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가 쏟아지고 아직 복구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수마는 야속하기도 하지. 15일 저녁 또다시 큰비 소식이 있단다. 어제는 수해를 대비하여 물막이 모래주머니 만드는 봉사활동 현장에 다녀왔다. 만만하게 보았던 모래주머니 만들기는 삽질부터 힘들었고, 묵직한 모래주머니를 싣고 나르는 과정은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로 힘들고 괴로웠다. 쪼그려 앉아 작은 삽으로 모래를 퍼담느라 굽은 등과 마비되는 팔 그리고 무게가 꽤 나가는 모래주머니를 들고 트럭에 실으며,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뻐근할 것이라 예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에 눈을 뜨니 몸이 묵직하다.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오전을 모두 소비했다. 뭐라도 먹어야 오늘 작업을 할 수 있는데, 도통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어디 나가서 먹자니 현관문을 나서는 것조차 귀찮고, 음식 배달 주문할까 하니, 배달 음식에 물렸다. 날이 더워 불 앞에 서기 싫은 탓에 한동안 배달 음식을 잔뜩 먹었더랬다. 이제 일회용 용기는 쳐다보기도 싫다. 그렇다고 재료를 꺼내 조리하여 먹자니 번거롭다. 재료 손질하고 조리하고 먹고 나서 설거지하고. 과정을 떠올리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무엇보다 조리 활동을 하고 나면 만드는 과정과 조리 중 음식 냄새에 지쳐 입맛이 달아난다.
간단하게 먹어야지. 뭐라도 입에 넣어야, 일을 할 수 있다. 간단히 끼니를 때울 음식으로 라면을 떠올린다. 주방 서랍에 채워둔 봉지라면을 바라보다, 이내 컵라면에 눈을 돌린다. 며칠 전 제부가 사돈 어르신이 하동에서 정성 들여 재배한 농산물로 담근 배추김치를 두어 포기 나눠줬다. 시원하고 칼칼한 배추김치의 맛이 입맛에 맞아, 뜨끈한 컵라면과 먹으면 결리고 욱신거리는 등의 통증도 사라질 것만 같다.
전기 포트에 물을 올린다. 금세 뜨거워진 물을 컵라면 용기에 붓는다. 물이 끓는데 1분. 컵라면의 면이 익는데 3분. 먹는데 10분. 뒷정리하는데, 1분. 대략 15분 만에 식사가 끝났다. 책상에 앉아 가벼운 마음으로 작업하려는데, 누군가 안부를 묻는다. 밥은 먹었니? 컵라면을 먹었다 답한다. 이어지는 짧은 침묵. 독거노인도 아니고, 기초생활수급자도 아니면서 왜 자꾸 그런 걸 먹냐는 힐난 아닌 힐난. 노트북에 띄워진 채팅 창을 보고, 나는 입을 앙다문다. 걱정인지, 힐난인지 알 수 없는 그 말에 담긴 비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기초생활수급자와 독거노인의 상징이 컵라면인가. 기초생활수급자도 독거노인도 균형 잡힌 식사가 가능한 사회이면 좋을 텐데. 지나치게 감성적인 내가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러게,라고 가볍게 웃으며 넘기면 될 걸, 나는 뾰족한 단어를 사용해 비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긴말을 덧붙인다.
입이 쓰다. 커피를 마실까, 홍차를 마실까 고민하다 작두콩차 티백을 꺼낸다. 태풍이 오려는지 창을 열어둔 거실 사이로 들리는 바람 소리가 심상치 않다. 뉴스에서 본 수해 현장이 눈에 밟힌다. 진흙이 맹렬하게 덮친 삶의 터전에서 비닐에 쌓인 컵라면은 살아남았을까. 습기를 머금은 서늘하고 축축한 바람이 피부를 감싼다. 부디 오늘 저녁은 큰 피해 없기를, 흐린 하늘을 덧없이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