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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주영 Dec 22. 2022

토마스의 집

 지난주엔 한강 플로깅 취재로 인연이 닿았던 서울시자원봉사센터 차장님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영등포에 갔다. 버려지는 우산 원단을 기부받아, 깨끗하게 세척하고 가공해 앞치마로 만들어 무료급식소 ‘토마스의 집’에 배식자원봉사용 앞치마로 기부한다고 하여, 취재하기로 했다.


 영등포에 있는 ‘토마스의 집’은 1992년부터 쪽방촌 어르신과 저소득층 이웃에게 식사와 간식을 제공하고 있는 곳이다. 무료로 시작하여 현재는 200원을 받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평균 4백 명의 사람들이 식사했다는 토마스의 집은 예상했던 것보다 공간이 협소했다. 이렇게 작은 공간에서 30년 동안 매일 수백 명의 한 끼를 책임졌다니… 놀라웠다.


 나는 우선 관계자를 만나 간단한 질문과 함께 폐우산으로 만든 앞치마를 확인하고, 앞치마 전달식 등 현장 스케치를 끝냈다. 토마스의 집은 11시부터 배식을 시작한다. 봉사자들은 아침 일찍부터 그날의 식사 준비를 하고 10시 30분경 이른 점심 식사를 한다. 이날의 메뉴는 인삼과 고기가 듬뿍 들어간 인삼 갈비탕과 제육볶음, 미역 줄기 볶음과 소시지, 배추김치였고, 식사를 마친 분들께 드릴 간식으로는 대봉시와 라면, 크림빵, 음료가 준비되었다. 나도 봉사자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무료급식소라 재료가 넉넉하긴 힘들 것이라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토마스의 집은 음식 인심이 후했다. 인삼 갈비탕엔 인삼을 얼마나 넣었던지, 국을 한 숟가락 뜨자마자 진하게 우려낸 한약 느낌에 당황했다. 하지만 한파주의보도 발령되고 매서운 추위가 있는 이런 날엔 고기와 인삼이 듬뿍 들어간 뜨끈한 갈비탕 한 그릇이 어르신들께는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담긴 음식을 남길 수 없다. 어린이 입맛인 나는 갈비탕이 한약처럼 쓰게 느껴졌지만, 눈을 질끈 감고 인삼까지 꼭꼭 씹어 삼켰다.


 식사도 얻어먹었겠다, 온 김에 우산을 새활용한 앞치마의 성능 테스트도 할 겸 배식 봉사를 하기로 했다. 나는 국 배식에 지원했다. 배식 봉사는 처음이었다. 무턱대고 국자를 들었지만, 내가 나서자 정말 하겠냐고 묻던 팀장님의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이날 밤, 허리에 파스를 붙였다…)


 어르신들은 11시가 되기 전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다. 날이 추워도 미리 줄 서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드디어 급식소의 문이 열렸다. 나는 국자에 적정량의 국을 퍼서 식판에 담고 소시지 한 개를 식판에 살포시 올리면 되는 간단하지만, 신속함을 요하는 일을 맡았다. 나는 쉴 새 없이 국을 퍼담고 소시지를 한 개씩 담았다. 고개를 들 틈도 없었다. 기계처럼 움직였다. 팔과 허리가 살짝 뻐근해지던 순간 고개를 들어 시간을 확인하자, 겨우 30분 지나있어 당황했다. 밖에는 여전히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나는 과연 오늘 이 일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국자를 든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무너지는 체력으로 눈앞이 까마득해질 것 같은 순간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밝은 기운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토마스의 집에는 평균 십 년 이상 봉사한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밝고 쾌활한 동시에 전혀 지치는 기색 없이 즐겁게 봉사했다. 그들의 의연함이 아니었다면, 나는 일찌감치 앓는 소리를 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두 시간 동안 300개가 넘는 식판에 국을 무사히 담았고, 비록 팔과 허리는 뻐근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곤함보다는 뿌듯함을 더 느꼈다.


 그러나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현장에 가기 전에 메일로 받은 자료를 살펴보며 ‘쪽방촌’, ‘저소득층’ 등 몇 가지 단어를 마주하고 마음이 움찔했다. 쪽방촌에 사는 사람은 만나본 적이 없었다. 무료급식소는 뉴스에서만 접하던 곳이었으며, 글로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만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더럽진 않을까. 노숙자를 만나면 냄새가 나진 않을까. 혹시 예의 없는 사람을 마주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그런 상황을 맞닥뜨리면 싫을 것 같은데 어쩌지?’


 내 안의 머뭇거림은 무엇으로부터 출발한 걸까?


 편견을 안고 실제를 마주한 결론을 짧게 말하자면, 국을 퍼담느라 정신없어서 뭘 확인하고 느낄 겨를은 없었다. 다만 내 예상과는 혹은 상상과는 다르게 토마스의 집에는 예의 바르고 단정한 차림의 사람들로 가득했고 또한 식사 시간 내내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무엇보다 8년 차 봉사자분께서 식사하는 어르신께 건네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어르신, 이거 지금 사드시는 거예요. 우리가 그냥 주는 게 아니라, 어르신이 사드시는 거니까, 마음껏 배부르게 드세요.”


 빈부 차에 파고든 내 안의 얄팍한 편견과 누군가를 돕는다는 나 자신의 행위에 도취하였을 때, 누군가는 타인에 대한 진심을 담은 이해와 배려를 하고 있었다. 단순히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한 끼 식사의 소중함과 더불어 내 돈을 내고 음식을 사서 먹는 행위가 주는 떳떳함에 대해서, 나는 그 이전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줄이 점차 줄어들고 배식이 끝났다. 봉사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잠깐 만난 사이지만, 친근감이 생겨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왜 봉사를 시작하게 됐는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당신이 누구인지 궁금해,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그런 호기심이라도 남겨놔야, 언젠가 다시 영등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방문에는 머뭇거림 없이 조금 더 힘찬 걸음으로 이곳을 찾을 수 있게 되길 바라며, 나는 토마스의 집의 문을 열고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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