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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부터 잘하고 싶어
Nov 06. 2020
바닥에 무릎을 딛고 소파에 배를 대고 수십여 대의 자동차를 소파 위에 줄세웠다. 미니카를 수집하며 놀던 어린 나에게 농심 양파링은 최애 과자다. 한 대씩 돌아가며 인사시키고 먹던 양파링도 나눠 먹으면서 자동차랑 대화하고 논다.
한국인들은 소파를 등받이로 쓴단 말이 있던데 나도 어릴 때부터 소파를 만들어진 사용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았던 셈이다. 장난감 자동차 진열대 겸 식탁 겸,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곳으로 사용했달까. 가끔 소파를 본래 용도에 맞게 사용하며 놀 때도 양파링은 나와 함께였다. 세로로 반듯하게 개봉한 양파링을 항상 배위에 얹어두고 먹다 잠들곤 했다. 그리고 몇 년 뒤엔 포카칩이 나왔고, 800원 양파링보다 조금 비싼 950원의 포카칩 어니언 맛은 초등 저학년이던 나의 입맛을 사로잡아 버렸다.
양파링은 애증의 과자다. 너무 좋아했지만, 기름에 튀겨진 과자라 반만 먹어도 속이 느끼했다. 또 양파링은 입에서 씹지 않고 조금 기다리면 타닥타닥 거리며 터지다가 혀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있었는데, 과자 표면이 거칠어서 그랬다. 이 느낌이 신기하고 좋아서 먹었지만, 표면이 거칠던 과자 덕분에 먹고나면 입술이 쪼글쪼글해지고 볼 안쪽이나 잇몸 껍질이 까지곤 했다. 밥 먹기 전에 먹으면 안되는 과자 1순위 였다.
이후로는 포카칩만 주구장창 먹다가 포카칩이 물가를 따라 계속 오르더니 어느 순간엔 1500원이 되었다. 내 기억으로는 950원, 980원, 1050원, 1150원, 1200원, 1250원, 1500원이 되었던 것 같다. 포카칩의 빅팬이자 자칭 엠베서더라 할 만큼 좋아했지만, 미쳐가는 포카칩 가격에 부담을 느낀 초딩은 저렴하고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도록 다른 과자를 2개씩 사 먹기 시작했다.
지금도 감자로 만든 과자를 좋아한다. 감자를 그대로 튀겨낸 포카칩과 이와 비슷한 종류의 과자들, 그리고 감자를 으깨고 반죽하여 모양을 일정하게 구워낸 프링글스, 감자깡, 오감자 등등. 감자는 신이내린 작물이다.
그렇게 감자 과자를 즐겨 먹으면서 양파링과는 점점 소원해졌는데, 오랜만에 9살짜리 사촌동생 집에 왔더니 양파링이 있어서 바로 먹어봤다. 15년이 더 지난 이전과 달리 요즘 양파링은 입 속에서 타닥거리는 게 없다. 기름기도 덜하고 표면도 매끈하다. 대신 양파 베이컨 맛 시즈닝 가루가 뿌려져있다. 확실히 이전보단 건강한 과자지만 추억의 맛을 따라가진 못한다. 분명 사회흐름과 국민 의식 수준 향상에 따라 바뀐 지금의 양파링이지만 예전보다 못한 건 무슨 의미일까? 오징어 짬뽕, 신라면 등등 농심 제품들은 타사에 비해 실망감이 크다.
양파링. 오랜만에 먹어서 좋았고 옛날 맛과 비교하며 추억에 젖어들게 해주어 고맙다. 비록 맛은 좀 없지만, 9살 동생이 좋아하는 걸 보면 결국 변한건 '나'인가 보다. 초코도 없고 전혀 단맛도 없지만 여전히 애들도 좋아하는 과자라면 농심보단 농심을 느끼는 내 입맛이 달라진 거 겠지.
결국 세상을 보는 건 내 눈이다. 그동안 우리는 감정을 억누르고 이성적인 판단과 그것의 이행을 덕으로 여기왔다. 우주로부터 받은 에너지인 감정을 억제해 온 것이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문제해결의 경우의 수를 찾더라도 감정적으로 안정되지 않으면 이성적 판단은 물론 그 방식까지 제대로 이행할 수 없다.
감정의 안정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최고의 선택을 하려한들, 그건 내가 알고 찾아본 범위 내에서 최고일 뿐이다. 화장실을 가기 전 노오랗던 잿빛 하늘이 나오고 나서는 높고 파랗게 보이듯이 결국 내가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 감정을 통해 편안함을 느끼고 (제대로)감사하는 태도를 체화하면 결국 세상에서 내 선택이 최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