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는 사람들과 모여 몇 편의 글을 썼습니다. 지난 토요일엔 도곡동에 있는 작은 출판사에서 여름에 쓴 글을 모아 출간하기 전 마지막 회의가 있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출판사로 향하며 창가에 기대 퇴고한 원고를 살펴봤습니다. 당신에게 조잘조잘 이야기를 건네며 글을 쓰던 이번 여름엔 유독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글에 묻어있는 여름의 습기가 세찬 빗길을 뚫고 서로를 만나던 열기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웃고 여름밤을 수놓았던 순간들. 눈을 감으면 여전히 당신의 눈빛이 선명합니다.
여름의 잔열을 안고 반짝이는 가을 햇살을 받으며 방배동에서 출발한 버스는 남부터미널과 뱅뱅사거리를 거쳐 도곡동의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줄임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 저는 작년 가을에야 버스정류장을 ‘버정’이라는 줄임말로 말하기도 한다는 걸 알았는데요. 이상한 단어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후에 버스정류장을 지나칠 때면 ‘버정’이 떠오르곤 합니다. 이런 게 기억의 각인일까요? 기억 속에 깊이 새겨지는 건 선택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라 곤혹스럽기도 합니다.
지난봄엔 매봉역 근처 도곡동에 있는 카이스트 캠퍼스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수업을 들었습니다. 너도나도 흩날리는 벚꽃잎에 취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나들이 가는 주말에 창문도 없는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듣자니,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은 마음을 달래느라 애먹던 날이 있었습니다. 카이스트 도곡캠퍼스 맞은편에는 오래된 평양냉면집이 있는데, 쉬는 시간마다 벤치에 앉아 냉면집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평양냉면을 곁들여 낮술을 마시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봄이었죠. 제가 이런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위로하고 토닥이던 당신이 떠올라, 마음이 애틋해져 도곡동 거리를 조금 더 천천히 걸었습니다. 작년까진 몇 번 안 온 동네에 애정이 깃든 데엔 미움을 견뎌낸 시간이 덧대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냥 달콤한 사랑이 아니라 갈등과 인내의 시간, 그러니까 서로 맞추어가는 시간이 쌓여 진정한 애정이 생긴 오랜 연인처럼요.
도곡동의 골목엔 작고 예쁜 카페들이 많은데, 출판사는 그중 크루아상이 유명한 카페의 위층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분 좋은 빵 냄새를 맡으며 카페를 바로 보고 왼쪽으로 돌아가면 건물의 위층으로 오를 수 있는 출입문이 보입니다. 계단을 오르면 출판사인지 전혀 알 수 없는 남색 문에 출판사의 로고가 작게 걸려있습니다. 이런 게 요새 유행이라고 하는데, 저는 큰 간판이 없는 곳을 갈 때마다 번번이 길을 헤매곤 합니다. 방향치임에도 지도를 꼼꼼히 보지 않고 무턱대고 걷는 습관 탓에 제가 어디 서 있는지 실시간 위치를 보여주는 지도 앱이 아니었다면, 저는 열에 아홉 번은 길을 잃습니다. 이날은 카카오맵을 사용하여 무사히 출판사에 도착했습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햇살이 예쁘게 들어오는 직사각형 모양의 사무실엔 열 명은 앉을 수 있을 널따란 호두나무 테이블이 중심에 있고 낮게 깔린 재즈가 실내로 들어서는 방문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오랜만에 만난 대표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사무실을 둘러봅니다. 공간을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을 슬쩍 엿볼 수 있는데요. 짙은 감색 책장엔 다양한 책이 작가별로, 장르별로 보기 쉽게 정리되어 있고, 책장 앞에는 한 번 앉으면 일어서기 힘들 것 같은 푹신한 천으로 만든 베이지색 소파가 있습니다. 올리브색 벽지 사이사이로 귀여운 그림이 걸려있고, 자칫 밋밋할 수 있는 공간에 화려하지만 절제된 선이 멋진 조명이 힘을 불어넣고, 디자인이 예쁜 발뮤다의 전자제품과 책상 위에 올려진 사무용품들이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어, 그녀의 멋진 취향에 감탄합니다. 그리고 공간 한쪽에 옹기종기 숨어있는 와인과 위스키며 다양한 종류의 술을 발견하고 속으로 손뼉을 칩니다. 출판사에는 첫 방문이라 감귤류의 발랄함과 너른 초원의 초록빛 기운이 넘실거리는 뉴질랜드의 소비뇽 블랑을 한 병 들고 왔는데, 안심하며 기쁜 마음으로 대표님께 건넵니다.
도착하지 않은 사람들을 기다리며 현재 제가 쓰고 있는 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 글은 아직 두루뭉술하고 이야기를 하다만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하네요. 조금 더 명확하게 드러내면 좋을 것 같다는 조언에 어떻게 하면 위험하지 않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까 머리를 감싸고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내젓습니다. 얄팍한 생각입니다. 솔직함과 위험함은 아주 얇은 종이처럼 붙어있는 관계니까요.
이윽고 함께 글을 쓰며 여름을 난 사람 다섯 명과 편집자가 원목 테이블에 둘러앉아, 향이 좋은 홍차와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책의 표지 시안과 정하지 않은 제목을 두고 서로 머리를 맞댑니다. 저는 제목 짓는 데엔 빵점인 사람이라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들으며 신기해합니다. 서른 개 남짓 제목 후보가 오가고 그 와중에 차곡차곡 정리하여 공유하는 사람을 보며, 나라는 사람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느껴져 약간 민망했지만 각자 잘하는 일은 있으니까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선택지에 대해, 왜 마음에 들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제가 선택한 표지는 너무 올드하고, 고른 제목은 너무 시집 같다는 이유로 모두 탈락했지만요.)
제목과 표지가 결정되고 사무실을 나서니, 어스름이 지네요. 회의 중에 남편으로부터 카카오톡이 되지 않는다며, 알아두라는 문자메시지가 왔습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조금 걷다가 집에 들어가겠다고 전했습니다. 길을 걸으며 휴대전화로 확인한 인터넷 뉴스에선 카카오톡이 멈춘 세상에 퍼진 혼란에 관한 많은 기사가 나왔지만, 노을이 지는 도곡동은 무척 평온했습니다.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표정도, 카카오톡 앱 속 사라지지 않는 1을 보는 제 마음도 잔잔한 호수의 표면처럼 고요하고 평화로워 어쩐지 이상했습니다.
평소 저는 연락이 잘 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사람이라, 카카오톡 메시지의 숫자 1이 사라지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는 숫자에 마음이 매이고 맙니다. 때 되면 답장 오겠지 마음을 다잡아봐도, 신경이 온통 메시지에 가 있어 난감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괴롭힌 원흉은 무엇일까 생각하다, 불편하게 만들었던 상황을 삭제하자는 결론에 다다르자, ‘당신은 모 아니면 도 같은 성향을 지니고 있어. 중간이 없는 것 같아.’라고 말을 건네며 숨을 내쉬던 남편이 떠올랐습니다.
메시지는 사람의 마음을 담아 그런 거라고 변명해봅니다. 적절한 시기에 제어를 해주지 않으면 좀처럼 중간이 없는, 그러니까 낙차가 큰 사람이긴 하지만요. 김애란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의 주인공 '아름'은 이런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때서야 나는 편지를 쓰는 일보단 답장을 기다리는 일이 훨씬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발신은 혼자 할 수 있는 거지만, 수신은 그렇지가 못했다.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적어도 그렇게 둘 이상 있어야 하고, 받는 사람이 최소한 자기가 무얼 받았는지 알아차려야만 가능한 일이 바로 '소통'이었다. 가만히 있었으면 아무 일도 안 생겼을 것을, 말 그대로 내가 뭔가 ‘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것도 손이나 발이 아니라 ‘마음’을 사용해서 한 일…… 그게 또 ‘마음’이라, 처방할 약으로는 상대의 ‘마음’만한 것이 없는……”
발신과 수신. 그리고 침묵. 받지 못한 답장과 차마 보낼 수 없었던 메시지가 교차하며 머릿속을 스칩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떤 답을 해야 할지 몰라, 카카오톡 채팅창만 바라보며 머뭇거린 순간들. 이대로 카카오톡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내 고민도 끝날 것처럼 멈춰버린 카카오톡 앱을 바라봅니다.
해질녘의 길을 걷다 보니, 바람이 꽤 쌀쌀합니다. 입동이 오기 전엔 손으로 책을 만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번 크리스마스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와 함께 책을 선물해야겠습니다. 매일 ‘글을 왜 쓰는가’에 대해 고민합니다. 제 글은 도움이 될 정보를 안고 있는 글도 아니고, 흥미로운 요소가 넘치는 글도 아니며 그렇다고 매우 잘 쓴 글도 아니기에 지금 이렇게 책상에 앉아 보내는 시간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때로는 불투명한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세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을 쓰며 나를 이해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자의 상념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안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 그 중심엔 당신이 있을 테고요. 오늘도 전하지 못한 메시지를 이렇게 글로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