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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주영 Nov 17. 2022

괜찮아, 어떤 방향으로 가도

 어쩌다 보니 학교에 나가 학생들을 만나며 정기적인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내가 하는 봉사활동은 멘토로서 2~3회에 걸친 프로젝트로 학생들을 만나기도 하고, 전일제 봉사활동으로 만나기도 한다.   

 멘토로서 함께 하는 프로젝트는 학생들과 봉사가 필요한 분야 및 주제를 발굴하고, 학생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해당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수립하고 수행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봉사활동이다. 다양한 사회 이슈를 다루는 전일제 봉사활동은 때마다 활동 주제가 달라진다.

 

 며칠 전엔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어느 여고에서 ‘유기견을 위한 목도리 만들기’ 전일제 봉사활동을 하고 왔다. 대한민국 인구의 1/4이 반려동물을 키울 정도로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사람은 점점 증가하고 있지만, 그만큼 유기되는 동물도 많다고 한다. 나는 이번 봉사활동을 하기 전까지는 반려견에게 입히는 옷은 귀여움을 돋보이게 하는 액세서리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동물도 추위를 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대부분의 유기견 센터는 여유롭지 않은 재정 상태로 인해 견사 상태가 좋지 않은 데다, 가정에서 자랐던 강아지는 바깥에서 겨울을 나기 어렵다고 한다. 이번 봉사활동은 유기견이 더욱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학생들이 직접 목도리를 만들며, 늘어나는 유기동물에 대한 이슈를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봉사활동은 널리 알려야 미래의 자원봉사자가 새로 탄생하기에, 봉사활동을 하면 사진이 꽤 찍힌다. 사진 찍히는 것도, 어딘가에 내 사진이 실리는 것도 싫었던 나로서는 봉사활동 할 때마다 기자단이 붙거나 틈틈이 들이대는 카메라가 불편했는데, 어느새 체념이 뿌려진 적응이 되었다고 할까. 이제는 사진이 이상하게 찍히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 오늘도 지난 봉사활동의 현장 사진을 받았다. 사진 속에는 급훈이 ‘성실’인 교실에서 내가 교탁 앞에 서 있고, 학생들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학창 시절의 나는 학교의 규칙을 깨는, 그러니까 눈에 띄는 학생이어서, 학교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교탁 앞에서 학생들을 마주하고 있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올 초여름엔 ‘장마철에 급증하는 초등학생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우산 만들기’를 했다. 안전우산이란, 투명한 우산에 반사 스티커를 붙인 우산을 말한다. 투명한 우산에 반사 스티커를 붙여주면, 투명한 우산이 어린이의 시야를 가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운전자가 반사되는 빛을 보고 키가 작은 어린이를 보지 못하는 불상사를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완성된 안전우산은 고등학교 인근 초등학교에 보낼 예정이었다. 학생들의 후배이자 누군가의 동생일 초등학생들의 빗길 안전을 바라며 봉사활동에 임하던 학생들의 밝은 모습이 기특하게 느껴지던 순간, 어떤 학생이 남는 빗물 모양 스티커로 하트를 만들어 내게 내밀었다. 바로 이런 순간이 자원봉사자를 사로잡는 봉사활동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쌓인 피로를 단숨에 날려주는, 봉사활동을 꾸준히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천연 비타민!


 그렇게 마음씨 고운 친구들을 ‘유기견 목도리 만들기’ 봉사활동을 하며 다시 만났다. 여러 학교에 다니며 많은 학생을 만나다 보니, 교실에 들어가면서도 전에 들어왔던 반인지, 긴가민가한데, 교탁에 서서 내 소개를 하니, 나를 알아보는 학생이 있었다. 그제야 확신이 들고, 학생들 얼굴을 찬찬히 보니 떠오르는 기억들. 나는 아이들에게 그간 잘 지냈는지 반갑게 안부를 묻고, 즐겁게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바느질은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작업이기에, 교실은 2시간 동안 시끌벅적했다. 바느질에 서툰 나는 바늘에 찔려가며 아이들을 도왔다. 눈 깜짝할 새에 뚝딱 만든 친구가 있는가 하면, 수업이 끝날 때까지 완성하지 못한 친구도, 삐뚤게 만들어 매듭을 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학생도 있었다. 바느질을 빨리 끝낸 학생에게는 바느질에 서툰 친구들을 도와주길 부탁했고, 바느질이 서툰 친구에겐 함께 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말했다. 나는 학생들이 완성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길 바랐다. 우리가 하는 건 단순한 만들기가 아니라, 누군가에겐 따스한 도움이 될 수 있는 봉사활동이니까.

          

“선생님, 제가 한 바느질이 너무 이상해요.”     

“바느질이 삐뚤삐뚤해도 괜찮아. 사실 나도 바느질 못 하는데, 완성해보니까 또 멋지더라. 우리 조금만 참고 끝까지 해보자.”  


“저는… 바느질에 소질이 없나 봐요. 여기 잘못 꿰맸어요. 어떻게 하죠?”     

“충분히 잘했어. 여기 이 부분만 조금 뜯어서 다시 꿰매보자. 조금 돌아갈 수 있어. 못하는 게 아니야.”


“선생님……. 완성, 못하겠어요.”     

“완성하지 못해도 괜찮아. 오늘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열심히 했잖아. 잘했어.”


 어쩌면 학창 시절에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학생들에게 건네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무엇이 정답인지도 모르면서, 어른들의 말만 믿고 앞으로 달려나가야 했던 학창 시절이 답답했으므로, 돌고 돌아 이렇게 학교에서 와서 학생들을 만나는 걸까.


 다시 만나 정말 반가웠다는 말로 수업을 마무리하며 하트 스티커에 대한 답례로 학급 문고에 내 책을 한 권 끼워두었다. 여름 내내 고민하며 썼던, 여름의 잔열이 실린 내 글이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 어느 날 공부하다 지친 누군가에겐 따뜻한 코코아 같은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그리고 아이들 얼굴을 한 번씩 더 눈에 담았다. 이번엔 어쩐지 조금 더 오래, 또렷하게 기억하고 싶었다. 언젠가, 어디선가, 다시 좋은 모습으로 또 만날 수 있겠지. 그날 학교를 나서는 내 발걸음은 조금 더 경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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