은 그 불안함을 잠재워줄 하나의 의식이라고나 할까.
떡은 주문할 때 많이 만들곤 하는데, 아침 생일 축하가 끝나고 나면 재빨리 떡을 작은 접시에 나누어 담는다. 출근해야 하는 남편에겐 회사 동료들과 나눠 먹을 백설기를 쇼핑백에 담아주고, 아이들은 아랫집, 옆집,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 수고하시는 경비 아저씨 등께 3종 떡 세트를 담은 접시를 들고 배달 갈 준비를 한다.
내가 직접 드려도 되지만 굳이 아이들을 심부름시키는 건, 떡을 드리면 대부분 덕담 한마디씩은 해주시는데, 태어난 날 아침에 사람들에게 듣는 좋은 말이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렇게 아이들의 얼굴을 익힌 이웃들은 아이들이 아파트 마당에서 놀 때라던가 혹은 동네를 돌아다닐 때 지나치며 눈여겨 봐주시지 않을까 싶은 응큼한 속셈이 있기도 했고.
아이들이 떡 심부름을 마치고 학교에 가면, 이번엔 내 차례다. 평소 고마웠던 동네 이웃께 떡을 전달하고 또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 친구 엄마들에게 연락하여 떡을 돌린다. 그러고 나면 식당이나 카페가 한가해지는 오전 열 시 즈음이 되는데, 이때 좋아하는 동네의 작은 식당 사장님들께도 떡을 갖다 드린다. 오후가 되면 아이들 학원 셔틀버스 보조 선생님께도 떡을 전달하는데, 이는 평소 아이들이 셔틀버스에 타면 꼭 안전벨트를 하게 해주십사 당부에 당부를 거듭하며 유난을 떠는 엄마의 민망함을 약소하게나마 무마하려는 꼼수라고나 할까. 이렇게 오후까지 떡을 전달하고 나면 이웃에게 떡 전달하는 행사는 마무리된다. 코로나가 생기기 전에는 학교나 어린이집에도 아이들 생일떡을 들려 보냈는데, 요새는 그걸 할 수 없어 아쉽다.
저녁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일 듬뿍 생크림 케이크 혹은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들고, 근사한 식당에서 가족 모두 모여 외식을 하고 선물을 증정까지 하고 나서야, 시끌벅적한 생일 이벤트는 끝이 난다.
생일이 뭐라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종일 사서 고생을 할까 하지만, 이번에 생일을 맞은 둘째 아이가 아침 생일상의 수수팥떡을 한 알 집어 입안에 쏙 넣으면서,
- 엄마, 사실 저는 팥떡을 싫어하지만, 이걸 먹으면 도깨비가 오지 않으니까 하나 다 먹을 거예요.
라고 말하며 오물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년에도 다시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모쪼록 어린이들이 태어난 날에 타인과 나누는 기쁨을 살아가는 동안 쭈욱 느낄 수 있기를 소망하며...
도깨비야, 팥떡 말고 달콤한 꿀떡 먹고 한 해 동안 우리 어린이들 잘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