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여름은

by 전주영

내게 여름을 알리는 시작은 ‘골덴옥수수’였다. 5월 중순이 지날 무렵 출시되어, 길어야 3주가량 판매되다 찰옥수수가 나올 즈음 사라지는 노란 옥수수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식감이 찰지고 쫄깃한 찰옥수수를 좋아하시는 엄마는 내가 골덴옥수수를 사면 ‘먹으면 치아에 잘 끼고 동물 사료로 쓰는 옥수수가 어디가 좋냐’고 그랬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골덴옥수수가 동물 사료로 쓰이는지 확인하진 못했지만 치아 사이에 잘 껴도, 가축의 사료로 쓰인다 해도, 좋았다. 심지어 공기 중에 조금만 내어놔도 겉면이 쉽게 쪼글쪼글해지는 골덴옥수수가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지나친 단맛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요새 유행하는 당도가 높고 사각사각한 식감의 초당옥수수보다는 옥수수수염차처럼 고소한 단맛이 느껴지는 골덴옥수수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여름날 간식이었다. 얼마나 좋아했냐면 매해 출시되는 시기를 기다리며 발견하자마자 상자째 대량으로 구입할 정도였다. 옥수수는 도착한 날 바로 삶아야 맛있다고 해서, 옥수수가 도착하면 팔을 걷어붙이고 양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하나씩 하나씩 껍질을 손질하곤 했다. 손질한 옥수수를 단맛을 내주는 옥수수수염과 질 좋은 굵은소금만 살짝 넣고 큰 솥에 푹푹 삶으면 그 자리에서 서너 개는 단박에 해치우곤 했다.

맞바람 칠 수 있도록 열어놓은 거실과 베란다의 창에선 시원한 바람이 넘나들었고, 집 안을 가득 채운 구수한 옥수수 냄새는 또 얼마나 좋던지, 가스불 앞에서의 더위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방금 쪄내 모락모락 김이 오른 샛노란 옥수수를 입안에 넣는 순간은, 내게 있어 여름 그 자체였다.

한 김 식힌 골덴옥수수는 두 개씩 담아 냉동실에 보관하는데, 냉동실을 옥수수로 가득 채울 때의 뿌듯함이란, 겨우내 식량을 저장하기 위해 볼이 터지도록 도토리를 담는 다람쥐가 된 기분이었다. 다가올 기나긴 추위가 무섭지 않았다. 여름이 그리울 때면 언제든 냉동실에서 꺼낼 수 있었으니까.

한때는 찰옥수수처럼 시장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던 골덴옥수수는 2017년을 마지막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아마 그 시기부터 초당옥수수 열풍이 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였을까. 어느 순간 마트에서 보이지 않아 검색해본 결과, 이제 더는 종자를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작별은 그렇게 순식간에 온다. 하긴 예고하고 찾아오는 헤어짐이 어딨던가. 다행히 그 무렵 나는 찰옥수수의 매력에 눈을 떴다. 필요할 때면 언제든 인터넷에서 살 수 있는 찰옥수수는, 골덴옥수수처럼 출시 시기를 놓치면 일 년을 기다려야 하는 고통을 주지 않았다. 안 그래도 좁은 냉동실을 옥수수로 가득 채워야 하는 비효율성도 없었다.

찰옥수수는 한겨울에도 하루 이틀이면 신속하게 배송되었고, 갓 수확한 신선한 옥수수를 산지에서 커다란 무쇠 가마솥에 삶아 급속 냉동한 후 진공 포장하여 판매했기에 전자레인지에 넣고 3분이면 탱글탱글한 식감과 담백한 맛을 마법처럼 보여줬다. 시간이 흐르면서 애달픔보다 간편함이 더 좋아진 나이가 되어서였을까. 나는 환승 이별처럼 골덴옥수수에서 찰옥수수로 여름날 간식을 교체했다.

오래 사랑했던 샛노란 옥수수에 대한 애정은 아주 연하게 번진 파스텔처럼 서서히 사라졌지만, 여전히 여름을 떠올리면 골덴옥수수가 생각난다. 연인을 그리워하듯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만나면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던 지난날들. 더운 날씨에도 가스불 앞에서 땀을 송골송골 흘리며 흥얼거리던 순간이 차곡차곡 덧대어져 생긴 애틋함……. 다시 만날 수 없더라도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나의 여름, 나의 골덴옥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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