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어느 여름

by 전주영

내려도 너무 내린다. 이번 여름은 눅눅한 잔인함이 공기 중에 깔려있다고 생각했건만, 기어코 수마는 맹렬하게 도시를 집어삼키고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접한 뉴스는 참담했다. 도로가 침수되어 자동차가 물에 잠긴 것쯤은 우습게 보일 만큼 피해가 컸다. 관악구의 반지하에 살던 40대 자매와 열세 살의 소녀는 물에 잠긴 집을 빠져나오지 못하여, 동작구에서 가로수 정비를 하던 60대의 공무원은 감전되어 목숨을 잃었다.

세계일보 기사에 따르면, 올해 편성된 서울시 예산 중 수방 및 치수 예산은 약 4202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987억 원 감소했다고 한다. 2012년에 4317억 원이었던 수방 및 치수 예산은 2013년 4369억 원, 2014년 4368억 원, 2015년 4642억 원으로 2019년까지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지만 2020년부터 올해까지 꾸준히 감소했다고 한다.

궁금해진다. 삭감한 예산은 어디로 갔을까. 어떤 분야의 예산이 증가했을까. 며칠 전 수많은 홍보 속에 화려하게 재개장한 광화문광장이 머릿속을 스친다. 강변에 큰 대관람차를 만들겠다는 어제자 기사가 눈에 밟힌다. 큰비가 내리면 안전이 위협되는 사람에게는 유희는 사치일 수도 있는데… 시민의 안전과 관련된 예산은 왜 삭감한 걸까. 무엇이 중요해서. 이런 쪽에 문외한인 나는 정치인의 뜻을 알기 어렵다.

기사를 검색하는 동안 차갑게 식은 커피를 마시면서 입에 차오르는 쓴맛을 훔쳐낸다. 아날로그형 인간이지만, 요즘 시대에 SNS만큼 동네 소식을 빠르게 접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지자체 SNS는 조용하다. 동네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본다. 밤새 손쓸 수 없이 물에 잠긴 물건들을 골목으로 내놓은 재래시장의 지릿한 사진이 눈을 감게 만든다. 한낮의 교차로 신호등이 고장 났다. 7호선 지하철역 천장은 무너졌고, 9호선 지하철 몇 구간이 운행하지 않는 등의 소식은 각자의 방법을 통해 알음알음 찾아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어째서 이렇게 됐을까?

비가 많이 내린 어젯밤, 서초동 자택으로 퇴근한 윤석열 대통령이 밤새 걱정에 휩싸여 잠들지 못했다는 월간 조선의 기사를 보니… 안타깝다. 며칠 전부터 호우는 예보되었지만, 서초동 자택도 호우 침수 피해가 있었단다. 발을 동동 구르던 윤 대통령은 헬기 이동까지 검토했지만, 심야 주민 피해를 고려하여 포기하고 집에서 밤을 지새우며 상황을 지휘했다고 한다. 전화기를 붙잡고, 한덕수 총리와 이상민 장관과 오세훈 시장과 번갈아 통화하며, 피해 상황 체크하고 복구를 독려했단다. 지하 벙커 속 위기관리센터가 있는 청와대를 나와 용산으로 이사를 강행하고, 폭우 속에서 서초동의 교통 신호를 길게 잡으면서 퇴근하셨으면… 줌(Zoom)이라도 사용하시지.

수마는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밤새 서울을 가혹하게 할퀴었다. 오늘 아침, 사람들과 모여 노란 옷을 입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 윤석열 대통령의 기사가 눈에 도드라진다. 오늘은 직접 상황을 보고 받고 진두지휘하겠지. 간밤에 이미 많은 곳이 침수되고, 인명 사고까지 있었지만, 수습은 잘 되겠지. 뉴스를 통해서라도 윤석열 대통령의 계획을 자세히 알 수 있으면 좋겠다. 요새 기자들은 왜 ‘국무회의 주재’라는 헤드라인만 쓰고, 구체적인 사안은 담지 않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식은 커피와 함께 곁들인 통밀빵이 명치에 얹힌 것 같다. 냉동실에 꽤 방치되어있던 빵을 꺼내, 오래 구웠더니 타버렸다. 거뭇하게 그을린 메마른 빵을 우적우적 씹어 삼켰다. 무언가 제대로 차려 식사하고 싶지 않았다. 눈뜨기 힘든 강렬한 햇빛이, 뜨겁게 타오르던 대지가, 햇살에 바싹 마른 옷의 바삭거림을 느꼈던 적이 언제였더라.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축축한 마음에 곰팡이라도 피는 것처럼 기분이 얼룩덜룩해졌다. 비가 왔다고… 사람이 죽는 도시에 내가 살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마침표의 유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