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락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의 회사는 젊은 사원이 많아 펍을 대관하여 연말 회식을 했다고 한다. 펍에서 흐르는 락을 들으며 90년대 생이 오아시스 팬이라고 말해 놀란 그는 20대에 ‘My Chemical Romance’라는 그룹의 노래를 들었다고 했다. 나는 20대에 무엇을 좋아했는지 생각해보니,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에서 뮤즈의 공연을 보며 신나게 놀았던 기억이 있긴 하지만, 막상 20대를 떠올리면 설렘이나 흥분 등의 감정은 생각나지 않았다.
나의 20대는 너무 짧았다. 나는 외동딸로 가족이라곤 엄마와 아빠뿐이었는데, 내가 이십 대 초반이었던 어느 봄날, 엄마와 아빠는 한 달 간격으로 암 진단을 받았다. 엄마가 먼저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엄마는 초기 유방암이어서 가슴 한쪽을 도려내고 항암 치료를 하면 5년 생존율이 높다고 했다. 아빠는 어느 날 감기는 아닌데 목소리만 쉬었다. 동네 이비인후과에서 소견서를 받고 별일 있겠냐는 생각으로 가볍게 들린 대형 병원에서 아빠는 폐암 진단을 받았다. 소세포폐암이었다. 소세포폐암은 수술할 수 없는 폐암이었고, 항암 치료를 하지 않으면 생존율이 3개월을 넘기기 어렵다고 했다. 그때 아빠 나이가 마흔아홉이었다. 투병 생활을 어떻게 지냈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 세 명은 집에서 지내는 날보다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지내는 날이 많았다. 아빠를 태운 휠체어를 끌고 통유리 사이로 햇빛이 반짝이는 병원 1층의 로비를 거닐고, 눈이 내리는 밤 간이침대에서 일어나 병실의 창을 통해 적막이 내려앉은 어둠을 혼자 곱씹었다. 그렇게 나의 20대 절반은 병원에서, 그리고 남은 절반은 길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와 계획에 없던 빠른 결혼과 임신으로 아이를 낳고 기르는데 보냈다. 20대의 나는 내 인생이 내 뜻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님을 느꼈다.
나는 전주영이자 엄마, 아빠의 딸로 태어나 몇 가지 역할이 더 생겼다. 누군가의 아내가 되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여러 역할 중 가장 자신 없는 역할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코 ‘엄마’라는 역할을 꼽겠다. 이 ‘엄마’라는 역할은 손이 가는 일은 많은 데 비해 결과는 또렷하게 보이지 않아 매 순간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 우선 고백부터 먼저 하자면, 나는 공부에 뛰어난 재능이 없어 겨우 중간만 유지해왔다. 학원도 많이 다녀본 적이 없는 나는, 어릴 때는 노는 게 최고라 생각했기에 아이를 낳고는 숲으로, 바다로 여행을 자주 다녔다.
내가 낳은 아이들은 모래와 흙, 나뭇잎, 바다를 좋아했다. 그리고 엄마가 되어 아이를 키우는 전주영은 아이를 키우면서도 아이들이 많은 공간을 싫어했다. 버릇없는 아이를 무척 싫어하는 어른인 나는 어린이들의 발랄함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발랄함과 무례함 사이를 오가는 어린이는 참을 수 있지만, 그런 어린이를 방관하는 어른을 마주하는 것은 곤욕스러워, 키즈카페는커녕 동네 놀이터도 자주 가지 않는다.
이런 고약한 성미 탓에 교통과 문화의 요지에 살면서도, 어린이 뮤지컬이나 미술관, 박물관 등 어린이들을 위한 문화장소는 피했다. 사람이 많은 공간은 번잡스러웠고, 아이를 통제해야 했으며, 그에 따른 여러 가지 피로도를 생각하면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이에게도 유희는 필요하니 대신 나는 인적이 드문 숲이나 바닷가를 찾아다녔다. 다행히 어린이들은 특별한 장난감이 없이도 흙과 돌멩이, 나뭇가지와 모래를 가지고도 온종일 잘 놀았다.
아까 고백했듯 나는 공부에 뛰어난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지, 자녀 교육에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다. 내 생각으론 아이가 부모의 힘을 빌려 어느 정도 일정 수준을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공부도 자신의 의지가 있어야 잘할 수 있는 분야기에 부모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가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인생의 정답을 몰랐다. 아이의 인생을 두고 모든 선택을 내가 해줄 수도 없고, 아이의 취향도 나와는 다를 테니, 책이나 다른 매개체를 통해 타인의 인생이나 새로운 세계를 엿보며 자신이 바라는 인생을 꿈꾸고 참고하여 걸어 나가야, 아이도 후회를 덜 할 것 같았다.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까지는 책을 마주하는 것이 익숙하도록 책 읽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경우 너무 뒤처지지 않게 중간 정도 수준만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아이가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원하는 순간에 지원을 해주면 되겠지 싶었다.
물론 영어 유치원부터 보내고, 남들 하는 학원 다 보내고 싶었던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다. 남들과 다른 노선을 걷는다는 건 쉽지 않아서, 남편과 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누고 우리의 교육 가치관을 확인함으로써 불안함을 눌렀다. 하지만 두 어린이가 모두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큰아이는 고학년이 되고 나니 불안함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우선 내가 사는 지역은 대대로 유복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인 데다, 교육열도 뛰어나서, 양질의 교육을 받고 자라는 학생이 매우 많다. 우리 집 어린이를 제외하고는 다들 학원을 몇 개씩 다니고 유창한 영어 실력을 지닌 것만 같다. 남들은 방학을 맞이하여 특강이다, 뭐다 할 때 아침부터 거실에 남매가 모여 앉아 책 읽으며 깔깔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엄마인 나는 불안함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과연 나는 엄마로서 어린이들을 잘 양육하고 있는가. 어린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엄마로서의 역할은 마치 ‘프린세스 메이커’ 같은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나의 사소한 선택에 의해 어린이들의 미래가 변한다는 막중한 부담감을 쥐여주어 많은 괴로움을 준다. 매일매일 그런다. 아이들이 커서 밥은 잘 벌어 먹고살 수 있어야 할 텐데… 공부를 잘해야 먹고 살기가 편할 텐데 이걸 어째야 하나. 그렇다고 교육만 마음을 어지럽히는 건 아니다. 부덕한 인간인 나는 가끔 뾰족한 말로 어린이들에게 상처가 될 말을 내던지곤 하는데, 하고 나서 곧 후회한다. 그걸 십 년이 넘도록 반복하고 있다. 나의 부족한 면으로 어린이들의 마음에 준 상처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미 생긴 마음의 흉터엔 어떻게, 어떤 연고를 발라 줘야 하나. 내가 낳은 아이들은 훌륭한 인성을 갖춘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이 모든 고민은 내가 내 앞가림도 잘 못 하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나도 내 인생이 불안한데, 어린이들의 앞날까지 내 손에 잡혀있다는 생각을 하면 정말이지 눈물이 났다.
일기는 대충 쓰고 거실에서 책 읽는 어린이들과 진도가 도통 나가지 않는 엄마표 영어 커리큘럼을 두고 머리카락을 쥐어뜯다가, 나는 탈출을 결심했다. 이렇게 머리가 복잡한 날이면 나는 현실을 떠나 미지의 세계로 도망친다. 이수역 7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보이는 건물 12층에 있는 아트나인은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극장이다. 그곳은 내게 내가 몰랐던, 다양한 세계를 엿보게 해준다.
그날 보았던 영화는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였다. 포스터부터 예사롭지 않은 이 영화는 작년에 개봉했을 때 보려고 했다가 바쁜 일정으로 계속 차일피일 미루던 중 먼저 관람한 남편이 기대보다 별로였다며 평점을 8점을 매기길래, 극장에서 안 보고 넘어갈 뻔한 영화다. 나는 집에선 좀처럼 영화를 안 보는 편인 사람이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자칫하면 영원히 깊은 진흙 속에 묻힐 뻔했다. 나는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면서 미덥지 않은 평을 남겼던 남편을 응징하리라 마음먹었다.
‘양자경의 더 모든 날 모든 순간’은 10분가량 메이킹 필름이 덧붙여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확장판이다. 이 영화는 상업영화는 아니면서, 확장판을 만들고 꽤 오랜 시간 상영을 하고 있어, 영화의 매력이 뭘까 궁금했는데, 이건 꼭, 확장판으로 보길 추천한다. 새해를 시작하기에 아주 멋진 영화였다. 이런저런 컨텐츠를 많이 보는 남편은 내용이 살짝 식상하다고 했지만,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감동에는 뻔하기에 진하게 밀려오는 것도 있다고 말하고 싶다.
영화는 어떤 면에서 바라보면 정신없고 너무 마니아틱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요소를 갖추긴 했지만,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했고, 철학적이었으며, 인류가 지녀야 할 가장 아름다운 가치인 사랑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주었기에 나는 매우 좋았다. 무엇보다 영화는 지난날의 나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하였고, 예술의 미덕은 인간을 사유하게 만드는 것이 최고라 생각하기에, 내게는 더없이 훌륭한 영화였다.
한창 일을 하여 경력을 탄탄하게 다질 20대에 아이를 낳아 키운 나는, 내 앞가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혼자서야 어떻게든 돈을 벌어 밥을 먹고 살 수 있겠지만, 아이가 딸려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남편의 수입이 아닌 온전한 내 능력으로 아이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가 질문을 던져보면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집안의 가장인 남편의 부재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아찔해지고 두려우며 고통스럽다.
반면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내가 남편을 만나지 않고, 아이를 낳는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나는 더 좋은 삶을 누리고 있을까. 이십 대와 삼십 대를 관통하며 수없이 내게 던진 질문이었다.
도망칠 수 없는 환경과 자유롭게 세상을 누리고 싶은 나의 발목을 잡는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선택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고통스러웠던 날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그랬던 시간이 있었기에, 그렇게 고통 속에서 울부짖었던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매일 최선을 다하진 못해도 무엇인가를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앤 원스’에선 시공간을 뛰어넘으며 다양한 선택을 하고 여러 인생을 엿보는 양자경을 통해 도망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과거와 미래를 수없이 상상하던 나를 이입해볼 수 있었다.
결혼하지 않은 나와, 아이를 낳지 않은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남미로, 더 먼 세계로 훌쩍 떠났더라면, 나는 더 행복했을까?
영화에서 엿본 에블린 왕(양자경)의 여러 삶 중 세탁소를 운영하며 숨 막히도록 세금을 뜯기는 지긋지긋한 일상에 찌든 중년 여성과 유명한 여배우로 보내는 셀러브리티의 삶 중 어떤 것이 더 아름다웠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다만 우리는 어쩌면 대단하지 않은 사람이기에 앞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이 있고, 거절과 실패를 통해 조금 더 단단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소하다고 하찮게 여겼던 것이 언젠가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뛰어난 사람들을 마주할 때마다 내 존재가 쓸모없고 작은 존재로 보일지라도, 휘황찬란한 세상에 흔들리지 말 것이며 지금 현실에 집중하라는 영화의 메시지가, 나는 좋았다.
오늘도 나는 글 쓰다 말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삶을 엿보며 잠깐 부러워하다, 딸이 엘사 인형 등 뒤에 야무지게 묶어놓은 울라프를 발견하곤 웃었다. 아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보면 아이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운데, 일하던 중간에 거실에서 혼자 놀고 있는 딸을 잠깐 업어줘서 그랬을까. 울라프를 등에 업은 엘사의 모습이 귀엽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내가 사는 세상은 화려하진 않지만, 사랑이 녹아있었다.
이번 겨울엔 매일매일 해가 지기 전에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도서관에 가려 한다. 여전히 우리의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남편과 잘 먹고 해맑게 웃는 나의 아들과 딸이 있음에, 무엇보다 글을 써서 돈을 버는 나의 소소한 일상에 감사하며…….
덧붙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인상 깊었던 대사를 하나 기록해 둔다.
새해를 맞이한 당신에게 사랑을 전하며, 당신의 내일이 따뜻하기를.
The only thing I do know is that we have to be kind.
Please, be kind.
Especially when we don’t know what’s going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