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손전등

Reka Koncz, Ora 2019

by 전주영


어둠 속에 숨어있는 낯선 이.

당신의 그 손전등은 애정일까 혹은 다른 무엇일까.


경계하는 사슴.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Reka Koncz, Ora 2019


지역 : Hungary> Bukk


품종 : Kiralyleanyka


테이스팅 노트


교대에 있는 작은 와인바 '라메종뒤땅'에 와인을 마시러 간 날,

바 테이블에 전시되어있던 빈 병의 레이블을 보고 마음에 들어 했던 와인입니다.

부끄럽지만, 제 오랜 별명이 '사슴'이어서요.

사슴이 그려진 제품은 유심히 보는 편입니다.


레카 콘즈의 사슴은 찌푸린 표정이 눈에 띄었습니다.

어둠 속에 숨어있는 나를 빛을 사용하여 벌거벗기듯 드러나게 해 놓고

자신의 정체는 숨기고 있는 낯선 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와인은 화산 지형에서 오래된 포도나무를 유기농 재배 후

최소한의 개입만 해서 만든다는 헝가리 내추럴와인입니다.

품종을 정확히 알 수 없는데 그 이유는

한 Vineyard에서 다양한 품종의 포도를 키워 수확, 발효하여 제조해서 비율을 알 수 없다고 하네요.


2019 빈티지의 경우 1,200병 만을 생산했습니다.

이렇게 Filed blend한 와인은 처음이었고, 향이 독특했어요.

오픈하자마자는 암모니아 향이 살짝 나지만 금방 사라지고

이후엔 파릇한 풀내음이 살랑거리는, 마치 여름이 떠오르는 향.

다양한 품종처럼 여러 꽃들과 함께 뛰노는 노란 복숭아, 살구의 향이랄까요.


소량 생산하여 좀처럼 구하기 어려운 와인인데, 눈이 예쁜 산타로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습니다.

거리 곳곳에 설렘이 가득 쌓이던 어느 겨울밤, 흩날리는 싸락눈을 바라보며 마셨습니다.

싸락눈 사이로 피어나는 여름의 향이라니, 근사하지 않나요?

마시는 내내 크리스마스 트리에 달린 작은 알전구처럼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습니다.


밭에서 여러 품종으로 자라나 알 수 없는 품종이 되는 것처럼

우연과 만남 그 사이에서, 사람의 마음도 어떻게 뻗어나갈 줄 모르게 됩니다.

손전등에 실린 반짝이는 빛이 잠깐의 호기심이 아닌 깊은 애정이라면 좋겠습니다.

어둠 속에서 나와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안아주는 그런 애정이요.


어둠 속에서 낯선 이와 함께 하는 사슴의 밤이

상큼한 여름의 맛처럼 예쁘고 아름답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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