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영어부터 잘하고 싶어 Sep 24. 2020
며칠 전의 일이다.
모처럼 낮에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아버지는 평일이라서 출근하셨고, 엄마는 급한 일이 생겨서 밥만 드시고 얼른 나가셨다. 동생과 나만 남았는데, 동생은 지(?) 먹을 것만 먹고 아무 말도 없이 지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나는 밥을 마저 먹고 나서도 혼자서 한 동안, 다 식은 고기를 조금씩 오물거리며 핸드폰 메모장에 뭘 끄적거리고 있었다. 정신 차려보니 40분이 흘러있었고, 문득 그동안 치우는지 어쩌는지 방 문도 열어보지 않은 동생에게 화가 났다. ‘형제의 난’이 시작될 뻔했다.
내가 반찬통 뚜껑을 모두 닫고, 그릇들을 싱크대에 넣는 소리가 들려서였는지, 아니면 그냥 똥이 마려워서 나왔는데 타이밍이 맞았던 건지 잘 모르겠다. 막 설거지를 하려던 참에 동생이 방문을 열고 아이패드를 한 손에 들은 채, 문 앞에서부터 바지를 내리고 말했다. “내가 치울게 놔 나라~”
(음,,, 말이나 말지 언제 치울 건데? 똥은 한번 싸면 30분 넘게 싸는 놈이,,,) 혼자 생각했다
그냥 불판을 닦고, 반찬을 다 냉장고에 넣고, 식탁을 닦았다. 그리고 설거지를 했다. 참고로 난 평소에 설거지를 잘 안 한다. 엄마가 밖에서 볼일을 보고 들어오신 후에, 집안일을 하기에 많이 힘드실 거라 판단되면 미리 집안일을 조금 해두는 편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가 지나치게 부엌을 엉망으로 해두면 전에 쌓여있던 그릇까지 다 치우는 편이다.
엄마가 부엌이 지저분한 걸 보는 게 힘들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도, 나갈 때 깨끗했던 싱크대가 갔다 와서 또 어질러져 있으면 기분이 정말 안 좋을 것 같다.
설거지를 하면서 “아무리 좋은 일을 하더라도 그냥 그 자체의 행동이 좋아서, 혹은 그 사람이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면 안 하는 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일을 하면서도 "쟤는 왜 안 해?"처럼, '내가 하는 게 곧 맞는 거다'라는 식의 생각을 갖고 하는 건 착한 일이라도 안 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생은 왜 안 치울까?", "들어가면서 이따 치울 때 불러라든가 뭐라고 한마디라도 하면서 들어가면 될 텐데, 왜 그냥 들어갈까?", "당연히 내가 치우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걸까?", "내가 엄마를 위해서(?) 엄마의 일을 좀 덜어드리고자 굳이 놔두라고 한 설거지까지 하는데, 쟤는 왜 아무것도 안 하지?" 이런 생각은 내가 엄마를 위해 하는 행복한 선행의 본질을 더럽히고 있었다. 좋은 일을 하면서도 스트레스받고 있는 나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접고 설거지에 집중했더니 정말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뭔가 꽉꽉 막힌 뇌가 기다란 터널을 걷고 있는데, 마지막 커브를 돌고 나니 보이는 바깥 출구의 빛을 만난 듯, 뇌의 어느 한 부분부터 서서히 밝아지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좋은 일을 하면서 그 선행이 남들도 해야 하는 일로 생각되면 안 된다. 그냥 자신이 좋아서 하는 거고, 그 일로 자신이 행복해지고 다른 사람이 좋아한다면 그걸로 된 거다. 그리고 나도 모른다. 동생이 방에서 과제를 하고 있었는지, 폰을 보며 놀고만 있었는지,, 그냥 쉬었다고 해도, 걔 한텐 쉬어야만 할 이유가 있었을 테니까,,
삼겹살 먹고 나서 많을 걸 깨달았다. 엄마가 돌아오시고 설거지가 되어있는 걸 보고 좋아하셨다. 배도 채우고 마음도 채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