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강원도의 어느 숲속에 있었다.
내가 사는 집의 거실에선 베란다의 창으로 산이 보인다. 나는 산의 변화를 통해 계절의 움직임을 느낀다. 절기를 따지기 시작한 것도 이 집에 살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미칠 것 같은 더위도, 추위도, 이렇게 지구가 무너지는 건가 싶은 날들 속에서도, 산은 24절기에 맞춰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각 계절의 색을 보여주었다. 겨울엔 앙상한 나뭇가지 위로 눈이 하얗게 쌓이면 순백의 세상이 아름다웠고, 봄에는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과정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즈음엔 싱그러웠던 초록빛의 끄트머리부터 조금씩 알록달록 물드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즐거웠다.
그날도 그랬다. 거실 베란다에 서서 단풍이 곱게 든 산을 바라보다, 충동적으로 강원도 숲속의 숙소를 예약했다. 강원도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 스치는 울긋불긋한 산의 모습에 감탄하며 왜 어르신들이 가을이 되면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전국의 산을 만나러 떠나는지 알 것 같았다. 계절의 변화는 시간이 주는 선물이다. 번쩍이는 화려함은 아니더라도, 마음에 스며드는 아름다움이 자연에 있다. 그걸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로도 감사하게 되는 나이가 있다. 조금 더 느긋하게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되는, 어떤 나이.
가족과 함께 강원도 어느 숲속의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읍내 마트에서 산 고기를 꺼내 숯에 불을 피워 저녁을 해 먹었다. 해가 지고 나면 숲은 서늘해진다. 아이들을 따뜻한 물로 씻기고, 온기가 도는 방에 모여 모두 잠든 모습을 보며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맥주 한 캔을 딴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통해 바깥 세상의 소식을 접했다.
이십 대의 나는 즉흥적이고 지금보다 힘이 넘쳤으며 자유로웠다. 그때는 세상이 재밌으면서도 동시에 이상하고 짜증 나기도 하여, 어떤 날에는 미친 사람처럼 바깥으로 에너지를 내뿜어내고 싶었다. 기성세대가 만든 틀 안에서 쌓인 혼합된 이름 모를 감정을 어디론가 분출하며 해소해야 했다.
나는 혼자서도 춤추는 걸 좋아하여 클럽에 갔고, 여러 사람과 어울리며 코가 삐뚤어지도록 취하기도 했다. 1차, 2차, 3차 자리를 옮겨가며 밤을 지새우고 해가 떠야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나누던 날이, 내게도 있었다.
뉴스에서 나온 장소는 어딘지 알고 있는 곳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걸었던 거리였기에, 사람들 사이에서 걸었던 적이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
어느 나라의 축제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나이대에 맞는 즐거움이 있고, 사람마다 즐거움의 취향이 다를 수 있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함께 웃고 즐기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일상의 권리가 죄가 될 수는 없다.
무슨 말을 더 해야 할까.
일하지 않는, 무능한 사람이 관직에 있어 일어난 비극 앞에 당신 탓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개인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일 앞에서
애끓는 감정을 모조리 토해내며 이 시간을 함께 버틸 수 있기를
부디 깊게 내려앉은 어둠이 당신의 어깨를 오래 짓누르지 않기를
살아남은 자에게 굴레를 뒤집어씌우는 미련한 일은 발생하지 않기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