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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윤씨 잡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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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 Feb 01. 2023

브런치를 그만하려고 했는데

<윤씨 잡문>


브런치를 계속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내 브런치를 구독한다는 알림이 뜹니다. 그런가 보다 했지만 또 뚜뚜 하고 구독 알림이 떴습니다. 자다가 홍두깨도 아니고 이 머선 일이고, 싶습니다. 작년 9월에 발행했던 글 하나가 다시 읽히는가 싶더니 한 분, 두 분 브런치를 구독한다는 알림이 이어졌습니다. 조용하던 집안에 손님들이 찾아오는 기분입니다. 고개가 갸우뚱 해 집니다. 글쓰기를 계속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던 내게 이 같은 일이 생기는군요. 잔잔한 물 웅덩이에 작은 꽃송이들이 떨어져 웅덩이가 조용히 일렁입니다. 또 꺾인 무릎을 다시 바로 세울 때인가 싶습니다. 무엇이든 좋은 기운을 잡아야 지금 나를 채우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걷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요즘 나는 두 가지 이유로 글쓰기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슬럼프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분께서 내 글이 너무 길다며 짧게 쓰라고 말하더군요. 요즘 사람들은 긴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모바일에서 세 번 내려 읽는 분량이 적당하다고 했습니다. 브런치의 스테르담 작가님께선 구독자수에 마음 쓰거나 자신이 쓰는 글에 대한 불신은 접고 그저 꾸준히 쓰라고 하셨고 그  말씀에 힘입던 차에 글 분량에 대한 고민이 생긴 것입니다. 글을 짧게  쓰라고 하신 분의 말씀에 휘둘렸다기보다 무시할 수 없는 사실 때문입니다. 평소 구독자 수에 연연하지 않았고 저 좋아 글 쓰고 그림 그렸는데 한편으론 읽어주지 않는 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를 했던 것도 사실이구요, 그렇다고 읽기 편하라고 글 분량을 맞춰놓고 글을 쓰며 독자의 눈치를 볼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내가 쓴 글이 얼마나 되나 그 분량을 가늠하곤 했습니다. 이것 보세요.  이렇게 글이 길어져서 분량을 재고 있습니다. 이번엔 정말 어쩔 수가 없군요.


다른 장애는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개인적 신상의 유감스러운 일로 글쓰기에 자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함께 일하던 동생과 연락을 끊은 상태인데 그 일로 친정어머니와의 관계도 소원해졌기 때문입니다. 설에 뵌 어머니의 냉랭함이 내 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시시비비를 떠나 연로한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과 이해받지 못한 데서 오는 서운함, 또 쉽게 화해할 수 없는 노여운 마음 등이 엉켜 괴롭습니다. 부모 형제라고 해도 공통점 보다 다른 것이 더 많고 그 다른 것들이 갈등을 유발하며 곪아간다면 만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데 어머니는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언니인 나를 탓합니다.


언젠가 정재승 박사님(뇌과학자시죠)께서 우리가 화를 내는 이유와 그 대상과의 연관성에 대해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많이 자주 화를 낸다고 합니다. 우리 뇌의 어느 한 부분에서 나와 가까운 사람 혹은 친한 사람들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해서 생기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쉽게 화를 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형제는 쉽게 화를 내고 함부로 대했나 봅니다.


남하고 관계를 끊어도 마음의 타격을 받을 수 있는데 형제간은 어떻겠습니까. 사이좋은 형제들을 보게 되면 고개를 돌리게 됩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 상황과 사건 에서 유책 사유가 어찌 한쪽에만 있겠습니까. 지난한 시시비비 속에서 본래의 사안은 실종된 채 빛을 발하며 드러난 혹은 들켜버린 각자의 속내와 유치하게 무너진 태도로 비난이 오고 갈 땐 이미 서로를 잃은 후였습니다. 한쪽으로만 기운 어머니가 계셨기에 더 힘들었고 그런 어머니께 현명한 판사가 되어 달라는 바람은 나를 더 우스운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나의 일상은 또다시 빠르게 지옥이 되었습니다. 늙은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보다 지옥이 되어버린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것이 부모 형제와의 이라거나 돈을 많이 버는 일이라고 해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에 비해 훨씬 힘들게 살아오신 어머니의 세계에서는 철 안 들고 우스운 일이라고 해도 내겐 그렇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무너지고 피폐해지는 나 자신을 구해야 했습니다. 어머니께 이해를 바란 건 아니지만 명절에 뵌 어머니의 냉랭한 모습 앞에서 다시 서운해지는 나를 보니 아무래도 어머니가 내 편을 들어주길  바라고 있었나 봅니다. 이렇게 매 번 나의 감정과 태도가 옹졸하게 무너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요.


그러니 효도를 다 해도 모자랄 판인데 글은 써서 뭐 하겠습니까. 저 혼자 좋다며 그림 그리고 글 쓰며 한가롭게 댕댕이 하고 산책이나 한다고 무슨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관계 속에서의 자유로움, 일상의 평안, 내면의 해방을 그토록 원했는데 삶이 나를 시기하는 건지, 내 어머니 말씀대로 내가 속 좁은 인간이어서 그런 건지.


글 쓰는 것이 직업인 친구가 말했습니다. 글은 삶의 부분이지 자신은 니라고. 글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은 삶의 속성을 잊어버린 것이라고. 살다 보면 부모 형제와 불화할 수도 있고 이혼도 하고 사고도 당하는 것이라고요. 그럴 때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그만두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가장 힘들고 죽고 싶을 때 더 열심히 밤을 새워 글을 썼노라고. 그것이 결국 자신을 살렸다고요. 스스로 잘 쉬면서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더 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내게 여유를 가져다주지 않겠냐면서 남하고 맞지 않는 것은 죄책감이 없는데 부모 형제와 맞지 않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지는 것을 이해하기 싫다고도 했습니다. 나 아닌 다른 이들은 모두 타인이고 타인은 나와 다를 수밖에 없으니 그들과 맞아서 한 몸처럼 뒹군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요. 처음부터 거절하고 좀 이기적으로 살지 그랬냐며 내 등을 토닥였습니다.


눈 내린 동네 풍경과 앞산

눈 내린 동네 풍경을 바라봅니다. 시든 잡초와 잡목으로 지저분하던 빈 택지에도 눈이 쌓여 풍성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눈 내린 하얀 풍경은 착하고 예뻤습니다. 그러나 조용하고 적막한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의 내면은 더할 수 없이 시끄럽습니다. 내 안의 고요한 적막을 갖는 것이 이토록 불가능한 일일까. 브런치도 끊고 주변 관계도 끊어버리면 내면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


"이제 바라보노라/ 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눈길을/ 온 겨울을 떠돌고 와/ 여기 있는 낯선 지역을 바라보노라/ 나의 마음속에 처음으로/ 눈 내리는 풍경/ 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 지나 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설레는 평화로서 덮이노라 //" (고은, '눈길'의 일부 인용)

 

글을 쓰는 나 자신이나 읽는 독자님들도 이미 답은 알고 있지요. 나는 한동안 더 '온 겨울을 떠돌'아야 하겠습니다. 독자의 눈치보다 자신의 글에 대한 고민으로 괴로울 자유로움을 얻고 부모 형제와 다시 웃는 날이 오겠지요. '나의 마음속에 처음으로' 또다시 처음으로 '눈 내린 풍경', '지나 온 어느 나라에도 없던' 진정으로 바라는 '설레는 평화'를 얻을 수 있겠지요. 그땐 나도 이렇게 노래하겠습니다. 지금 이 글은 이미 내가 부를 노래의 배경설화가 되었으니까요.


모두들 평안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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