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고 기억하며

by 전주영

이른 아침, 휴대전화의 알람이 울렸다. 7년 전, 내가 네이버 카페에 썼던 글에 댓글이 달렸다. 모르는 닉네임… 그녀는 댓글에 내 안부를 물으며 나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그녀가 쓴 글의 url 주소를 함께 덧붙이며.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되었던 날 저녁, 나는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휴대전화로 접했던 인터넷 뉴스를 보고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이 난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도대체 한국에선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여행의 피로감이 잔뜩 묻은 아이를 잠재우고 조용해진 거실, 집을 채우는 비현실적인 뉴스의 홍수 속에서 남편과 나는 서로를 마주 보며 당혹스러워했다. 우리에겐 평소와 다름없는 밤이었지만, 저 멀리 진도에선 차갑고 어두컴컴한 바다 한가운데 배가 가라앉았다고 했다. 아직 많은 사람이 탈출하지도, 구조되지도 못했으며, 배에 탄 다수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시의 고등학생들이라고 했다.

온 국민이 구출 소식을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별다른 진척 없이 애꿎은 시간만 흘렀다. 이상했다. 뭐라도 해야 했다. 아니, 하고 싶었다. 혹시 모를 생존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었고, 적어도 뭍으로는 데리고 와야 할 것 아닌가. 밤낮 가리지 않고 항구에 매여 너른 바다만 보며 애태울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면 내 가슴도 덩달아 짓이겨졌다.

집에서 발만 동동 구를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사람들에게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며 밖에 나가 직접 행동하자는 제안을 했다. 우리가 움직이면 나랏일을 하는 사람의 행동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그들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결국 투표권을 쥔 우리라고, 그러니 온라인으로 댓글만 달며 슬픔을 논하지 말고 나와서 움직이자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 이후로는 무언가에 홀린 듯 일이 진행했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여서, 아이를 데리고 움직여야 했기에, 시위하기에 안전한 장소를 찾았고, 또한 합법적인 시위를 원했기에 집회 절차를 알아봤다. 장소는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교보문고 사거리까지. 장소를 정하고 나서 경찰서에 가서 집회 신고를 했고, 평화로운 시위를 위해 몇 가지 규칙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안내했다.

구호는 없다, 하고 싶은 말은 스케치북에 써오십사, 강남역 상권에 피해 가지 않게 우리는 침묵하며 두 줄로 짝지어 걷는다. 단순한 규칙이었다.

그때의 나를 움직인 건 내가 아니었던 것 같다.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려보니 강남역 한복판에 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대부분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다. 아기띠에 아기를 안고,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또는 혼자서…. 어떤 이익을 위해 모인 것이 아닌 그저 이웃의 아픔을 공감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이었다.

계획하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예상보다 일이 커졌고 현장에는 많은 취재진이 왔다. 서초경찰서에서는 정보관이 따로 나와 위험한 요소가 있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살면서 그렇게 많은 카메라 세례를 받은 건 처음이었다. 수많은 사람의 이목을 받으며 강남역 대로변의 침묵 행진은 평화롭지만, 세월호에 갇힌 이들을 향한 간절함을 남긴 채 마무리되었다.



이후 나는 많은 매체와 인터뷰를 했다. 국회의원도 적극적인 관심을 표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안철수 공동대표로부터 연락을 받고, 국회에서 간담회도 열었다. 직접 움직이고 행동하니 국회의원도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에 나는 내심 놀랐다. 일반인을 모으고 함께 행동했던 이력 때문일까,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일었을 때 야당의 문재인 후보 측에서 간담회를 함께 진행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개인적으로는 값진 경험으로 남았다.

좋은 관심만 있던 건 아니었다. 어떤 보수단체에선 강남역의 시위를 두고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를 위험한 시위 현장에 데리고 나오는 것은 아동학대라며 사진 한 장 들고 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발하였다.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평화로웠던 그날의 현장 분위기를 찾아볼 수 있었지만, 결국 나는 둘째 임신 중에 검찰 조사를 받게 되었다.




직접 움직여야 세상이 변한다고 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쉽게 굴러가지 않았다. 비록 여러 언론 매체와 인터뷰를 하고, 평범한 아이 엄마가 야당의 대표를 만나 간담회를 열었지만, 세월호는 여전히 깊은 바닷속에 잠겨있었고, 돌아오지 못한 이가 있었으며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게다가 계획하고 행동한 일이 아니었기에, 일이 점점 더 커져 일상 속을 침범하기 시작하자 참을 수 있었던 소소한 불편함이 어느 순간 부담이 되어 마음을 짓눌렀다.

무엇보다 검찰청에서 연락을 받을 당시, 나는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기에 검찰 조사로 인해 가족 혹은 아이에게 피해가 갈까 걱정됐다. 나는 괜찮았지만, 회사 다니는 남편 혹은 교직 생활을 하는 시누에게까지 피해가 가면 어쩌나 염려되기도 했다.

애초에 조사받을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조사받아야 할 상황이 되니 만약의 상황이 두려워졌다. 담대한 척은 했으나 혹여나 내가 구속되면 아이는 누가 돌보나, 아이 걱정이 앞섰다.

솔직히 말하자면 현실의 고초 앞에서 온라인상의 응원은 마음에 크게 와닿지 않았다. 현실 속의 나는 외로웠다. 검찰청에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없어 엄마의 도움을 받을 때는 더욱 그랬다.

동네에서도 일상은 무너졌다. 검찰 조사를 앞두고 당시 박주민 변호사와 동네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아는 분으로부터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의 충격은 여전히 생생하다.

세월호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며 조롱하는 사람들 속에 놓이는 것도 곤욕스러웠다. 강남역의 시위는 ‘엄마라서 말할 수 있다’라는 슬로건으로 행진했는데, 이후 보수 쪽에서는 ‘엄마부대’가 탄생하여 나로서는 보기 힘든 뉴스를 자꾸 생산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지만, 온라인상에서 ‘엄마’라는 단어의 의미가 퇴색되는 듯한 느낌을 지켜보는 것도 괴로웠다.

그 모든 것들로부터 피하고 싶었다. 나는 어떤 단체에 소속된 사람이 아니었고, 금전적 목적이 있어 시작한 일이 아니었으며,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대가 없는 희생과 노동은 오래 이어질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가족이 우선이었다. 나는 일상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함께 하는 가족이 있기에 이것이 최선이라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론 나는 내 행동이 비겁하다 여겼다. 여기서 이렇게 포기해도 되는 것일까. 아직 세월호는 저 차가운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는데?




도망친 이후엔 잊으려 애썼다. 우선 나는 일련의 일들을 별 것 아닌 일로 치부했다. 나는 내가 행동했던 일이 세월호 참사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나아진 점이 없다고 느끼기도 했고. 움직이고 행동해서 얻어낸 것이 무어란 말인가.

내가 쓴 글이며 기록들을 기억 속에 묻어두고 감췄다. 언젠가는 기록을 남겨두는 것도 버거워 모두 삭제할까 했었다. 삭제하지 못한 것은 차마 다시 마주할 용기도 없었기에…….

나는 비겁하게 도망친 사람이었다. 다들 세월호의 진상을 밝히려고 애쓰고 있는데, 나는 움직이고 행동하자고 말해놓고서, 일상 속으로 도망쳐 평화를 얻었다.

어느 날, 나는 가방에 달려 있던 노란 리본을 숨겼다.

내겐 세월호가 상처이자 아픔 그리고 패배감이 묻은 무기력함으로 남았다.



시간이 흘렀다. 유모차에 탄 채 방울토마토를 먹으며 주스를 마시며 행진을 함께 했던 아이는 건강하고 밝게 자라 초등학생이 되었다. 이제는 ‘유모차부대’가 뭔지 모르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은 시간이 흘렀고 모두에게 잊혔으리라 생각했다.

칠 년 전, 나는 검찰 조사 결과를, ‘아동학대 무혐의’를 받기까지의 과정을 글로 사람들에게 공유했었다. 내가 제안했던 침묵시위의 결과이자, 내가 ‘엄마라서 말할 수 있다’로 활동한 마지막 일이었다. 그리고 2022년 4월 16일… 그녀는 그 글에 댓글을 달아 내게 안부를 전해왔다.

그녀는 ‘그때 먼저 행동해준 덕분에 그래도 4월 16일이 오면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덧붙여온 글에는 내가 강남역 시위를 제안하던 순간부터 ‘엄마라서 말할 수 있다’를 만들어나가고 합법적인 시위 절차와 방법에 대해 기록해두었던 것을 하나씩 떠올려가며 써 내려갔다. 그 글 속의 나는 여전히 힘차고 생동감 있게 살아있었다.

내게는 아픔이고 실패이자 상처여서 애써 감춰두었던 기록이 그녀에겐 그동안 어떻게 기억되고 읽혔던 것일까. 나는 글이 지닌 힘과 기록하고 기억하여 더해지는 영향력에 대해 곱씹어 본다.

오랜 시간, 의미 없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헛된 일은 아니었구나. 침묵으로 보내왔던 몇 년의 시간 동안, 내가 모르는 다른 세상에선 또 다른 힘으로 그렇게 굴러가고 숨 쉬고 있었구나. 별 것 아닌 일은 아니었구나……. 나는 어느새 안도감을 느낀다.


그저 글을 쓰고 기록하고 기억을 되살려보는 소소한 행위지만, 글이 가진 생명력은, 사람이 기억하고 가슴에 불을 지피는 일은 소소하지 않다. 그 힘이 모여 언젠가 더 환한 빛이 되길 바라면서, 나는 오늘 활짝 피기도 전에 져버린 꽃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2022.04.16






그리고.... 그날, 현장의 기록들.


2014.04.30 강남역 시위, '엄마라서 말할 수 있다'
2014.05.22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와의 간담회
2015.10.18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의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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