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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윤씨 잡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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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 Dec 05. 2022

새 매거진에 붙임

<윤씨 잡문>


나의 브런치는 <색연필 그림일기>로 시작했습니다. 신변잡기적 글을 쓰고 색연필 그림을 곁들였습니다. 저 좋아서 혼자 재미있게 그리고 썼습니다. 간혹 조회수가 많이 나오는 기분 좋은 경험도 했습니다.

  

브런치 작가가 된 처음엔 글을 먼저 쓰고 내용에 맞는 그림을 따로 그렸습니다. 때때로 그림이 먼저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글은 진즉에 써 놨는데 그에 맞는 그림을 그릴 수 없어서, 혹은 그렸는데 그림이 영 마음에 안 들어서 발행 버튼을 누르지 못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세상일은 언제나 나 좋은 대로 굴러가지는 않습니다. <색연필 그림일기>의 발행이 자꾸 미뤄지면서 부족한 재주를 탓하는 마음은 신발을 잃어버린 채 진흙길을 헤매는 꿈속처럼 괴로웠습니다. 글감을 생각하면서 동시에 그림을 그릴 때는 아주 행운이었지요. 그림을 술술 잘 그려서 어느 글에나 맞는 그림을 그려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그림은 저 좋아 그릴지언정 재주가 미천한 것을요. 그러다 새로운 매거진을 생각해 냈습니다. 이 괴로움은 물론이고 그림을 그려야 글을 올릴 수 있는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 보려는 바람을 품고 <윤씨 잡문>이라는 제목으로 새 묶음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엔 "윤씨 잡문""객쩍은 소리" 두 개를 놓고 고민하다가 가족에게 물었습니다. 투표 결과 윤씨 잡문 쪽으로 기울어졌습니다. '객쩍다'라는 말은 아시다시피 싱거운 말과 행동을 뜻하는데 글 내용과 꼭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여겨졌고 글의 내용이나 형식이 잡문이니 잡문이 낫다 생각되었습니다. 익숙한 형식이기도 하지요.


  "세상을 자세히 보면 할 말이 많아진다. 자기 삶이 자세히 보인다. 그 일상을 구체적으로 쓰면 글이고 그리면 그림이다." (김용택 시인)


맞는 말씀입니다. 일상에 대한 관찰과 가벼운 사색, 그 이상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자기 이야기를 해요. 좋은 일이죠. 자기 이야기만 한다고요. 아...... 그건 좋은 일이 아니네요. 그러면서 나도 내 이야기만 한다. 지겹다. 그렇다고 남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내 이야기를 할 때보다 남 이야기를 할 때 나를 더 많이 들킨다".(김지승, <짐승 일기> 중에서)

 

그렇군요<윤씨잡문>은 또 하나의 다른 일기에 불과할 겁니다. 나의 꼼수이기도 합니다. 잡문이라고 연막을 쳐놓고 좀 편하게 놀아 보자, 하는 심사가 깔려 있으니까요. 잡문의 제약 없는 형식에 기대 결국 내 이야기를 하게 되겠지요. <색연필 그림일기>에서 색연필만 빠진 거잖아, 하는 생각도 들 테구요. 


그래도 몇 가지 바람을 품어 봅니다. 부디 제 능력으로 닿지 않는 멋진 글에 대한 마음을 나 스스로 내려놓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글이 무겁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거운 건 내 몸무게로 충분하니까요. 지나간 시간과 기억이 두려움으로 쌓여 자꾸 나를 가두어 놓고 있습니다. 최근엔 특히 더 남들이 뭐라고 할까, 글쓰기가 두려웠습니다. 갈수록 사람은 어렵고 세상은 두렵습니다. 어려움과 두려움의 크기만큼 이것들을 풀어내고 싶다는 마음도 함께 니다. 

 

글쓰기 선생님들의 공통된 말씀 중 하나가 일단 쓰라고 하더군요. 하여 나도 그저 써 보겠습니다. 선생님들 말씀은 들어야 합니다. 그들은 먼저 나아 간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분들 말씀을 들으면 자다가도 글 하나는 나올 거라고 믿습니다. 


<윤씨 잡문>에 쓰이는 문체는 경어체로 정했습니다. 경어체는 본디 즐겨 쓰던 문체입니다. 알을 깨고 나온 새끼 오리는 처음 본 대상을 엄마 오리로 인지한다지요. 각인이라고 한답니다. 대학에 입학해 새로 접한 글들이 지금은 고인이 된 김윤식 교수와 김현 교수의 책들이었습니다. 또 신영복 선생의 문체도 다분 다분 들어와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분들의 문체가 내겐 오리의 각인이었습니다. 다시 그 경어체로 돌아오니 편안한 옷을 입은 기분입니다.

  

매거진에 실릴 이미지는 나와 남편의 사진임을 밝힙니다. 남편은 오랫동안 사진을 찍었고  번의 사진전도 가졌습니다. 무엇보다 나는 그의 사진에 담긴 색조와 분위기를 참 좋아합니다. 고맙게도 기꺼이 사진을 제공해 주어서 무척 감사합니다


물의 정원, 양수리  by 푸른 소나무

<윤씨 잡문>은 나를 또 어디로 데리고 갈까요. 가봤자 독자님들 손바닥이고 내 안과 그 언저리겠지만 우리의 일상은 남루하지 않다고 기록하고 싶습니다. 반복되는 오늘아니라 내 생에서  한 번도 지 않은 새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길 바랍니다. 새 날에 나의 모순은 변함없겠지만 그대로 바라보고 축복하고 싶습니다. 그러다 흔들리지 않는 평안이 한 번쯤 주어진다면 아주 행운일 거라 여길 겁니다. 발길에 차이며 아무도 탐내지 않는 길가의 돌멩이도 간혹 아주 예쁜 것이 있어 주머니에 넣는 것처럼 일상에서 반짝이는 작은 돌멩이 같은 글 한 줄 쓰이면 좋겠습니다.


나무들이 잎을 다 떨구어내니 빈 가지들 사이로 하늘이 잘 보입니다. 잎 떨어져 나간 자리에 하늘이 들어와 빈 가지 사이를 채우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잃어야 채울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니다. 텅 빈 것이 꽉 찬 충만이라는 진리를 다시 확인합니다. 떨어져 나가야 할 것들에서 놓여나 가려져 볼 수 없었던 나의 하늘을 잘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실 분들께 깊이 허리 숙여 미리 감사 인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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