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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주영 Oct 18. 2022

SPC 제품은 사지 않겠습니다

 양재동에 본사가 있는 그 회사 앞에는 노조의 현수막이 늘 걸려있습니다. 양재동을 종종 오가는 저는 그 앞을 지날 때면, 그 회사가 나쁜 회사라는 것은 어렴풋이 알았지만, 자세한 내막까지는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부끄럽지만 어른의 삶은 노곤하고, 제 일상을 평온하게 유지하기 위해선 마음이 복잡해질 뉴스는 종종 건너뛰곤 합니다.

      

 저는 작년에 특성화 고등학교에 가서 고등학생 1, 2학년 친구들과 함께 반년 동안 ‘노동인권’에 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주제를 선정하며 '노동인권'이란 아이들과 눈에 보이는 프로젝트로 함께하기엔 약간 어렵고 모호한 주제가 아닐까 걱정했지만, 코앞에 취업을 앞둔 아이들에게 ‘노동인권’은 가장 필요한 주제의식이었습니다. 어른들의 기우와 달리 아이들은 프로젝트를 충분히, 아주 멋지게 잘 해냈고,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 알아둬야 할 부분에 대해, 서로를 지켜줘야 하는 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프로젝트를 마치며 친구에게 해주고 싶은 메시지에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나를 불러. 내가 너를 위해 싸워줄게.’라고 적었던 학생의 글이…… 오늘 떠올랐습니다.  

    

 오늘 자 한국일보 기사에 따르면 문제의 그 회사는 15일 고인이 기계에 끼어 숨진 사고가 발생한 이후 바로 그다음 날인 16일에 같은 장소에서 사고 기계만 흰 천으로 가리고 공장을 가동했다고 합니다. 저는 기사에 첨부된 사진을 보고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젯밤 사람이 죽었는데, 어제 봤던 동료가 오늘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데, 그것도 회사 기계에 끼어 숨졌다는데, 애도할 시간도 없이, 생산 설비에 대한 점검도 없이 일하라니, 노동자는 슬픔도,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 존재입니까? 아니면 그 회사의 관리자가 기본적인 감정조차 지니지 않은 사람일까요?     

 

 이번에 사고를 당한 고인 역시 특성화고를 나와 제빵의 꿈을 키우던 청년이었다고 합니다.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작년에 만났던 특성화고 친구들이 떠오르며 이제야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더군요. ‘노동인권’에 대해 말하던 학생들은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구의역 김군 사건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학생들은, 여전히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사회를, 앞으로 직접 뛰어들어야 하는 이 사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어른으로서 부끄럽고 씁쓸해졌습니다.     


 발생해서는 안 될, 안타까운 죽음 앞에 그 회사의 대처는 몰상식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숨졌으면 모든 공정을 정지시키고 생산 설비에 대한 점검을 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빈번하게 발생하는 끼임 현상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망을 만들고, 사고 현장을 제대로 수습하고, 충격을 받았을 직원들의 정신 건강에 대해서도, 회사가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뻔한 사과문을 발표하고 뒤로 돌아 노동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태도가 아니라요. 노동부는 왜 이런 걸 제지하지 않을까요?      


 저는 아이들에게 앞으로 포켓몬빵을 사주지 않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사지 않는 이유에 대해선 둘러대지 않고 설명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공장에서 일하던, 너와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누나, 언니가 빵의 소스를 만드는 기계에 끼어 죽었다고. 우리라고 언제든 공장에서 일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고. 노동자의 안전은 지켜져야 한다고. 그러므로 엄마는 노동자를 감정 없는 기계처럼 부리는 회사의 제품은 앞으로 사지 않겠다고요.      


 그리고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며 다짐합니다. 

 저는 앞으로 SPC 제품은 사지 않겠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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