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거침없이 표현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나면 갑자기 쓸쓸해진다. 크리스마스 한 달 전부터 집안을 알록달록하게 꾸며두었던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치우고, 특별한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설렘으로 가득했던 시간이 무채색으로 변하고 나면 마음이 적적해진다. 비워진 공간은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연말이 다가올수록 한 해를 정리하는 차분한 분위기와 함께 나태해지면 안 될 것 같은 불안함이 엄습한다. 올해는 잘 살았는지 뒤돌아본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대단하지 않은 결과물을 바라보고 있으니 참담했다. 세상엔 잘난 사람이 너무 많았고, 나는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잣대에서 한참 떨어진 별 볼 것 없는 사람이었다.
평소와 똑같은 하루를 보냈지만,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기름처럼 사람들 사이로 온전히 섞여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라 그랬을까, 남의 떡이 커 보인 걸까. 집에 돌아오는 길엔 어깨가 무거웠다. 이대로 시시한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지만, 내가 무언가 할 수 있을까. 그런 능력이 내게 있을까. 나는 두려웠다.
무엇도 장담할 수 없는 앞날을 두고 피어난 불안함과 질척이는 진흙 속으로 짓누르는 듯한 우울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저녁 식사를 마친 아들을 바라보다 눈물이 나왔다. 이전까지 없던 일이었다. 나는 눈물을 숨기지 않고, 아이를 똑바로 바라보며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없는 것들과 더 훌륭한 엄마가 아니어서 미안한 감정을 털어놓았다.
평소 나는 아이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는 엄마도, 애정을 담뿍 쏟아붓는 살뜰한 엄마가 아니었다. 학교 교문 앞에서 아이의 하교를 기다려본 적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고, 가끔 가더라도 아이의 가방을 들어주기는커녕 자기의 물건은 직접 책임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에 도움을 요청하기 전까진 직접 메고 오게 했다. 다른 엄마들이 매일 학교 교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인자한 표정으로 아이 손을 잡고 아이의 가방을 들어주던 것을 보며 한편으로는 미안했지만, 애써 괜찮다고 되뇌었다.
학원은 하교를 도와주는 셔틀이 있는 예체능 학원이 우선이었다. 그 외엔 학교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교육을 제공하는 ‘방과 후 수업’으로 채웠다. 남들은 영어유치원부터 시작하여 커리큘럼이 다채로운 학원에 다닐 때 우리 집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하는 저렴한 영어 수업을 듣고, 집에서 책만 읽었다. 남들 다 보내는 비싼 영어학원에 보내지 못하면, 엄마표 영어라도 해줘야 하는데, 내가 집에서 영어책을 꾸준히 읽어주지도 못하여, 지금 우리 집 어린이들은 영어를 잘 못 한다.
게으르고 나태한 엄마인 내가 해준 것이라곤 어릴 적부터 스마트폰이나 유튜브와 거리가 먼 환경을 조성한 것과 한가한 시간엔 EBS의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거나,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한 것밖에 없다. 다행히 아이들은 도서관 나들이를 즐기고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어린이로 성장했지만… 과연 책이 아이의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애초에 살가운 엄마가 아니었던 나는 아이의 스케줄에 내 스케줄을 끼워 맞추고 싶은 생각이 크게 없었다. 게다가 내가 버는 돈은 푼돈이라, 남편이 버는 돈으로 아이 두 명을 모두 좋은 학원에 보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조금 더 솔직하게 드러내자면, 내가 누리고 싶은 현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더 컸다. 내 욕망을 참으면서까지 무리해서 아이의 사교육에 과한 지출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엄마인 동시에 전주영으로 사는 삶과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자랄수록 엄마라는 역할이 주는 무게도 점차 무거워졌다. 남들은 영어유치원부터 시작해서 대치동까지 라이드 해서 아이를 가르치는데,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내 아이는 잘 크고 있는 걸까? 그간 내 꿈을 찾아, 내 앞가림하기도 바빠, 다른 엄마들처럼 잘 챙겨주지 못했던 현실이 무서워졌다. 큰돈을 버는 사람이 아님에도, 돈이 주는 편안함을 아는 나이가 되어서 그럴까, 아이의 알 수 없는 미래 앞에 나타나는 불안함이 부모로의 책임감을 들쑤셨다.
만 열 살이 지난 아이가 나의 주절거림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아이가 다가와 나를 안아주고 등을 토닥여주었을 때, 아이 손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에 질척이던 우울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나는 특별한 재주도 없고, 돈도 많이 못 벌며, 남들과 다를 것 없는 속물적인 시시한 사람이다. 그런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년에는 조금 더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남과 비교하지 않으며, 이웃에게 베풀 여유가 있음에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나간 나의 삶은 어찌할 도리가 없지만, 내가 원하는 삶, 나의 모습,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지는 내게 바꿀 힘이 아직 있으니, 내가 부디 그 사실을 잊지 않기를, 알 수 없는 불안함에 휘둘려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나의 아이들에게 뛰어난 환경과 부족함 없는 재력을 물려주진 못해도… 적어도 필요한 순간엔 위로할 수 있는 사람으로 곁에 오래 있고 싶은 마음. 그런 어른, 그런 부모로 함께 성장할 수 있기를. 한해를 무사히 지냈음에 감사하고, 내년에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길 바라면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 본다.
올 한 해 제 브런치를 들여다봐 주신 독자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건강하시고, 무탈한 새해 맞이하시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