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음 깊은 곳에서 함께 사는 사람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은숙이 이모를 만난 기억은 흐릿하다. 은숙이 이모는 남쪽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살았고, 나는 서울에 살았으니, 몇 번 안 본 사이였을 거다. 몇 살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철부지 어린이였던 어느 날에 은숙이 이모가 우리 집에 잠깐 머무른 적이 있다.
내가 어릴 때 살던 집은 한옥이었다. 열 살 이전까지 그 한옥에서 살았는데, 직사각형 모양의 한옥에는 안채와 사랑방이 있고, 마당 가운데에 크고 예쁜 목련 나무가, 나무 아래에는 수돗가가 있었다. 봄이 오면 뽀얗게 활짝 피는 목련이 예쁘던 집이었다. 목련은 순백색으로 화려하게 피었다가, 아름다움을 만끽하기도 전에 금방 꽃잎이 떨어졌다. 새하얗게 아름답던 목련은 떨어지고 나면 금방 짓무르고 질척이는 갈색의 천덕꾸러기가 되고 만다. 예쁘다고 좋아할 때는 언제고, 마당에 수북이 떨어진 목련잎을 밟지 않으려고 피해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목련 나무 아래에서 쪼개지는 햇볕을 쬐고 있으면 행복했던 기억도, 떨어진 목련잎을 몇 장 주워 마당에 앉아 돌로 콩콩 찧으며 혼자 소꿉놀이를 했던 즐거운 기억 또한 함께 남아있다.
어느 날 은숙이 이모가 우리 집에 왔다. 이모와 함께 지내는 동안 나는 은숙이 이모가 싫었다. 갑자기 찾아온 낯선 사람인 데다, 어린 내 눈엔 은숙이 이모는 못생긴 사람이어서 괜히 심술이 났다. 은숙이 이모의 얼굴에는 뭐가 났던 건지 울퉁불퉁 곰보처럼 생겼던 것 같다. 나중에 엄마한테 슬쩍 지나가는 말로 듣기로는 은숙이 이모는 누군가와 헤어지고 많이 힘들어했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 이런저런 약을 먹었고, 그 약의 부작용으로 얼굴이 그렇게 되었다고. 지금 생각하면 곰보가 아니라 뾰루지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나는 살면서 엄마에게 은숙이 이모 일을 묻지 않았으니까. 왠지 모르게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입에 올리기 어려운 그런 일들. 내겐 은숙이 이모가 그랬다.
은숙이 이모는 엄마가 집을 비우면 엄마 대신 어린 나를 돌봐주었다. 한옥에서는 날이 춥지 않은 날엔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서 빨간 대야에 물을 담아 머리를 감았다. 그날은 은숙이 이모가 머리를 감겨주었다. 초록색 샴푸로 거품을 내어 머리를 감고, 빨간 대야에 물을 받아 머리를 헹구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인데, 나는 은숙이 이모에게 성질을 내었다.
- 이모는 왜 대야에 받은 물을 한 번만 쓰고 버려?!
엄마는 헹굼물을 두 번 썼다. 결혼을 안 한 이모는 물의 절약보다 어린 조카의 머리를 깨끗하게 감기려고 헹굼물을 한 번만 쓰고 버린 건데, 어린아이 눈에는 엄마와 다른 방식으로 머리를 감기는, 못생긴 이모가 싫었나 보다. 여하튼 나는 그렇게 앙칼지게 쏘아붙였는데, 은숙이 이모는 말없이 빙긋 웃고 말았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은숙이 이모와의 기억, 전부다.
그리고 은숙이 이모는 서울을 떠나 다시 일상으로, 시골로 돌아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마을의 저수지에 스스로 몸을 던져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은숙이 이모는 제가 어릴 적에 만나 또렷한 기억도 없고, 생김새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십 대에 세상에서 사라진 이은숙을… 저는 여전히 기억합니다. 은숙이 이모도 제가 지금까지 이모를 기억할 줄은 몰랐을 거예요. 이제는 제가 은숙이 이모보다 더 나이가 많아졌지만, 은숙이 이모는 여전히 어린 저와 함께 한옥의 마당에서 머리를 감고 있고, 말갛게 웃습니다.
그녀가 조금 더 오래 삶의 끈을 잡고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깟 사랑이 뭐라고 욕하면서, 헹굼물 따위로 앙칼지게 소리치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사랑의 쓴맛도 단맛도 아는 지금의 나와 함께 밤을 지새우며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았을 텐데…. 은숙이 이모는 무엇이 싫어서, 무엇이 괴로워, 차가운 물에 몸을 던졌을까요.
저는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머리를 감다가도 불현듯 은숙이 이모를 떠올립니다. 마음에, 뇌리에 기억되어 사라지지 않는 건, 몸 어딘가에 박혀있는 가시처럼 때로는 불편할 수도 있지만, 저는 그녀가 밉지도 싫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은숙이 이모를 글로 세상에 꺼내 봅니다.
목련 같았던 그녀가 저수지 앞에서 너무 슬프지 않았기를, 저수지 물이 너무 차갑지 않았기를, 부디 평안한 곳에서 더는 아프지 않기를 바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